따로, 또 같이 사는 부부

by 이현정

결혼은 매일을 함께 살아가는 일이다. 처음에는 모든 걸 함께하고 싶었다. 식사 시간도, TV 채널도, 주말의 계획도. 한 공간 안에서 같은 것을 보고 같은 방향으로 걷는 것이 부부의 도리라고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알게 되었다. 꼭 같은 공간에, 같은 마음으로 있어야만 사랑이 유지되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 부부는 결혼 10년 차가 되면서 조금씩 달라진 일상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나는 여전히 일과 살림을 병행하며 분주했고, 남편은 게임 기획자로 집에서도 일하는 시간이 늘었다. 집이 단순한 쉼터가 아닌 ‘일터’이자 ‘생각의 공간’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사소한 생활의 리듬 차이로 종종 충돌이 생기기도 했다.


남편은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모니터를 들여다본다.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기획안을 정리하고, 가끔은 직접 게임을 해보며 몰입하는 시간도 많다. 나는 처음엔 이해하기 어려웠다. ‘일이 끝났으면 나와서 나랑 시간을 보내야 하지 않나?’ 하는 서운함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말했다.


“일하는 공간이 필요해. 그냥 일하는 책상 말고,
내 머리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그런 곳.”

그 말이 마음에 남았다. ‘공간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말. 단순히 일과 취미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 한 사람의 정체성을 유지해 줄 작은 우주가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나는 작은 결심을 했다. 집안에 남편만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 주기로 했다.


그 무렵, 새로 이사한 전원주택은 방이 네 개였다. 방 하나를 남편을 위한 방으로 꾸미기로 했다. 벽지는 깊은 바다색인 네이비톤으로 바꾸고, 조명은 눈의 피로를 줄일 수 있는 간접등으로 달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책상과 의자였다. 하루 종일 앉아 있어도 편안해야 했기에, 직접 앉아보고 골랐다. 게임 기획자로서 영감을 주는 다양한 피규어들도 선반에 예쁘게 배치했고, 사운드 시스템도 남편의 취향에 맞춰 세팅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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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완성된 ‘서재 겸 게임방’은 단순한 방을 넘어, 남편의 세계가 되었다. 그는 그 방에서 일도 하고, 쉬기도 하며, 때로는 나에게 새로운 기획 아이디어를 들려주곤 한다. 나는 이제 남편이 그 방에 있는 시간이 ‘회피’가 아닌 ‘회복’ 임을 안다.


이전 같으면 ‘왜 혼자 있어?’ 하고 묻고 싶었겠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 시간을 존중해 준다. 신기하게도, 각자의 시간을 존중하기 시작하자 함께 있는 시간의 밀도도 깊어졌다.


지금은 주말부부로 남편의 집이 따로 있다. 주말이면 다이닝룸에 나란히 앉아서 한 주 동안 있었던 이야기하고, 서로의 시간 속에서 발견한 것들을 나눈다. 나는 나대로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남편은 그의 세계에서 열정을 다한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따로 또 같이 살아가고 있다.


결혼 생활이란 꼭 붙어 있어야만 가까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적당한 거리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갈 때, 오랜 관계는 숨통을 트고 다시 살아난다. ‘같이 살지만 따로 있는 삶’은 어쩌면 중년 이후 부부가 배워야 할 새로운 친밀함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서재 하나가 우리 사이를 바꾸진 않았다. 하지만 그 공간이 생기면서, 나는 남편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고, 남편 역시 나의 배려를 더 깊이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비로소, 함께 살되 자유롭게 존재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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