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삶을 인정하는 법

by 이현정

결혼은 함께 나이 들어가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서로의 ‘다른 삶’을 인정하고 지지하는 법을 배우는 시간간이기도 하다. 우리는 부부로 살아오면서 많은 것을 공유해 왔지만, 내 인생의 어느 시점, 나는 새로운 삶의 문을 스스로 열어야 했다. 그리고 그 문 앞에서, 남편과 나는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걸어가게 되었다. 남편은 새로운 인생 2막을 위해 48세에 이른 퇴사를 했고, 나는 45살에 대학원 석사 과정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 직전, 내 인생의 큰 전환점이 찾아왔다. 남편의 퇴사와 함께 찾아 온 나의 암 진단. 처음엔 정말 믿기지 않았다. 두려웠고, 당황스러웠다. 치료를 받고, 머리가 빠지면서 삶의 리듬이 완전히 무너졌다. 그렇게 항암 치료를 마치고 난 직후였다. 남편이 할수있는 건 옆에서 나를 지켜주는 든든한 등대 같은 역할 이었다. 그 버팀목이 없었다면 나는 많이 흔들리고 가라앉을수도 있었다.


항암을 마치고나니 사람들은 일도, 공부도 쉬라고 했다. 그냥 건강하게 살아주기만 해도 된다고...나도 사실, 한동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어딘가로 향하는 문이 열리고 있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무언가를 남기고 싶었고, 다시 내 삶의 주인이 되고 싶었다. 그건 단순한 공부가 아니었다. 나를 다시 살아가게 하는 의지의 선언이었다.


남편은 나의 결정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그는 이미 젊은 시절 석사를 마친 사람이었다. 체계적으로 공부해 온 사람, 안정적인 커리어를 가진 사람. 그의 눈에, 항암 후 겨우 체력을 회복한 아내가 다시 논문을 쓰고 학문을 하겠다고 나서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을지도 모른다.

“몸은 좀 괜찮아진 거야?”
“무리하지 마. 천천히 해도 돼.”

그 말들 속엔 걱정도, 사랑도, 약간의 의아함도 담겨 있었다. 그 역시 나의 삶을 존중하려 애썼지만, 처음부터 완벽하진 않았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이건 ‘하고 싶다’가 아니라, ‘해야만 한다’는 마음이었다. 죽음을 마주한 사람이 느끼는 삶에 대한 갈망, 그것은 설명하지 않아도 강렬하다. 그렇게 나는 강의실로, 도서관으로, 다시 글 속으로 들어갔다. 체력은 예전 같지 않았지만,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단단했다.


처음엔 내 공부가 그저 나의 일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남편도 조금씩 내 세계로 들어왔다. 과제에 대해 조언을 해주고, 발표 준비를 함께 도와주기도 했다. 그가 변화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내 삶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나를 더 깊이 바라보게 된 것이다. 예전엔 서로의 세계가 너무 달라 보였지만, 지금은 그 차이를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결혼이란 때때로 같은 방향을 보지 않더라도, 서로의 삶을 응원할 수 있는 용기에서 성숙해진다. 내가 다시 살아가는 이 길을 남편이 지켜봐 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단단해질 수 있다.

각자의 삶을 인정한다는 건, 단순히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의 선택을 신뢰하고, 그 길을 멀리 서라도 함께 바라보며 걸어주는 일이다. 그것이 진짜 부부의 모습 아닐까?

그렇게 힘겹게 5학기가 지나고, 2024년 우수 졸업생으로 사이버 대학원의 5학기를 마쳤다. 남편과 두 딸이 만학도 엄마의 졸업을 축하해주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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