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동굴이야?

by 이현정

결혼을 하면 모든 걸 함께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기쁨도, 슬픔도, 화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서로 사랑하니까, 뭐든 나누고 함께 풀어가야 부부라고. 그런데 살아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특히 ‘감정 표현’에 있어, 남편과 나는 너무나 달랐다.


나는 뭔가 불편하거나 서운한 일이 생기면, 바로 이야기하고 풀고 싶어 했다. 가슴속에 쌓아두는 게 답답하고, 바로 대화해야 마음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그런데 남편은 달랐다. 어떤 갈등이든, 말다툼이든, 조금이라도 언성이 오르면 그는 조용히 자리를 피했다.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거나, 아무 말 없이 산책을 나가버리기도 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분노와 상처가 함께 밀려왔다. ‘왜 말을 안 해?’, ‘왜 대화를 피하지?’, ‘나를 무시하는 거야?’ 그렇게 내 마음속에 의문과 오해가 쌓여갔다. 그리고 싸움은 더 커졌다. 말로 풀고 싶었던 나는, 침묵으로 대응하는 남편 앞에서 늘 외롭고 불안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심각한 말다툼 끝에 남편이 조용히 내게 책을 내밀었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책을 읽고 나니... 남편이 이해가 되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그와 나는 달랐다. 그는 감정이 격해질 땐, 잠깐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던 거였다. 그는 나를 피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감정을 다루는 방식이 나와 달랐던 것이다. 그에게 필요한 건 나처럼 ‘즉각적인 대화’가 아니라, 스스로를 가다듬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었다. 마치 동굴 속으로 들어가 조용히 마음을 정리하고 나와야, 다시 말할 수 있는 사람. 그게 남편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조금씩 배워갔다. 감정이 격해질 때마다 남편에게

“나중에 얘기할까?”

묻기 시작했다. 때로는 나 혼자 속이 부글부글 끓어도, 조용히 시간을 두었다. 남편은 그런 나의 변화에 진심으로 고마워했고, 대신 예전보다 빨리 마음을 열고 자신의 감정을 꺼내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로의 다름을 완전히 이해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 다름을 존중하기로 했고, 그것만으로도 부부 사이의 공기가 달라졌다. 싸움이 생길 때마다 반복되던 ‘상처의 패턴’이 사라지고, 조금은 성숙한 ‘거리의 기술’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 안다. 침묵한다고 해서 사랑이 사라진 게 아니라는 것을. 조용히 방에 들어가 문을 닫는 남편을 보며, “지금은 동굴이 필요한 거구나” 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그 문이 다시 열릴 때까지, 나는 그 앞에서 기다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가끔 묻는다.

"아직, 동굴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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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란, 꼭 같은 방식으로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중요한 건 ‘경계를 허물지 않는 배려’다. 내가 쉬고 싶을 때 그를 불러내려 하지 않고, 그가 침묵할 때 나의 불안으로 몰아가지 않는 일. 그것이 우리가 서로를 지켜주는 방식이다.


지금 우리는 다르기 때문에 더 배운다. 그리고 그 배움이 쌓이면서, 부부라는 관계는 단순한 동반자 이상이 되어간다. 사랑은 때로, 가까이 가는 것이 아니라 한 발 물러서는 것에서 더 깊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제 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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