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키는 연습

by 이현정

나는 어려서부터 소심한 아이였다. 낯선 사람 앞에선 말 한마디 꺼내기 어려울 만큼 조용했고, 누군가 나를 주목하는 상황이 불편했다. 소심한 A형, 내향형 그리고 극도로 조용한 성향이었다. 무리 속에 있어도 혼자 있고 싶고, 사람들과 어울려도 마음속으로는 조용히 나만의 공간을 갈망하던 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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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은 더더욱 못했다. “시간 돼요?”, “이거 부탁해도 될까요?” 그런 말들 앞에서 나는 늘 “네.”라고 대답했다. 거절하면 실망시킬까 봐, 불편한 사람이 될까 봐, 혹은 나를 이기적인 사람으로 볼까 봐 겁이 났다. 그래서 대부분의 관계에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조금 더, 아니 많이 감당하곤 했다.


그러던 내가 사회생활을 20년 넘게 하며, 이제는 사람들이 말하길 “당신은 외향형 같아요”라고 말한다. 사람들을 만나는 일도 잘하고, 강의도, 발표도 능숙하게 해낸다. 하지만 그건 ‘후천적인 외향성’이다. 내 안의 본질은 여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갈망하는 사람이다. 많은 사람을 만난 날이면, 그다음 날은 아무 일정 없이 고요히 있고 싶다. 혼자 카페에 앉아 책을 읽거나, 걷거나, 글을 쓰거나… 그런 시간 속에서 나는 다시 충전된다. 이제는 그 사실을 인정한다. 나는 혼자 있어야 비로소 내가 회복되는 사람이라는 걸 안다.


살면서 수많은 관계를 맺었다. 가족, 친구, 직장 동료, 고객… 각기 다른 기대와 감정을 안고 있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자주 나의 경계를 잃었다. “나는 괜찮아”, “이 정도는 해줘야지”, “상대가 서운해하면 어쩌지?” 그런 생각 속에서 나의 진짜 감정은 자주 밀려났다. 때로는 억울했지만 표현하지 못했고, 상처받아도 겉으로는 웃었다. 하지만 그렇게 관계를 쌓아갈수록, 나는 점점 지쳐갔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랜 시간 함께 일했던 동료에게 뒤통수를 맞는 일이 있었다. 나는 늘 그 사람을 먼저 생각했고, 무리해서라도 도와줬다. 밤늦게까지 남아 일을 도와준 적도 여러 번이었다. 그런데 정작 내가 일이 몰려 지쳐 있을 때, 작은 부탁 하나를 했더니 돌아온 말은 “그건 네 일이잖아”였다. 그 말은 너무 차가웠고, 나를 단번에 무너지게 했다. 마치 정성을 다해 쌓은 관계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왜 나는 계속 참는 걸까? 왜 내 마음보다 남의 눈치를 먼저 볼까?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처음으로 내 안의 감정에 솔직해졌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연습을 시작했다.

“이번엔 어려울 것 같아요.”
“저는 좀 생각이 달라요.”

아주 작은 표현부터 시작했지만, 그 한마디가 내 마음을 지켜주는 강한 울타리가 되어주었다.

신기하게도, 내가 솔직해졌을 때 관계는 더 편안해졌다. 더 이상 나를 억지로 맞추지 않아도,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사람들이 남았다. 그리고 그런 관계는 깊고 단단하게 이어졌다. 이제는 안다. 관계 속에서 나를 지킨다는 건, 누군가를 밀어내는 일이 아니라 나를 존중하는 일이었다.


나는 여전히 소심하고, 사람들 앞에서 웃고 있어도 내면은 복잡할 때가 많다. 하지만 괜찮다. 나는 그런 나를 알게 되었고, 받아들이게 되었고, 지켜주는 법도 배웠다. 내가 관계 속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건 이제 ‘나 자신’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순간에 지치는지, 무엇이 나를 숨 막히게 하는지를 아는 것이다. 그 이해와 존중이야말로, 진짜 건강한 관계의 시작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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