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1년 만에 나는 첫 아이를 출산했다. 아직 신혼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이었다.시댁에서 직접적으로 무언가를 요구한 건 아니었지만, 남편이 장손이라는 사실과 시할머니께서 편찮으시던 상황이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증손주’라는 기대감을 느끼게 했다. 우리는 서로 마주 보며 “조금만 더 둘만의 시간을 즐기고 싶다”고 말했지만, 결국 그 기대 앞에서 마음을 접었다.
그렇게 나는 스물여섯, 아직도 세상 물정 모르던 나이에 엄마가 되었다.아이를 품에 안았을 때의 감동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작고 따뜻한 그 존재는 내 인생의 우선순위를 단번에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동시에, 육아는 결코 낭만적이지 않았다. 아이가 울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고, 밤마다 수유로 뒤척이는 날이 이어졌다. 그 시절의 나는 그저 ‘엄마’로 살아가기에 벅찼다. 주변 사람들은 “너무 예쁘겠다”, “좋은 때다”라고 말했지만, 정작 나는 고립된 섬처럼 느껴졌다.
그러다 어느 날, 숨이 막히는 듯한 답답함을 더는 견디지 못해 아이를 안고 다시 밖으로 나섰다. 아직 돌도 지나지 않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나는 직장으로 돌아갔다. 누가 시켜서도, 경제적인 이유 때문도 아니었다. 그냥 내가 숨 좀 쉬고 싶었다. 집이라는 공간은 어느새 나를 옥죄는 감옥처럼 느껴졌다. 아이를 너무 사랑하지만, 오로지 아이만을 위해 존재하는 내가 낯설고 무서웠다. 그래서 시작한 일이었고, 그게 나의 워킹맘 인생의 첫걸음이었다.
아침부터 아이와씨름하며 전쟁같은 하루의 시작하면서 힘겹게 회사에 도착하면 가끔은 울컥했다 책상 앞에 앉았을 때의 낯설고 반가운 감정, 동료와 나누는 짧은 인사 한마디가 그렇게 소중할 줄 몰랐다. 일을 한다는 건 단지 돈을 버는 행위가 아니었다. 그건 내가 다시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누구의 엄마도, 아내도 아닌, 내 이름으로 불리는 시간.
하지만 워킹맘의 삶은 결코 쉽지 않았다. 아이는 잦은 감기로 병원을 들락날락했고,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면 또 다른 일이 시작되었다. 밥을 하고, 아이를 재우고, 회사일을 이어서 하기도 했다. 그 와중에도 “혹시 내가 너무 이기적인 건 아닐까?”, “엄마 노릇을 제대로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죄책감이 끊이지 않았다.
그런 날들이 반복되면서 나는 조금씩 단단해졌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내게 말하는 법을 배웠다. 하루에 열 가지 중 다섯 가지만 해냈다고 해서 실패한 게 아니라는 걸, 내 마음과 몸이 지치지 않는 것도 중요한 성과라는 걸 깨달았다.
일과 육아, 가정과 나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고단함 속에서 나는 성장하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시작한 엄마로서의 삶이 나를 흔들었지만, 동시에 더 강하게 다듬어 주었다.
나는 워킹맘이 되어 아이를 키우는 동시에, 나 자신도 키웠다. 그 모든 날들 속에서 나는 하루하루를 버텨낸 것만으로도 충분히 자랑스러운 사람이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내가 있었기에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