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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타타타 Aug 28. 2024

도대체 '키치하다'가 뭐야?

'키치'의 전유

독서토론 모임에 한 남성 회원이 분홍색 가방을 메고 왔다. 다름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우리 회원들은 놀라면서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래도 관심을 보이는 한 명은 있다. “아이고, 가방 예쁘네요.” 그가 대답한다. “아! 이 가방요? 딸 초등학교 입학 때에 선물 받은 건데, 버리기가 아까워 그냥 제가 들고 다닙니다.” 이런 사연을 가진 40대 후반의 남성이 분홍색 초등학생용 가방을 메고 지하철을 두 번이나 갈아타며 이곳까지 왔다. 참 특이하긴 하지만 그럴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몇 달째 계속 그 가방이다. 새 가방을 사주고 싶기까지 했다. 그러면서도 뭔가 깊은 내공이 있어 보였다.

    

반년이나 그 가방을 들고 나타나는 그에게 젊은 여자 회원이 말했다. “그 패션 자주 보니 상당히 키치(kitsch)한데요!” 또 다른 회원이 물었다. “아니 키치가 그런 의미로도 쓰이나요?” 기치의 부정적 의미만 알고 있는 우리는 그녀의 대답에 귀를 기울였다. 대답의 요지는 이렇다. 키치는 요즘 유행되고 있는 말이다. 여자 아이돌 가수도 이 제목으로 노래도 만들었다. 노래 가사에 “우리만의 자유로운 nineteen’s kitsch”라는 가사가 반복된다. 가사 중에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하면 뭐 어때?”가 그 노래의 주제이다. 요컨대 나만의 자유로운 삶의 방식,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남 눈치 보지 않고 그냥 하는 것. 그런 문화 양식을 일컬어 ‘키치 하다’고 한단다. 가만있거라!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배운 키치가 어떻게 이렇게 연결되지?

     

원래 키치는 이발소 그림처럼, 진짜 그림이 아님을 알면서, 진짜는 구하기 힘드니, 가짜라도 내걸고 빈 공간을 있어 보이게 하는 데 쓰이는 ‘하찮은 예술품’을 일컫는다. 그러다가 그 의미가 확장되어 “획일화된, 다양성을 부정하는, 우아하게 포장된 이념 덩어리”를 표현한 개념이 되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나오는 인물 사비나는 이런 의미의 키치를 혐오한다. 그녀가 공산주의를 미워하는 것은 공산주의 이념 자체보다는 공산주의를 추종하는 자들이 가진 키치성 때문이었다. “나의 적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키치예요!”(밀란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412쪽, 민음사) 그녀는 누군가가 어떤 주의자일지라도 ‘키치스럽다’ 면 거부할 준비가 되어 있다. 심지어 미학적 이상도 거부한다. 

    

"존재에 대한 확고부동한 동의가 미학적 이상으로 삼는 세계는, 똥이 부정되고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각자가 처신하는 세계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이러한 미학적 이상은 키치라고 불린다.(밀란쿤데라, 같은 책, 300쪽)

          

여기까지의 키치는 분명 부정적이고 비판적 개념이다. 전체성, 획일성, 가식성을 대변하는 말이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이 노래하는 ‘19살의 키치!’는 긍정적인 의미로 들린다. 세간에 유행한다는 ‘키치 하다’는 말도 이런 맥락이다. 기존의 도식화된 사회 문화적 틀을 벗어나 자기만의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삶의 양식이다. 기존의 키치를 부정적 언어를 긍정적 언어로 전유하고 있다. 나는 전유라는 개념을 ‘퀴어’를 설명하는 글에서 읽은 적이 있다. ‘퀴어 축제’의 퀴어는 원래 ‘이상한’, ‘기이한’의 뜻을 가진 부정적 의미였지만 성소수자들이 이를 전면에 들고 나와 “그래 우리들의 축제는 퀴어 축제야!”하고 전유하면서 그 의미는 당당함을 찾았다고 한다. 키치는 분명 극복해야 할 부정적 의미였으나 오히려 추구해야 할 긍정적 의미로 바뀐 것이다. “좀 촌스럽고 하찮게 보이면 어떠냐, 나만의 자유로움을 찾으면 되지!”  

   

그런 의미에서 딸의 분홍색 가방을 메고 직장에 출근도 하고, 지하철을 타고 시내를 관통하는 그 40대 남성은 키치하다. 그의 모습에 전통적 의미의 “촌스러움”이 있다. 또 확장된 의미의 획일적, 고정적 사유를 무너뜨리는 자유로움도 있다. 무엇보다도 누가 뭐라 해도 나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련다는 주체성도 보인다.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그 남자의 넓은 등짝에 붙어 있는 분홍색 가방이 미적 포인트 같다. 전혀 어색하지 않고 봐줄 만하게 느껴진다. 유명 브랜드 로고인 빨간 하트만 못하지 않게 보인다.

    

사비나는 키치를 부정하면서도 끄트머리에 가서는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 중 그 누구도 초인이 아니며 키치로부터 완전하게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무리 키치를 경멸해도 키치는 인간 조건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같은 책, 421쪽) 뭔가에 확실한 신념을 가지고 그것을 강하게 추구하는 순간 키치 해진다. 그래서 키치는 우리 삶의 일부가 되고 긍정되며 새로운 의미로 타협(전유)된다. 이렇게 타협된 키치라면 받아들일 만하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독단적이고 전체주의적인 모든 삶의 양식을 거부한다. 남들이 촌스럽다고 놀리든 말든 나는 나만의 자유를 누리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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