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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타타타 Dec 10. 2024

2024년 12월 7일

탄핵 가결을 열망하며

우리 부부는 중무장하고 여의도행 지하철을 탔다. 추위에 대비하여 두툼하게 옷을 껴입었다. 저녁 배고픔에 대비하여 점심도 배부르게 먹었다. 무엇보다도 이 미친 사내자식을 그 자리에서 끄집어 내리기 위해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여느 휴일보다 지하철이 빼곡했다. 사람들은 그 역에서 거의 다 내렸다. 발 디딜 틈 없는 계단을 천천히 오르는 사람들을 보며 몸에 전율이 돋았다. ‘모두 같은 마음을 가지고 같은 공간으로 이동하고 있구나.’ 이 순간 우리는 단순한 지하철 군중(群衆)이 아니라, 역사적 민중(民衆)이 된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역사적 문제를 해결하려고, 힘을 모으려, 함께 가는, 다중(多衆)이 된다.  

   

아! 이미 중심 도로는 전국에서 모인 우리들이 빼곡히 자리 잡고 구호를 외친다. “미친 녀석을 체포하라!” 여기저기 구호가 적힌 팻말이 흔들린다. 수많은 단체의 깃발들이 휘날린다. 우리는 앉을자리를 찾아 군중 외곽을 돌고 있었다. 그때 대학생으로 보이는 한 여성이 종이 가방에서 떡을 꺼내 우리에게 내민다. “잡숫고 힘내세요. 집회 못 오시는 분이 기부한 거예요.” 우와! 이건 뭐지? 아까 딸이 전달해 준 메시지가 이런 건가? “엄마, 아빠! 저 대신 잘 다녀오세요. 1번 출구 100m 근처 커피숍에 가서 아무개 이름을 대면 무료로 커피를 마실 수 있데요.” 젊은 시민들이 다른 집회 참석자들을 위해 커피나 음식을 미리 선결제하는 진풍경이었다. 뭉클한 가슴 안고 딸이 알려준 커피숍에 갔다. 커피뿐만 아니라, 떡, 온열 팩, 물 들이 가득 진열되어 있었다. 우리 부부는 커피 한잔, 온열 팩 하나씩을 얻어 나왔다. “여보 우리 오늘 떡값, 커피값, 톡톡히 갚아주고 갑시다!” 크로폿킨의 상호부조론이 첨단 자본주의 도시 서울에서 작동하고 있음에 놀랐다. 그는 인간을 자율적으로 서로 도우며 사는 존재로 보았다. 

    

서로 돕는 마음으로 참석한 다중들의 집회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사회자의 목소리는 차분했으나 단호했고, 부르는 노래와 구호는 온화했으나 결기에 찼다. 시간은 흘러 17:00, 대형 화면은 국회의 표결 소식을 직접 연결하여 보여준다. 첫 번째 의제는 198:102로 부결, 두 번째 의결은 집단 퇴장한 ‘국민의 짐’들을 계속 기다리고 있다. 국회 본회의장 안에서는 야당 원내 대표가 ‘퇴장한 짐’ 이름 하나하나를 부르며 돌아오라고 호소한다. 혹시라도 이름을 불러주면 ‘국민의 꽃’이 되어줄까 기대했는데, 그들은 처음부터 꽃이 될 수 없는 쓰레기들이었다. 아! 미친 녀석을 권좌에서 끄집어 내리기가 이렇게도 어려운가? 그렇다. 구조적으로 여당의 분열 없이는, 8명 이상의 여당 의원의 전향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아! 가라앉고 있는 불쌍한 대한민국이여!” 탄식하며 집으로 되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오늘,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실패라고는 말 못 한다. 탄핵이 가결될 때까지 계속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 추위 속에서도 저항하는 100만 가까운 시민의 분노를 보았고, 커피와 떡을 선결재하여 상호부조 정신을 실천한 시민들의 따뜻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는 당분간 여의도로 가기로 했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직접 참여하여 분노를 외치고, 멀리 있는 사람들은 가까운 집회 장소에서 열기를 보태고, 생업이 바쁜 사람들은 선결재 방식으로 따뜻한 온기를 전하면 될 것이다. 민주주의여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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