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겨나거나 내 발로 나가거나
한국에서 외국계 회사를 다녔던 남편은 그에 연장선으로 뉴질랜드에서는 비즈니스 과정을 공부할 계획이었다. 남편은 1년 과정 학교를 졸업 후 뉴질랜드에서 3개월, 적어도 6개월 내에 취업하는 것이 목표였다. 학교에서 주어지는 과제와 시험은 물론 어렵겠지만 본인이 일을 했던 경험이 있으니 비즈니스 용어가 낯설지 않아 해 볼 만할 것 같다는 자신감으로 첫 등교를 했더랬다.
학과에 아저씨 학생은 다행히 혼자는 아니었고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한국 사람들도 몇 명 있어 안심이 됐지만 곧바로 제출해야 할 과제와 그룹수업에 큰 부담을 갖게 됐다고도 했다. 남편은 과제와 시험을 앞두고 방에 틀어박혀 머리를 싸매며 열심히 공부했다. 한국에서 대학교를 졸업한 지 10년도 훌쩍 넘었으니 공부하는 법도 모두 잊었고 한글로 공부해도 기억을 할까 말까 한데, 영어로 그 내용들을 공부하려니 앞이 막막할 터. 고군분투하는 아빠의 마음을 알 리 없는 아이들은 틈만 나면 아빠방에 쳐들어가 방해하기 일쑤였다.
우리 비자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아
한국에서 나고 자라 편히 살았으니 내가 한국사람으로 한국에서 살기 위해 비자를 신청할 일도 비자의 유효기간을 따지며 살 일도 없었다. 다른 나라로 옮겨가서 살기 위해서는 우리는 건강하고 돈 많고 나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많은 확인을 받고 그것들을 서류로 제출했다. 아이들의 출생 확인서, 예방접종 증명서를 준비하고 나와 남편은 건강한 신체를 가진 성인이며 범죄이력이 없다는 사실, 은행의 통장 잔고 등을 증명까지 해 보였는데 이제 와서 비자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남편이 공부하고 있는 학과의 인원수가 줄어들며 다른 학과와 통합이 이루어졌고 남편이 학생비자를 받은 학과는 없어졌다. 이러한 변화가 생기며 우리의 비자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비자 변경신청을 해야 했고 학교와 유학원, 이민성 사이의 소통문제로 문제가 복잡해졌다며 남편은 나에게 열심히 설명했지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창백한 얼굴로 나를 보며 말하는 남편의 모습에서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을 느꼈다.
첫 등교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비자에 문제가 생긴 날부터 남편은 학교를 나가지 못했고 수업을 듣지 못하니 과제와 시험준비는 당연히 할 수 없었다. 더구나 비자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우리는 즉시 뉴질랜드를 떠나야 했다.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그날부터 플랜 A와 플랜 B, 플랜 C를 생각하며 우리의 모든 계획이 다 틀어질 경우 한국으로 돌아가는 상황은 제일 마지막에 두기로 했다. 집안을 발칵 뒤집고 미움을 모조리 받고 도착한 나라인데 처음부터 곁을 내어주려 하지 않는 뉴질랜드가 미웠다. 두 달 전 한국에서 부친 짐들이 이제야 다 도착해서 정리가 끝났다. 짐을 풀자마자 다시 짐을 싸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상황이 생겼다는 건 참 기막힌 일이었다. 남편은 유학원과 학교 직원들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썼고 한국에서 온 쫄보부부는 하루하루 한숨을 내쉬며 먹지도 못하고 잠도 이루지 못했다. 그 당시 spotify로 들었던 음악들은 우리에게 한없이 우울하기만 했고 지금껏 그 노래가 싫다.
남편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비는 모두 냈으나 수업은 받을 수 없는 학교로 향했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 예상해서 잠시 대형마트에 주차를 해놓고 학교까지 버스를 탔다고 한다. 학교 직원들과의 긴 대화였지만 여전히 비자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나왔고 버스를 타고 다시 대형마트로 돌아왔을 때 차는 사라지고 없었다.
차가 없어졌어
요즘 입만 떼면 충격적인 말을 하는 그가 놀라웠다. 우리에게 멀쩡히 있던 비자도 없어지고 차도 없어졌단다. 마트에서 만나 장을 보고 집으로 들어가기로 했기에 남편이 버스에서 내릴 시간에 맞춰 마트로 나간 나는 남편과 없어진 차를 찾아 나섰다. 남편이 오늘 아침에는 사라질 위기에 있는 우리 가족의 비자를 찾아 나서더니 오후에는 없어진 차를 찾고 있다. 누군가 차를 훔쳐간 건지 남편이 주차를 해뒀다는 장소에 우리 차는 없었다. 두 명의 동양인이 넓은 마트 주차장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허둥대니 트럭에 타고 있던 남자가 우리에게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었다. 남편이 영어를 그렇게 잘하는지 몰랐다. 당황하고 급하니 주절주절 얘기해도 외국인은 찰떡같이 알아듣고 견인에 대한 가능성을 이야기해 주었다. 자세히 보니 남편이 주차해 놓은 곳 옆의 기둥에 차 넘버가 적힌 견인딱지가 붙여져 있었고 주차가능시간보다 주차시간이 길어졌기에 우리 차는 견인된 것. 텅텅 비어있는 이 넓고 큰 주차장에 고작 시간 좀 넘겨 주차한 게 그렇게 잘못한 건지 원망스러웠다.
우리는 우버를 불러 견인장소로 갔고 250불을 벌금으로 내고 차를 찾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거리의 창 밖 눈부신 풍경도 부질없고 다 꼴 보기 싫었다.
차는 찾았다.
다음, 우리의 비자는 찾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