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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ch May 23. 2023

전원주택은 처음이라, 그것도 뉴질랜드에서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살아야 해요

아파트에 살았었다. 외벽은 튼튼한 시멘트, 엘리베이터가 위아래 수시로 다니고 바람이 불어도 이중창 샷시에 창문만 닫으면 바람소리는 들리지 않고 금세 조용해지는 아파트 말이다. 날씨가 쌀쌀해도 보일러를 켜면 발바닥까지 따끈따끈해지고 몸이 좀 으슬하다 싶을때 바닥에 이불을 깔고 누우면 찜질방도 필요 없다.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 베란다에 하나씩 널고 비가 와서 베란다까지 습해지면 제습기를 켜고 빨래를 집 안에 넌다. 어느새 섬유 유연제 향기가 집안에 가득하다. 창밖이 뿌옇게 보이는 날이면 미세먼지와 황사의 농도를 확인하고 공기청정기를 풀가동 시킨다. 물은 정수기의 버튼만 눌러 딱 한 컵에 알맞게 나오니 언제든 생각날 때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면 마실 수 있다. 그리 넓지 않은 집이기에 청소는 빨리 끝낼 수 있지만 맞벌이 일 때는 로봇청소기의 도움도 받고 힘들이지 않고 물걸레질도 잘해주니 여간 고마운 게 아니었다.  




뉴질랜드 이층 집에 산다. 파릇파릇한 잔디가 있는 나무로 지어진 전원주택이다. 거실 옆으로는 나무바닥 데크가 있어 큰 나무 아래에 자리한 그곳에서 더울 땐 그늘 덕을 보며 아이들과 테이블을 펼쳐놓고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점심과 저녁을 먹기도 한다. 계단을 오르내리며 집 안을 돌아다니고 계단에 앉아 아이들과 책을 읽기도 한다.

집 안과 밖에서 각자 할일을 하느라 분주하다. 가끔 아이들에게 집 밖 청소를 허락하는데 결국, 물놀이가 된다

세탁기는 아래층 게라지(자동차를 보관하고 셔터문을 닫을 수 있는 창고형 주차공간)에 있다. 세탁물을 들고 내려가 빨래를 돌리고 세탁이 끝나면 뒷마당에서 탈탈 털어 빨랫줄에 나란히 널고 햇빛에 바싹 마른 옷들을 정리할때의 기분은 정말 좋다. 처음에는 빨래집게로 고정시키지 않고 빨래를 널어만 놓고 외출하고 오니 바람에 다 떨어져서 빨래를 다시 해야 했던 적이 있다. 당연히 아파트에서만 빨래를 해봤으니 빨래집게를 사용해야 한다는 사실조차 생각하지 못했었다. 여름이 지나면 자주 비가 오기 때문에 빨래를 하기 전 비가 오는지를 꼭 확인한다. 비가 오면 힘들게 널어놓은 빨래들을 다시 걷어 실내에 널어야 하기 때문에 2배의 노동과 시간이 걸린다. 기껏 널어놓은 빨래를 일일이 걷어 다시 실내로 들이는 것은 비효율적이라 피하고 싶지만 의외로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좌)아이와 계단에 앉아 책을 읽기도 하고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눈다   (우)아이를 꼭 껴안고 근사한 노을을 감상하는 차분한 순간

비가 온 뒤 우리 집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비를 흠뻑 맞고 햇빛이 내리쬐면 나무집에 수증기가 증발해서 나무는 수축하며 탁 탁 쩍 쩍 거리는 소리가 난다. 처음엔 집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무섭기도 하고 뭔지 모를 무엇인가 밖에서 부딪치는 줄 알고 집 밖을 자주 나가보곤 했다. 햇빛이 내린 우리 집에서 수증기가 증발하며 연기가 나는 것처럼 아지랑이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을 처음 봤을 땐 정말 신기했다. 30년 전에 지어진 집에 한국의 이중창은 있을 리 없지만 밀어 올려서 여는 창문 하나로 실내외를 구분 지으니 바람소리나 풀벌레소리도 잘 들린다. 해가 뜨고 질 때의 그림 같은 풍경과 노을을 더욱 예쁘게 볼 수 있는 감성도 담겨있다.



아이들은 감성 돋는 자연의 집에서 실컷 뛸 수 있을까? 반은 그렇고 반은 아니다. 해외의 집들이 그렇듯 뉴질랜드의 많은 집들이 카펫생활을 한다. 우리 집 부엌은 마룻바닥, 방과 거실은 카펫이다. 당연히 보일러는 없고 히트펌프라 불리는 것이 윗 벽에 달려있어 여름엔 에어컨으로, 겨울엔 뜨거운 바람이 나와 찬 공기를 빠르게 데워준다. 비염이 있는 남편은 아이들이 신나게 뛸 때마다 어김없이 코를 비비고 재채기를 하며 정신을 못 차리고 환절기엔 큰 온도차로 연신 휴지를 달고 산다. 이층 집이어도 우리 식구만 살고 있으니 층간 소음 스트레스는 없지만 카펫먼지로 인해 안에서 뛰지 말고 마당에 나가서 놀라고 하는 말을 더 자주 한다.

앞마당에 텃밭을 만들고 아이들은 더 많은 시간을 마당에서 보낸다. 뒷마당에는 레몬과 귤, 자몽이 주렁주렁 열려 시트러스 향이 가득.


마당의 잔디는 여름이 지날수록 초록이 짙어지고 뒷마당의 나무에는 본격적으로 귤과 레몬, 자몽이 익어간다. 봄에는 아이들과 텃밭을 만들었다. 한국에선 텃밭을 만들어본 적도, 가꾸어 본 적이 없지만 씨를 뿌리고 매일 들여다보니 심어놓은 부추가 어느새 자랐다. 부추전을 만들었는데 남편이 부추가 질기고 씹히지 않는다고 뭉텅이로 뱉어낸 적이 있다. 텃밭을 만들던 날, 잔디 씨앗과 부추씨를 같이 심었더랬다. 울타리로 텃밭의 경계를 만들어놓고 잔디는 밖에 심고 부추는 텃밭 안에 심는 거라 알려줬어도 가드닝에 마냥 신난 둘째가 마구잡이로 뿌려댔나 보다. 마냥 까부는 아들이 흩뿌려놓은 잔디가 텃밭에서 부추인 양 잘 자랐고 그것을 뽑아다가 나는 남편에게 부추전이 아닌 잔디전을 해준 것이다. 다행히(?) 아이들은 먹지 않았고 남편은 텃밭의 농작물로 만든 요리를 먹을 땐 항상 확인하는 습관이 한동안 생겼더랬다. 우리가 심어놓은 상추, 깻잎, 부추, 시금치는 달팽이와 송충이랑 나눠먹으며 항상 구멍이 송송 뚫린 것이었지만 나와 남편이 저녁준비를 시작하면 아이들은 텃밭으로 가서 야채를 뜯어 마당 수도에서 씻어 온다.






텃밭을 가꾸는 건 마당의 잔디 깎기와 더불어 꽤 귀찮은 일임에 틀림없다. 매일 들여다보며 쪼그려 앉아 주변의 잡초를 뽑아줘야 하고 해충이 모든 잎을 갉아먹지 않도록 돌봐줘야 한다. 뉴질랜드의 가을, 겨울엔 자주 비가 오고 햇빛은 강렬하니 잔디와 잡초 모두 쑥쑥 잘 자란다. 그래서 남편은 한 달에 두어 번씩 꼭 잔디를 깎는다. 잔디를 깎는 것은 내 힘으로는 역부족이라 온전히 남편의 몫이다. 남편이 땀 흘리며 넓은 마당의 잔디를 깎아놓으면 아이들은 맨발로 신나게 나와 온몸을 데굴데굴 굴려 논다. 아이들은 우리 집의 잔디가 길어지면 발에 닿아 간지럽다고 한다. 키 큰 잔디가 둘째의 발을 간지럽히면 알람 울리듯 아빠한테 쪼르르 달려가 잔디를 잘라 달라고 한다.


이렇듯 전원주택은 손보며 살일이 많아 그다지 바쁠 일 없는 노년의 은퇴한 어르신들의 나이에 적합하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테지만 살아보니 내 생각은 절대 '아니다'싶다.


전원주택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살아야 한다.
조금이라도 기운찰 때 살아보며 습관을 들이고 내가 집에 길들여져야 한다.
 


마당을 가꾸는 일에는 쪼그려 앉았다 일어나도 곡소리를 내지 않는 튼튼한 무릎과 허리가 있어야 하고 하루에 수십 번 집 안의 계단을 오르내려도 지치지 않는 코어와 허벅지, 엉덩이의 힘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파트의 엘리베이터와 편리함에 길들여져 있는 내 몸이 전원주택 모드로 전환되는데 그리 큰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해보지 않은 일들이라 부팅에 시간이 걸렸을 뿐, 오히려 내 몸을 일으켜 일일이 움직이니 우리가 사는 공간에 온기가 가득 찬 느낌을 받을 수 있어 귀찮거나 피곤함보다는 내 몸이 충전이 되는 느낌이었다.


그러니 전원주택 생활을 노년을 위해 아껴두고 계신 분들이라면 무릎과 허리가 튼튼한 지금,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살아보시길. 하루라도 빨리 전원주택의 매력에 빠져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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