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안 개구리가 중국엄마와 기싸움을 하게 될 줄이야
찾지 못한다면 당장 내일이라도 쫓겨날 수밖에 없는, 잃어버린 우리 가족의 비자를 찾기 위해 남편은 고군분투했고 비자를 찾을 때까지 단 한순간도 마음 편하게 먹을 수도, 잠을 잘 수도 없었다. 부모의 불편한 마음을 알 리 없는 1학년 아들과 3학년 딸은 하교를 해서도 여전히 학교에서 세 시간은 꼬박 놀아야 집에 들어갔다. 이런 상황이 되니 나도 집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보다는 밖에 나와있어야 숨이라도 쉴 수 있었다.
나는 그날따라 우울한 기운에 흠뻑 젖은 집에 들어가기 싫어 아이들이 하교 후 노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다리가 아파 벤치에 앉았고 우리 아이들만 있는 놀이터를 향해 가끔씩 손을 흔들어주는게 전부였다. 저 멀리서 한 여자가 걸어오길래 학교를 가로질러 다른 골목으로 가려는가보다 했다. 오로지 '비자가 해결이 안 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에 가득했기에 누군가를 쳐다보고 관심을 가질 여력이 없었다.
"당신, 아직까지 학교에서 뭐 하는 거야? 늦은 시간까지 모래놀이장에서 놀고 있는 너희를 몇 주 동안이나 계속 보게 됐어, 당신은 자녀에게 방과 후에 아무것도 안 가르치는 거니? 튜터가 없니? 이거 아이를 바보로 만들고 있는 거야, 엄마로서 책임감을 가져!"
걸어오던 여자가 내 앞에 서더니 갑자기 싸우듯이 소리를 친다.
아니? 일방적으로 나를 혼냈다. 순식간에 말로 쥐어터졌다.
그냥 지나칠 거라 생각한 타인이 갑자기 저벅저벅 걸어와 큰 소리로 날 저격한다. 다짜고짜 내 아이들을 바보로 만들고 있다며 가만히 있는 나에게 책임감 없는 엄마라 시비를 건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이유 없는 인종차별??
분명 영어로 말하고는 있지만 중국억양이 섞여있고 나와 같은 검은색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는 그녀는 내 어깨를 툭 치기까지 하며 이러면 안 된다고 한다. 어안이 벙벙해 눈만 껌뻑이며 그녀의 이야기를 듣기만 하는 내가 이상했는지 갑자기 말투가 부드러워졌다.
그녀는 이 학교를 다니고 있는 1학년 학생의 엄마, 하교할 때 나를 자주 보았고 방과 후 몇 시간이 지나도 학교에 계속 남아있던 내가 너무 이상했단다. 그녀의 첫째는 7학년, 둘째는 1학년. 아이들의 방과 후 레슨을 위해 학교를 가로질러 갈 일이 많은데 그때마다 아직도 학교에 남아서 노는 우리가 더 눈에 띄었단다. 한층 부드러워진 그녀의 말투와 억양에 나는 정신을 차리고 반격을 시작한다.
"우리는 뉴질랜드로 이사 온 지 얼마 안 됐어. 아이들이 학교에 애정을 가질 수 있도록 학교에 있는 시간을 늘리는 중이고 나와 우리 아이들은 친구를 사귀고 있어. 내가 레슨을 보내지 않는다고 해서 아이들을 결코 그냥 내버려 두는게 아니야. 너도 1학년 아이 엄마면 잘 알지? 아이들이 모래놀이를 좋아해. 수업시간에 다른 활동도 많이 하니까 모래놀이를 긴 시간 하지 못한대. 그래서 우리는 학교의 넓은 필드에서 뛰고, 모래를 만지고, 놀이터에서 놀며 이번주에는 몽키바 두 칸 건너기 연습을 하는 중이야. 네 둘째도 같이 놀래? 서로의 친구가 되어준다면 정말 기쁠 거야."
그녀는 더듬거리며 말하는 나의 이야기를 듣고 곧장 대답했다.
"내 첫째와 둘째는 평일에 레슨을 많이 받아서 놀 시간이 길지 않아. 그래도 친구는 될 수 있어! 네 아이들이 레슨을 받을 수 있도록 내가 튜터(과외선생님) 연락처도 가르쳐줄게. 그러니까 너의 아이들을 계속 놀이터에서 놀게 하며 바보로 만들지 마. 지금 나는 아이를 픽업하러 가야 돼. 우리 내일 보자"
10년 전에 중국에서 뉴질랜드로 건너와 정착한 그녀는 중국특유의 성조 낀 억센 영어로 말은 했지만 그냥 지나쳐도 되는 우리를 도와주고 싶었다고 한다. 다른 한국엄마들도 이 선생님들께 배운다며 과외선생님들의 연락처를 문자로 보내준 그녀와 하교시간에 둘째 교실 앞에서 자주 만났다. 10분이라도 둘째들끼리 노는 시간을 가지며 그녀와 친해졌다.
그녀의 둘째는 뉴질랜드에서 태어나 3년간 다닌 유치원을 졸업하고 현 학교 1학년에 입학해 방과 후에는 일주일에 세 번씩 튜터에게 영어와 수학을 배운다. 반면 우리 집 둘째는 한국에서 어린이집을 다니다 스펠링도 모르는 상태로 뉴질랜드 1학년으로 입학했다. 하교 후에는 튜터와 영어와 수학을 배우는 대신, 몽키바에 10초라도 더 매달려 한 칸 더 건너려는 연습을 하고 어떻게 하면 모래성을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 자기 키보다 높이 쌓을 수 있는지 생각한다. 5년, 8년 인생에 다른 언어를 쓰는 아이들 틈에 섞여 다양한 상황 속에서 친구들의 대화를 듣고 말을 따라 한다. 그리고 그게 맞는지 친구들에게 확인받는다.
이렇게 놀게 하다가는 바보가 될 거라던 그녀의 말이 사실인지 거짓일지를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은 학기 중에 여러 번 있었다. 교사와 학부모의 인터뷰 시간을 통해 나는 우리 아이들의 학교생활과 학업능력을 알 수 있었다. 물론 그녀도 교사와 인터뷰를 마친 다음날 나와 어김없이 수다를 이어갔다.
교육열이 강한 그녀도 뉴질랜드에서는 아이들을 성적으로 줄 세우지 않는다는 사실이 매우 좋다고 한다. 한국엄마인 나도 서울, 강남에서 큰 아이 교육에 관심을 가지며 살아왔다고 자부하지만 내 앞의 그녀는 내 몇 곱절은 되는듯하다.
그녀에게는 안타까운 소식이지만 학년을 마칠 때, 그 집 둘째와 우리 집 둘째의 학업능력의 차이는 전혀 없었다. 오히려 친구들과의 사이가 좋고 학업과 신체놀이, 규율을 흡수하는 능력이 높아 학교에서 받은 상장을 손에 쥐고 나에게 뛰어오는 모습을 그녀가 눈으로 보고, 선생님께 직접 듣고는 나에게 돈을 아낄 수 있어 좋겠다는 농담을 했다.
아직 모른다. 뉴질랜드에서 학업을 위해 튜터에게 각종 레슨을 받는 그녀의 둘째가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지식이 축적되어 내 아들을 훨씬 뛰어넘을지, 아니면 이대로 쭉 가게 될지... 하지만 무방비상태로 말로 쥐어터졌던 한국엄마는 아무것도 시키지 않으면 바보가 될 거라는 그녀의 말을 웃으며 고상하게 눌러준 것 같아 통쾌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