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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ch Nov 28. 2023

현타와서 가라앉은 마음 끌어~올려

학력, 경력, 영어점수 모두 충족하니 이제와 OVER?

남편은 늦깎이 학생으로 돌아가 1년의 시간 동안 영어와 씨름하며 일에 있어서는 가리지도 않던 낯을 가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다국적 학생들 앞에 나서 발표를 했더랬다. 학교 과제와 시험에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도 남매가 쿵쾅거리는 2층집의 아래 방에서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공부하며 좋은 성적도 받았다. 학교를 가지 않는 날에는 택배 일을 하며 경제활동도 병행했고 학교 방학에는 아이들과 함께 이곳저곳을 다니며 체험활동과 자연을 만끽하는 다정하고 따뜻한 아빠의 몫을 놓치지 않았다.




직업에 귀천이 어딨어, 도둑질만 아니면 되지



남편이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택배의 상가에는 영어학원이 있다고 했다.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하염없이 놀고만 있는 나에게 충고했던 중국엄마의 말처럼 방과 후에 몇몇의 아이들은 아카데미를 다니며 영어를 배우고 있었다. 남편이 땀을 뻘뻘 흘리며 택배 상자를 옮기고 있는데 누군가 자신을 쳐다보는 느낌이 들어 고개를 드니 위에서 한 아이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더란다. 아이는 둘째와 같은 반이었고 남편이 인사를 하니 학원으로 쏙 들어가 버려 남편은 머쓱하더란다. 남편은 기분이 이상하다고 했다. 혹시나 자신이 땀을 뻘뻘 흘리고 먼지가 잔뜩 뭍은 옷을 입은 채로 아이에게 인사를 해서 놀란 것인지, 혹시 아이가 보기에 자신이 추레해 보여 모른척 한 것인지 몰라 둘째 친구에게 괜히 실수한 느낌이라 했다. 혹시나 학교에서 우리 집 둘째에게 너네 아빠가 어쩌고 저쩌고 이야기하다 다른 친구들까지 합세해 둘째를 곤란하게 만들면 어쩌나 퇴근하고 오는 길에 별별 생각이 다 들더란다.


당신이 도둑질을 하는 것도 아니고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는 모습에 깜짝 놀라 도망가지는 않았을 거라고, 학원 앞에 아는 얼굴의 아저씨가 있어 쳐다보다 갑자기 인사를 해 아이가 부끄러워 그랬을 거라고 신경 쓰지 말라 했다. 친구 아빠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둘째 반에서 친구들이랑 어쩌고 저쩌고 할 일은 아니지 않냐고 웃으며 이야기했지만 남편이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하며 스스로가 많은 생각을 하는구나 싶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현타 야무지게 맞는 부부


매일아침 번듯하게 차려입고 커피 한잔 손에 들고 출근하던 사람이 행복하고자 온 뉴질랜드에서 생전 처음 하는 일에 괴리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했을 터. 나도 빵집의 주방에서 설거지를 했던 시간에 그랬으니 남편의 지금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해외살이를 하며 괴리감을 극복하는 문제는 결코 쉽지 않다. 


한국에서 살 때는 좋은 차 타고 다녔는데, 한국에서 살 때는 좋은 옷 입고 다녔는데, 한국에서 살 때는 번듯한 직장에 다녔는데, 한국에서 살 때는.. 한국에서 살 때는.. 한국에서 살 때는...


해외살이를 선택한 것도 우리 스스로니 한국에서 살 때 이랬고 저랬고 비교는 잠시 접어두고 행복을 위해 나아가는 과정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는 뉴질랜드 살이에서 느끼는 괴리감을 인정하며 한없이 땅으로 꺼지는 우리의 마음을 끌어올려 서로를 더 위해주고 보듬었다.  







막상 졸업을 하니 공인된 영어점수를 요하는 사업체가 많아 남편은 또다시 점수를 위한 영어공부에 매진했고 원하는 점수를 받고 이력서를 썼다. 유학 후 이민이라는 항목으로 이민을 준비했고 학교를 1년 다니며 공부하면 졸업 후에 취업의 길도 활짝 열려 어렵지 않게 직업을 구할 수 있을 거란 희망적인 유학원의 말은 현실이 아닌 듯했다. 열릴 듯 열리지 않는 그 문을 열어보기 위해 남편은 기업의 문을 쉬지 않고 두드렸지만 면접의 기회도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 한 기업담당자는 남편의 이력에 대해 Over Qualified(필요 이상의 자격을 갖춘 상태)로 당사의 채용이 이루어지지 않음을 알렸다.





Over Qualified, 많다고 다 좋은 게 아닌 필요 이상의 자격



그들이 바란 공인된 영어점수와 학력, 경력 모두 있는 것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한국에서의 경력은 10년 이상이지만 뉴질랜드에서는 경력이 전무한 상황에서 그들이 보기에 영어가 완벽하지 않아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차라리 한국기업에서 시작해 경력을 이어보자 판단해 뉴질랜드에 있는 한국기업에 이력서를 넣었고 남편이 면접을 볼 수 있는 기회는 쉽사리 다가왔다.


남편은 1년 동안 책가방에 교재와 텀블러를 챙기고 매일 티셔츠와 청바지, 후디와 반바지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그는 오랜만에 티셔츠 차림이 아닌 면접을 위한 복장이 어색하지만 살짝 긴장도 된다고 했다. 나도 오랜만에 셔츠에 서류가방까지 든 갖춰 입은 남편의 모습을 보는 것이 설레고 긴장되긴 마찬가지였다.


나는 면접을 보러 간 남편을 배웅하고 아이들이 첫 등교를 한 그때처럼 한동안 집 안을 서성이다 괜스레 모든 숟가락 젓가락을 꺼내 삶고 분주하게 움직인다.


남편의 번듯한 뒷모습이 매일 계속되길 바라는 건 너무 이른 욕심이려나. 준비한 만큼 보여주고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오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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