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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ch Dec 05. 2023

아들의 수상한 보물상자

그것을 열기 전, 심호흡이 필요한 까닭

우리 집 둘째는 한국에서 어린이집 졸업 한 해를 남기고 뉴질랜드로 날아와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이 되었다.


아들은 본인과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에 어리둥절했지만 선생님, 친구들과 자유롭게 곳곳을 돌아다니며 놀고 매일 노래도 부르는 이곳을 엄마 아빠가 학교라 말하며 데려다주었으니, 교복을 입고 큰 가방을 메고 등교는 했어도 어린이집과 별 다르지 않았기에 차츰 적응을 해나갔다.


엄마의 입장에서는 낯을 많이 가리는 아들이 걱정되어 아들을 교실 앞에 데려다주고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바라보고 있으면 아이의 선생님은 나에게 다가와 원한다면 아이와 모닝티 시간까지 함께 있어도 괜찮다는 말을 해주곤 했다. 물론 아이가 1학년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나와 아들에게 선생님의 따뜻한 배려는 낯선 환경에서 큰 위안이 되었다.


둘째는 박스나 끈으로 무엇인가 만드는 작업을 좋아한다. 어린이집을 다니면서도 종이접기나 가위질을 잘해 온갖 예쁜 쓰레기들을 만들어 방에 붙여두곤 했는데 뉴질랜드에서는 항상 통 크게 박스 작품을 만들어 온다.


학교에서 매주 금요일에 만들기 활동을 하는데 하교 종이 울리기 무섭게 일등으로 나오는 둘째의 손에는 항상 자기 몸 만한 박스가 들려있다. 나는 매주 아이 손에 통 크게 들려있는 박스들을 보며 놀란 토끼눈을 뜨지만 선생님은 방긋 웃으며 아들의 창의적인 생각에 놀란다고 하니 스스로에게 예쁜 쓰레기가 아니라는 최면을 걸고 집 안, 아이가 좋아하는 공간에 일주일 동안 전시를 해둔다. 다음 주에 둘째가 또 다른 통 큰 작품을 만들어올테니 우리 집의 전시 작품은 일주일마다 교체된다.


야옹이 버금가게 박스를 좋아하는 둘째. 박스 작품은 집에 일주일 전시 된다.





아들이 매일 가방에 넣어 오는 것


오늘은 얼마나 도시락을 깨끗하게 비웠는지 확인하려 아들의 가방을 열어보면 언제나 돌과 나뭇가지들이 까꿍하고 반긴다. 하교하는 아들을 매일 안아주며 “예쁜 내 강아지”라고 말해서 그런가. 나뭇가지를 물고 다니는 강아지처럼 오늘도 소중하게 그것들을 가방에 넣어온 아들에게 몇 번이고 물어봤다. 이것들이 왜 가방 속에 들어있는지.


항상 쓸데가 있다며 소중히 가방에 넣어오는 것들, 오늘은 매미 껍데기가 들어있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엄마 그거는 색칠해서 귤나무 아래 둘 거야."

"나무로는 내가 뭐 만들게 있어"

"여기 돌 속에 보석이 들어있는 것 같아. 이렇게 보면 반짝반짝해. 돌 속에 뭐가 들어있는지 보고 싶어"


아들의 말을 들어보면 가방 속에 소중히 넣어온 온갖 나무조각과 돌들은 나름의 이유가 있고, 모두 필요해서 가져왔다고 하니 도무지 이해는 가지 않지만 아들이 쓸 때까지 바구니에 잘 넣어둔다.


6살이 가져오기에 무겁고 큰 돌이지만 아들은 마당에 탑을 쌓았다


돌과 나무조각만 가져오면 좋겠다.


어떤 날은 살아있는 매미들을 잡아 가방 속에 넣어놔 내가 가방을 열자마자 푸드덕 날아올랐고 그것들을 다시 잡아 마당 나무에 달아준 적도 있다. 달팽이와 개코라고 하는 작은 도마뱀도 아들 가방의 단골손님이었다. 아들과 살아있는 동물과 곤충은 가방에 넣어오지 않기로 약속을 하니 다음에는 매미껍데기, 도토리, 각종 열매들을 주워왔다.


이렇다 보니 아들의 가방을 열기 전, 오늘은 무엇을 들고 왔을지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된다. 어떤 날은 예쁜 들꽃과 낙엽을, 어떤 날은 신기한 모양의 나뭇가지를 통째로 가방에 꽂아 오기도 한다.


예뻐서 주워 왔다는 꽃은 친구 선물 포장지에 붙여 화려하게 꾸민다


학교 텃밭을 지나다가 담당 선생님이 집에 가져가서 먹으랬다고 시금치와 비트루트를 통째로 넣어와 가방 안에 흙과 송충이, 지렁이를 잔뜩 마주할 때도 있다.  


아들이 가방 속에 잔뜩 넣어온 학교 텃밭 야채를 정리하는 중


2학년 내 작은 아들이 쪼꼬만 머리로 이것저것의 쓰임을 생각해 소중하게 가방 속에 담아 오는 하나하나가 귀엽고 신기하니 가방을 열자마자 푸드덕 날아오르는 매미라 할지라도, 발 빠른 작은 도마뱀일지라도 한동안 아들 가방을 열며 심장 쫄깃한 언박싱 이벤트는 계속될 듯하다.


아들의 수상한 보물상자에 오늘은 무엇이 들어있을까?


이제 놀라지 않아요.

씁씁 후후, 심호흡 한번 하고 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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