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계속 일 할 수만 있다면
뉴질랜드에서는 카페나 식당 직원들의 복장이 검은색으로 비슷비슷하다. 나는 홀에서 일하는 직원이기에 손님에게 화사하게 보여야 식당의 이미지도 좋아진다 생각했다. 더구나 외국인을 상대로 한국음식을 파는 식당이니 묘한 책임감에 밝고 깔끔한 블라우스를 입고 갔다가 사장님께 어디 놀러 왔냐 면박을 당한 이후로 검은색의 통일된 옷을 입고 매일 출근을 한다. 화사하고 단정한 옷차림은 주인에게만 허락된 것임을 깨닫는데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한국에서 학부모 모임과 브런치 모임에 입고 갔던 복숭아빛 블라우스는 떡갈비 구이와 청국장 정식을 파는 한식당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복장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어처구니없는 그 복장을 하고 소매에 달린 진주단추를 풀고 팔을 걷어 부쳐 행주를 박박 빨아 20개가 넘는 테이블을 모두 닦았다.
다음은 화장실 청소.
내 팔에 물이 튀는 것을 한 방울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빨간 고무장갑을 힘껏 올려 끼고 나프탈렌 냄새가 진동을 하는 그곳에 들어가 세면대를 시작으로 변기까지 청소한 뒤 마무리로 거울을 보고 한껏 산발이 된 머리를 정리한다. 영업 시작 전, 홀 청소와 화장실 청소, 이 모든 것을 20분 내로 끝내야 하기에 식당의 주인이나 입는 옷차림은 홀직원에게는 어울리지 않음을 깨달았다.
"March! 당신 지난주에 왜 없었니? 어제 친구 2명이랑 같이 왔었는데 당신이 없더라!"
감사하게도 나를 찾아오는 손님들이 한 두 명씩 생겼다.
식당에서 30분 넘는 거리에 산다고 하는 이 남성 손님의 첫 방문은 여성손님과 함께였다. 자리를 안내하고 메뉴판을 드리며 따뜻한 보리차를 서빙했다. 테이블에 놓인 갈색 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해하며 손님 두 분이 서로를 바라보더니 나에게 물었다. 한식당의 방문이 처음이라는 두 분께 설명도 해드리고 음식 추천도 해드렸다.
"제가 한국에 살 때 한국음식을 경험해보지 못한 분들이 처음 불고기를 맛보고 매우 만족해하는 것을 유튜브 영상으로 본 적이 있어요, 더불어 혹시 차를 가져오지 않으셨다면 해물파전과 막걸리를 추천할게요. 만약 해산물 알레르기가 있다면 김치전과 막걸리도 정말 잘 어울려요"
정말 진땀 빼며 설명을 하면서 이게 맞나 저게 맞나 서술어, 목적어를 머릿속에 이리저리 옮기며 생각하다 에라 모르겠다 단어만 주루루룩 열거하기도 했다. 나는 설명을 했다 생각했지만 손님들의 입장에서는 혼란스러웠을 것. 손님들이 메뉴책자를 보는 그 모습은 흡사 논문 보듯 했고 내 설명은 하나도 도움이 안 됐겠구나 싶어 미안했다. 하지만 손님들은 내가 설명했던 그 모든 메뉴들을 맛보고 싶다 주문했고 이후 그는 단골이 됐다.
아줌마의 오지랖과 넉살을 따뜻한 마음으로 받아주는 외국손님에게 마냥 고마웠다. 그분은 이후에도 한식과 전통 술을 도장깨끼 하듯 맛보며 자신의 친구들도 데려왔다.
말 한마디로 천냥빚을 갚는다.
그리 오래 산 세월도 아니지만 그래도 살아보니 이 속담만큼 잘 들어맞는 것이 없는 듯싶다. 더구나 해외에서 외국인과 의사소통에 답답함을 느끼며 사시는 분들이 한국인들에게 서비스를 받는 한식당에서 이 속담의 의미는 언제나 나를 돌아보게 한다.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곳의 한식당, 나는 저녁에는 일을 하지 않기에 손님의 비율이 저녁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점심시간에는 확실히 한국분들이 많다. 거의 대부분이다.
홀 직원이 나 혼자인지라, 이미 손님들의 음식을 서빙하고 있을 때면 새로 들어오시는 손님들의 안내가 늦어질 때가 있다. 이날도 손님은 많았고 노부부는 조용히 들어오셔서 자리를 안내할 직원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셨다. 식사가 끝난 자리를 빠르게 정리하고 노부부를 깨끗한 테이블로 안내했다.
"들어오시자마자 자리로 모셨어야 했는데 제가 너무 늦게 안내드려 죄송해요. 오래 기다리셨어요?"
"아니에요. 오늘 날씨가 좋아 아침부터 산책하다 점심시간까지 돌아다녔더니 배가 고파 그냥 들어왔는데 이렇게 인기가 좋은 식당인 줄 몰랐네요. 다음에는 일찍 올게요. 아내가 당뇨라 흰쌀밥을 먹으면 안 되는데 혹시 현미밥으로 주문할 수 있나요?"
흰쌀밥만 제공하는 식당에서 현미밥을 당장 만들어 드릴 수는 없었다. 식당의 셰프님도 불가능하다는 답변만 할 뿐 그 손님들이 돌아가신다고 한들 어쩔 수 없다 했다. 사장님의 사모님이 셰프로 계신 식당이지만 자신의 식당에 맞지 않는 손님을 억지로 붙잡을 필요는 없다 했다. 어떻게든 서비스를 해드리고 싶어 다른 대체 음식을 메뉴판에서 찾아보았지만 맵, 단, 짠의 감칠맛으로 손님의 입맛을 사로잡는 이 한식당에는 당뇨에 적합한 음식은 없었다.
"어머님, 혹시 식사만 현미밥으로 바꾸면 되나요? 다른 음식은 괜찮으실까요? 저희는 흰쌀밥만 준비가 되어있어서요."
"아이고, 여기 메뉴에 돌솥 비빔밥이 있던데 밥만 현미로 바꾸면 딱 좋을 것 같은데..."
이미 홀에는 북적였던 손님들도 거의 나가시고 마무리도 되어가는 때라 코 앞의 한인마트에 현미 즉석밥을 사 오면 될 것 같아 손님께 다시 물었다.
"어머님, 여기 바로 옆에 한인마트가 있어요. 저희 식당에는 흰쌀밥만 있어서 한인마트에서 즉석밥을 사서 드릴 수는 있는데 어떠셔요? 마침 다른 손님들도 없으시니 제가 얼른 뛰어가서 사 오면 돼요."
"아가씨가 참 친절하네, 근데 우리 아저씨 시키면 돼요. 내가 아가씨한테 그렇게까지 부탁하는 건 도리에 어긋나죠. 좋은 생각을 알려줘서 고마워요. 여보, 당신이 좀 다녀와줄래요?"
이후로 노부부도 자주 오시는 손님이 되셨고 서로의 건강과 근황을 묻는 손님들이 점차 많아졌다. 출근 시작과 동시에 여기저기 치우라며 20분 만에 2시간가량의 일을 시키는 사장님의 잔소리를 잊게 될 만큼 홀에서의 서빙일도 즐거웠다.
하지만 나날이 코비드 바이러스가 확대되며 영업에 차질이 생기기 시작했다. 더불어 나의 노동시간도 줄고 아예 나오지 말라는 날도 생겨났다.
이러다 또 첫 번째 일자리의 빵집 사장님처럼 슬그머니 연락을 끊고 가게가 없어지면 어쩌나 무거운 걱정에 한숨이 늘어갔다. 그동안 손님이 많고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힘들어서 출근할 때 오늘은 손님이 반 만 왔으면 좋겠다 생각했던 것에 대한 벌을 받나? 그래, 내가 식당주인이 아니라 고작 파트타임이라 그런 못된 생각을 가진 것에 대한 벌인가 보다.. 이제 그런 불만 갖지 않고 즐겁게 출근할 테니 한 푼이라도 벌 수 있는 내 자리를 지키고 싶었다.
지금 남편은 매일 동도 트지 않은 깜깜한 새벽에 무거운 안전 장화를 신고 형광생 조끼를 입고 공사장으로 나간다. 그나마 나는 지붕이라도 있는 식당에서 일하지만 남편은 허허벌판의 공사장에서 모래바람 속에서 대충 싸간 점심을 먹으며 오후의 일을 위한 열량을 억지로 채운다. 매일 지친 얼굴로 핼쑥해져 들어오는 남편의 얼굴을 보며 저녁이라도 맛있고 든든하게 먹이고 싶어 이것저것 만들지만 입맛도 없어 보인다. 이런 남편에게 또 일자리를 잃게 될 것 같다고 어찌 말할 수 있을까.
퇴근하며 다른 식당과 슈퍼마켓에 일자리를 물었지만 사정은 다 비슷했다. 코비드 때문에 기존의 파트타임으로 일을 했던 사람들의 시간까지 줄어드니 새로운 사람을 고용할 필요가 없다 했다.
여전히 뉴질랜드는 곁을 내어주지 않는다.
계속 이곳을 떠나라고 나를, 우리 가족을 밀쳐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