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일아트와 시다바리
"사장님, 제가 셰프나 주방보조도 아니고 제 손톱 가지고 뭐라 하시는 건 납득할 수 없네요. 제가 한 것은 벗겨지는 매니큐어가 아니고 젤 네일이에요. 네일 아트가 음식에 들어갈 일이 없으니 저는 제 손톱을 바꿀 생각이 없어요. 물론 네일아트를 떼러 가려면 네일숍을 가야 해서 시간과 돈이 들어가구요. 제가 서빙은 많이 해봤는데 네일아트 지적을 당한 적은 처음이에요"
다음날 사장님과 워홀러 친구가 네일아트 문제를 두고 팽팽히 맞섰다. 사장님은 워홀러 친구의 뾰족한 손톱과 여러 파츠를 붙인 네일아트를 보며 음식에 손톱이 닿거나, 손톱에 붙인 파츠나 구슬이 음식에 떨어져 위생 문제나 손님과의 마찰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전달한 내용을 워홀러는 납득할 수 없다 했다.
사장님과 워홀러 친구의 대화가 길어지며 영업은 시작됐고 손님들은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떤 사업장이든 손해 보는 장사는 싫을 것이다. 사장님도 10분의 여유로움도 아르바이트생에게 용납지 않아 아르바이트생의 일 시작시간과 식당 오픈시간을 같게 만들다 보니 유니폼 입고 홀에 나오기 무섭게 손님을 응대해야 하는 정신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당찬 워홀러 친구는 자신의 생각을 끝까지 고수하는지 사장님과 둘은 한참 동안을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동안 홀에는 손님으로 가득 찼고 혼자 8테이블의 주문을 받고 모든 식사를 서빙했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식사를 다른 테이블에 잘못 서빙하거나 음식이 든 그릇을 손에서 놓친다거나 뜨거운 찌개를 테이블에 내려놓을 때 흘리는 불상사는 없었다. 나 홀로 손님이 밀려 들어오는 상황에 맞닥뜨리며 긴장했지만 주문하고 느긋하게 기다려주시는 손님들 덕에 서빙이 조금 늦어져도 큰 문제가 일어나지는 않았다.
혼자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다 못해 주방에 계시던 여성 셰프는 키친에서 나와 홀을 거쳐 사장님과 워홀러가 서로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그 방에 노크를 했다.
손님들이 식사를 하고 하나둘씩 일어날 때 굳게 닫혀 있던 방의 문이 열렸다. 워홀러 친구와 사장님이 나왔다. 워홀러 친구는 그대로 식당 문 밖으로 나가버렸고 내가 퇴근할 때까지도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날 워홀러 친구가 출근했다. 그날은 식당을 오픈하자마자 들어오시는 손님들이 없어 먼지가 뽀얗게 쌓여있는 홀의 장식품들을 좀 닦아야겠다 싶었다. 청소도구를 가지러 가며 워홀러 친구에게 말을 걸었다.
"어제 퇴근할 때까지 기다렸는데 안 오길래 또 못 보는 줄 알았어요. 다시 보니 이렇게 좋네요."
"저 네일아트 떼려고 네일숍 가느라 바로 나간 거예요. 원래 예약없이 당일은 안해주는데 제가 그 네일숍 단골이라 원장님이 바로 오면 가능하대서 나갔거든요. 사장님이 이야기 안 해주셨나 봐요?"
"어제 손님이 많아서 뭘 얘기할 틈도 없이 후다닥 하고 퇴근했어요. 파츠 뗀 손톱도 예쁘네요. 손이 예뻐서 그런가 봐요"
"언니, 전 중고등학생 때 엄마가 저한테 화장 안 해도 예쁘니까 화장하지 말라는 말을 진짜 싫어했어요. 화장해야 예쁘죠! 손도 가꿔야 예쁘죠! 저 지금 좀 짜증 나요"
그녀의 뾰족한 대답에 놀라긴 했지만 한창 멋 부리고 싶을 20대에 구수한 된장냄새와 시큼한 묵은지 냄새가 온몸을 휘감는 한식당에서 자신의 아름다움이 빛을 발하기는커녕 찐득한 식당 테이블을 닦으며 아름다움에 대한 취향을 억압당한 것에 대한 분노가 계속 남아있는 듯했다.
"그런데 언니, 언니는 식당에서 왜 밥을 안 먹고 퇴근해요?"
"저는 애들이 학교 끝나는 시간에 맞춰 가느라 바빠요. 어차피 한식은 집에서도 맨날 해 먹는 거라 굳이...."
"언니, 애 엄마였어요????"
대화의 주제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녀와의 스몰토크를 마치고 또다시 휘몰아치는 손님들을 맞이하며 정신없이 움직였다. 어두운 베이커리에서 멍 때리며 벽 보고 설거지하는 첫 번째 아르바이트의 기억에 비하면 좋은 환경이지만 손님들이 많아 정신없이 서빙하고 퇴근 후 집에 가면 녹초가 된다.
트라이얼 기간 동안 워홀러 친구와 선의의 경쟁을 하는 것에 불편한 마음이 없지 않았다. 이렇게 장사가 잘 되는 큰 규모의 한식당에 서빙 아르바이트생 둘 쓰는 것이 적당할 것 같았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고 고용주의 마음과는 반대되는 것 일터.
한 푼이 아쉬운 뉴질랜드의 애 둘 엄마는 동이 트지 않은 깜깜한 새벽 차가운 공기 속, 공사장으로의 출근을 위해 무거운 워커를 신고 온몸에 멍이 가실 날 없는 남편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 남편이 혼자 짊어지고 있는 경제적 짐을 덜어주고자 어떻게든 이 한국식당 서빙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어야 했다.
띠동갑은 훌쩍 넘는 워홀러와 알바 자리를 두고 사장님의 머릿속에서 저울질당하며 임시로 일했던 5일 동안 워홀러 친구와 얕은 정도 들었다.
솔직한 성격이 자신의 강점이라고 생각하는 워홀러 친구는 트라이얼 마지막 날, 내게 말했다.
"언니, 저 서빙 일 안 할 거예요. 남이 먹고 남긴 밥그릇 치우는 게 너무 역겨워요. 네일아트 없는 제 손을 볼때마다 초라해보이고 적응도 안돼요. 시다바리 짓은 제 성격에 안 맞는 것 같기도 하구요. 어차피 사장님이 한 명만 뽑는다고 했으니 그냥 언니가 하세요. 저는 트라이얼 기간 동안 여기서 먹은 공짜 점심 만으로 뽕뺀 것 같아요."
뉴질랜드 첫 번째 아르바이트를 하며 '무수리' 소리를 들었는데 이번에는 '시다바리'구나. 역시 어디로 튈지 모를 솔직하고 투명한 표현에 나는 할 말을 잊은 채 그녀가 다른 일을 찾아 잘 살기를 바라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집으로 돌아와 저녁에 문자 한 통을 받았다.
“march씨 월요일부터 정식으로 저희와 같이 일합시다. 월요일에 봅시다.”
선의의 경쟁이면 좋았겠지만 시다바리 짓을 포기한 상대편 선수로 인한 부전승으로 네일아트 없는 맨 손의 나는 뉴질랜드에서 두 번째 일자리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