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입어야 잘 입었다고 소문이 날 것인가
내가 일했던 라멘집은 꽤나 규모가 컸다. 본사 포함 5군데 정도 지점이 있었고, 그 직원들이 모두 모이는 '스태프 파티'를 매년 초에 열었다.
파티라! 이 얼마나 눈 돌아가는 포인트인가. 한국에서 하이틴 영화 보고 자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서양의 파티에 로망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로망덩어리였다.
사실 캐나다에 온 지 얼마 안 돼서 외국 친구가 홈파티에 초대해 준 적이 있다.
두근두근, 무슨 옷을 입을까 매일 고민하던 나. 결국 크리스마스 할인 세일하는 빠알~간 드레스를 사서 입고 갔다. 차가 없어 버스를 타고 친구 집으로 향하는데 모두가 새빨간 원피스를 질질 끌며 걸어 다니는 동양인의 모습을 쳐다보더라. 심지어 어떤 남성은 나에게 오늘 파티가 있냐고 말까지 걸었다. 부끄러워 죽는 줄..
그렇게 도착한 친구의 집. 친구가 나를 보자마자 "WOW!!!"하고 외쳤다. 동양인 다섯 모인 파티에 내가 제일 화려하고 입고 나타났기 때문이다. 나는 안이나 밖이나 부끄러울 일 밖에 안 남은 것이다.
아무튼 T.P.O 실패에 관한 트라우마(?)가 있는 나는 이번 스태프 파티는 도대체 어디까지가 적당한 옷차림인지 몰라 혼자 고민했다. 크리스마스 때처럼 혼자 오버하면 너무 부끄럽고.. 그렇다고 내 인생에 어쩌면 다시는 없을 서양 파티일 수도 있는데 무난하게 가기엔 용납이 안 되고..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다 내가 선택한 것은 백화점 세일 상품인 검정 원피스였다. 꽤나 무난한 디자인이지만 느낌상 한국에서는 못 입을 것 같은 디자인(그 예상은 맞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코트를 동여매고 파티 장소인 펍으로 향했는데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건, 화끈한 옷차림들. 크리스마스 때의 내 드레스도 명함을 못 내밀 것 같은 그런 옷들이 가득했다. 어쩜 그렇게 다들 멋지고 화려한지, 나는 또 중간 맞추기에 실패한 것이다.
무제한 제공 되는 술과 뷔페, 무대 중앙에서 갑자기 춤을 추기 시작하는 사람들. 아는 얼굴과 모르는 얼굴이 다 섞여 있어 더 재밌는 상황, 이리저리 살짝 주고받는 시선들. 그 현장은 마치.. 고등학생들이 다른 학교 학생들하고 댄스파티를 열고 있는 상황 같았다. 낯설어서 더 재밌고 익숙해서 더 웃긴 그런 상황들.
다음날 아침, 좁은 내 방에서 눈을 떠보니 무릎이 갈려있었다. 무제한 샴페인의 당연한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