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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와 Sep 30. 2024

옛말에, 사람은 앓음다움을 통해 알움다워지는거랍니다.

하곡 서 청와 론, 서론(書論)

梅經寒苦發淸香 매경한고발청향
人逢艱難顯其節 인봉간난현기절

매화는 한 겨울 추위의 고통을 겪은 후에 맑은 향기를 피워 내고
사람은 간난을 만나고 나서야 그 절개를 드러낸다.

[청와론]

1. 칠언 댓구의 출전

위의 칠언으로 된 댓구의 출전에 대해서는 확정할 만한 증거가 없습니다. <시경>이라는 설이 있지만, <시경>에는 그런 구절이 없다고 합니다.

'梅經寒苦發淸香, 人逢艱難顯其節'에서 두 번째 구절의 봉(逢 만날 봉)은 섭(涉 건널 섭)으로 쓰기도 합니다. 신영복 선생님은 '精金百鍊出紅爐'(정금백련출홍로, 좋은 쇠는 화로에서 백 번을 단련된 뒤에 나온다)라는 구절을 '梅經寒苦發淸香'이라는 구절과 함께 쓰셨다고 합니다.

말이 생겨났는데 그 말이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생겨났는지 모르겠다는 말이잖아요? 말의 유래에 의거해 그 말에
대한 해석과 이해가 달라진다면 그 말의 유래가 중요하겠지만, 다만 출전이 어디냐의 문제라면 저는 이 구절은 '격언'에 해당한다고 보겠습니다.

그 말의 의미가 더 중요하다는 거겠지요.

2. '간난'(艱難)과 '절'(節)의 의미 - 1

'간난'(艱難)은 힘들고 어려움을 뜻하는 말입니다. 여러 간난 가운데 대표적으로 어렵고 힘든 것이 '가난'이었던 모양입니다. 가난이란 궁핍함, 즉 부족하고 결핍된 상태를 말합니다.

가난에 허덕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허덕인다는 것은 생활에 필수적인 것이 부족하고 결핍된 상태가 이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생활필수품을 넘어서면, 나머지 부족과 결핍은 마음의 문제입니다.

가난에 허덕이는 것으로부터 얼른 벗어나는 길은 마음도 함께 가난해지는 것입니다. 가난은 풍요로움을 욕망하는 마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마태복음 5장3절)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자세가 마음이 가난한 자가 누리는 복인 셈입니다.

가난에서 벗어나는 차선은 부족과 결핍을 채우는 것입니다. 부족과 결핍을 채웠다 해도 마음이 가난해지지 않으면 떵떵거리고 사는 가난뱅이가 되는 겁니다.

3. '간난'(艱難)과 '절'(節)의 의미 - 2

'간난'이란 '간난신고'(艱難辛苦)의 줄임말입니다. 어렵고 힘들고 쓰리고 괴로운 일입니다. 흔히 역경(逆境)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날 때부터 그 간난을 겪습니다. 삶이 온통 간난입니다. 그것을 석가모니는 '일체개고'(一切皆苦)라고 하셨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말은 도종환 시인의 시 <흔들리며 피는 꽃>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흔들리는' 것이 간난한 과정입니다. 핵심은 간난을 이겨내는 삶의 과정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간난은 아픔입니다. 아프면서 자라나는 겁니다. 성장과 성숙입니다. 그렇게 아픔과 간난을 겪으면서 자라는 삶의 모습을 저는 '앓음답다'라고 말합니다. 간난을 이겨낸 '앓음다움', 간난이 우리에게 주는 첫번째 의미입니다.

4. '간난'(艱難)과 '절'(節)의 의미 - 3

'피는 꽃'이 열매고 결실입니다. 자연에서야 꽃 피고 열매 맺고 씨알이 움트는 순환으로 족합니다. 사람에 이르러서는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요구됩니다. 핀 꽃의 아름다움이 문제가 됩니다. 자기 내면의 어떤 씨알을 어떻게 움틔워서 어떤 꽃과 어떤 열매를 맺으면서 살고 있는지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이 필요한 겁니다.

그것은 성장과 성숙을 넘어서는 '거듭남'입니다.

가난과 간난에서 벗어나는 최선의 길은 '알'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알'이란 '씨알'이라는 말입니다. 우리 안에는 무수히 많은 '씨알'들이 들어있습니다. 그것을 저는 '무한한 가능성'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현실적으로 무엇이든 다 될 수 있다는 환상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펼쳐지는 미래는 밖에서도 오지만, 우리 안의 '씨알'들을 찾아내어 그것을 움틔워가는, 자기 내면을 경작하는 데서 옵니다. 그 '씨알'이면서 '열매'인 우리 내면의 아름다움이 '절'(節)이라고 봅니다. 이와 같이 씨알을 움틔워 열매를 맺어가는 모습을 저는 '알움다움'이라고 합니다.

이제 '人逢艱難顯其節'(인봉간난현기절), 이 구절을 다시 해석해 봅니다.

사람은 앓음다움을 통해 알움다워지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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