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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않은 시, 입말에서 몸말로

한강의 서랍 속 한 뼘의 저녁

by 청와

심장이라는 사물

- 한강

지워진 단어를 들여다본다

희미하게 남은 선의 일부

또는 ㄴ이 구부러진 데
지워지기 전에 이미
비어 있던 사이들

그런 곳에 나는 들어가고 싶어진다
어깨를 안으로 말고
허리를 접고
무릎을 구부리고 힘껏 발목을 오므려서

희미해지려는 마음은
그러나 무엇도 희미하게 만들지 않고

덜 지워진 칼은
길게 내 입술을 가르고

더 캄캄한 데를 찾아
동그랗게 뒷걸음질치는 나의 혀는
(한강,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문학과지성사, 2013, 14-15쪽)

[몸말로 읽기]

1. 극단적인 생각

저는 제가 꽤나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극단적인 생각이란, 생각할 수 있는 가능한 극단까지 생각을 해본다는 겁니다. 그 극단적인 생각을 견뎌낼 때 비로소 그 <생각>이 <생각>으로서 겨우 자리를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을 해오고 있었습니다.

한강의 시를 보면서, "아~ 이 사람 참 생각이 극단을 넘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시를 이야기할 때, <행간(行間)>이라는 말을 합니다. <행간>은 시의 한 행과 다음 행 사이에, 나타나 있지 않은 숨은 <말(의미)>이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한강은 그럽니다.

<지워진 단어를 들여다본다>

문장 속에 밝히지 않고 숨긴 <말>이 있다면, 그 <말>은 어구와 어구 사이에 있는 말 <어간(語間)>이 됩니다.

한강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서 <음소간(音素間)>을 말합니다. 음소 안에서도 <곧게 이어진 데>와 <구부러진 데>, 그런 음소 내부의 글씨 쓰기의 과정까지 이야기하는 겁니다.

참으로 사고가 극단적이랄 수밖에요.


2. 아직도 배가 고프답니다.

행간을 통해 그렇게 자기의 생각을 지워놓고, 비워놓고도 성에 차지 않는답니다. <음운간(音韻間)>이 있다면 그것 마저 표현하고 싶답니다.

그 좁은 곳에 들어가려면, 말하려는 <나>가 그만큼 작아져야 합니다. <어깨를 안으로 말고, 허리를 접고, 무릎을 구부리고 힘껏 발목을 오므려서>

그렇게 함으로써 어디까지 이르고자 하는 걸까요? <희미해지려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스스로 지워지고, 비워지고 싶은 겁니다. 그것이 극단적인 생각까지 넘어서려는 생각입니다.

3. 지금의 모습은

두 가지가 갈등하면서 공존하고 있습니다.

1) 덜 지워진 칼로 길게 입술을 가르는 나
2) 더 캄캄한 데를 찾아 동그랗게 뒷걸음치는 나

1)의 <덜 지워진 칼>은 <나의 혀>입니다. 그 혀가 길게 내 입술을 가른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다는 겁니다.
2)의 <나의 혀>는 더 이상 입술을 갈라 말하지 않고 안으로 뒷걸음질칩니다.


입말을 멈추고 몸말을 향하는 겁니다.

4. 제목이 왜 그래?

제목 <심장이라는 사물>은 시의 내용과 달리 생뚱맞습니다. 그러나 그 어긋남이 이 시의 핵심입니다. '심장'은 생명의 상징이며, '사물'은 이름 붙여진 대상입니다. 시는 이 둘 사이, 즉 살아있는 존재(심장)를 언어(사물)로 포획하려는 불가능한 시도를 드러냅니다. 시인의 언어는 그것을 감당할 수 없기에, 스스로를 접고, 지우고, 혀를 움츠리며 침묵하는 겁니다.

제목은 한 마디로 <사물>입니다. 시의 내용은 한 마디로 <언어(말)>입니다.
제목과 시의 내용의 관계는 <말과 사물>, <언어와 사물>의 관계입니다.

언어는 사물을 낚는 그물과 같습니다.

<언어>가 살아있기 위해서는, 언어가 숨쉴 수 있는 <틈>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침묵이 가장 넓은 틈이겠는데, 사물만 남고 언어는 사라지게 되는 거지요.

틈을 조율하는 것, 그것이 언어의 그물을 성글게 하는 것이겠습니다. 그래서 지우고 비우자네요.

보세요. 시가 끝났다는데, 형태는 어떤가요?

<더 캄캄한 데를 찾아
동그랗게 뒷걸음질치는 나의 혀는>

말을 하다말았습니다. 거기서부터 새로운 언어 영역이 나타나는 겁니다. 언어를 멈추고, 언어의 그물 틈을 통해 몸말을 길어올리는 겁니다. 내 혀가 주인공이었던 입말을 내려놓고, 서로의 떨림을 감응하는 방식으로 서로를 새롭게 낳아주는 겁니다. 그것이 언어가 멈춘 곳에서 들려오는 '몸말'입니다.


한강의 '몸말', '심장이라는 사물'에 감응해서 새롭게 낳게 되는 '몸말'이 이런 겁니다.


청와의 '몸말', '인간이라는 생물', '생물이라는 사물', '사물이라는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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