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란 단지 문장의 연쇄, 단락의 연쇄가 아닙니다. 살아있는 생명입니다.저의 이 글은, 제가 무당이 되어서 네 분의 혼백을 모시고 벌인, 글 전체가 한 판의 <굿>입니다.
오귀굿은 죽은 이의 넋을 비는 굿입니다. 이제야 굿을 벌이니 마른 오귀굿입니다.
뒤 늦게 올리는 치성을 혜량하오소서.
1. 부정(不淨)거리
향 한 촉 사르오니
내리시는 영정가망
향내 잡숫고 좌정하시고
정화수 한 그릇에
오르시는 부정가망
쉬이 들으소사
막소주 한 잔 부어
정성으로 올리오니
이 정성 받으시고
발원 성취 비나이다
2. 청배(請拜)거리
자리를 정히 하고
치성으로 올리는 정성
다른 정성 아니옵고
발해 혼 찾아 먼 길 떠난
젊은 넋들 동해에 잠드니
동해용왕 남해용왕님
서해용왕 북해용왕님
이 정성 즐거이 받으시고
진 넋이거든 진 넋으로
마른 넋이면 마른 넋으로
넋 건지어 나리소서
이 굿당으로 오십소사
사해 바다에 넋이 되신
외로운 혼령 의로운 혼백
푸른 독도 가꾸기 일심으로
땅과 흙을 사랑하신
이덕영 혼령이시여
바다에 나서 발해를 꿈꾸다
바다와 함께 고이 잠든
장철수 혼백이시여
청년 문화 꽃피워 보자며
푸른 기상 그리시던
이용호 혼백이시여
아름답게 살자하며
온누리를 누비시던
임현규 혼령이시여
나리소서 이 굿당으로
오십소사 비나이다
왼쪽부터, 이덕영 님, 이용호 님, 임현규 님, 장철수 님
3. 노정(路程)거리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삶입니다. 임동창 선생의 한 마디가 저를 동토의 땅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으로 떠나게 했습니다. "참 '나'를 찾으려거든 껍데기의 '나'를 죽여라!" '나'를 죽이라 합니다. 1997년 '개인으로서의 나'는 고단했던 모양입니다. 이미 주검처럼 삶의 맛을 느끼지 못하는 날들이었습니다. 죽을 맛으로 사는 삶이었으며, 작은 고뇌로 몸부림치던 시간이었습니다.
임동창 선생과의 만남의 인연과 한 여인네와의 헤어짐의 인연이 저를 블라디보스톡이라는 곳으로 가게 했습니다. 임동창 선생은 죽으러 가라 하고, 한 여인네는 네 마음대로 하라 합니다. '나'는 무엇이었을까요?
'멀리 떠나는 것은 깊이 들어가는 것이다'라고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껍데기의 나를 죽이고, 참 나를 배우러 떠나자고 했습니다. 한 여인네는 그렇게 저를 자유롭게 해 주었습니다. 그것이 인연이었습니다. 참 '나'와의 만남을 향한 노정의 출발이었습니다. 그 노정의 짧은 접점에 '뗏목 탐사대'와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4. 화두(話頭)거리
나라꼴은 나락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문민정부는 외환위기를 초래해 나라를 국제통화기금의 관리체제 아래 빠뜨렸습니다. 백성들은 삶의 희망을 놓아버린 듯했습니다. 양극화와 고용불안, 청년실업 등으로 인해 가정이 파탄나고 자살이 급증했습니다.
'뗏목 탐사대'는 그 와중에 '발해 건국 1300년'의 의미를 찾아서 왔습니다. 거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발해라는 '나라'와 발해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의미는 아직 '화두'와 같은 것이었고, 뗏목 탐사대는 그 화두를 온몸으로 풀어내려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헤어짐이 있었습니다. '발해 건국'은 역사적 사건이지만, 뗏목 탐사는 상징적 사건입니다. '발해'가 우리에게 던지는, 뗏목 탐사대가 지금-여기에서 발해를 찾는 의미는 미해결의 화두로 남아 있습니다. 그들이 온몸으로, 목숨을 바쳐가며 풀고자 했던 화두입니다.
'나'와 '나라'!
5. 이용호 대원 거리
이용호(당시 35세) 씨와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분에게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청년 문화'를 꽃피워야 한다는 간절한 바람이었습니다.
'나라'가 많이 늙었습니다. 늙음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늙음은 그 연륜을 후손들에게 자양분으로 내어주고 스러져야 합니다. 스러질 때 스러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꼴이 사람들의 꼴입니다. 스러질 때도 아닌데 스러질 것 같은 것이 또한 사람들의 꼴입니다. 그러니 '나라'가 늙었습니다.
늙으신네들은 '어르신'이 되지 못하고 '어린 아이'처럼 다툽니다. 젊은네들은 푸른 기상을 갖지 못하고 싹이 노랗습니다.
그래픽디자이너였던 이용호 씨가 그리고자 했던 그래픽은 푸른 정신이었습니다. 푸른 '나라', 푸른 기상의 '청년'이 그가 디자인하고 싶었던 '나라'와 '나'의 모습이었습니다.
이용호 씨와 술을 마시고 다투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 푸르름을 이루는 방법론에 대한 의견 차이가 있었습니다. 저는 학문과 교육을 통한 개개인의 각성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용호 씨는 '청년 문화 운동'의 방식으로 적극적인 방법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돌이켜보건대, 양자는 상보적이어야 합니다. 이론과 실천이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바람은 '푸르른 데'서 어울려 노는 것이었습니다.
이용호 씨가 찾고자 했던 발해는 푸르른 나라였고, 푸른 기상이었습니다.
6. 이덕영 선장 거리
이덕영(당시 49세) 선장님은 후발대로 오셨습니다. 장철수 선생님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분에게서는 농부의 내음새가 났습니다. 들꽃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꽃씨를 뿌리는 마음, 꽃을 가꾸는 마음, 그 꽃을 내가 보지 않아도 누군가 그 꽃향기를 맡도록 땅에 씨앗을 뿌리는 마음이 농부의 마음입니다.
이덕영 선장님에게 나라는 '땅'입니다. 땅에서 나서, 땅에서 자라, 땅으로 돌아가는 '나'를 찾아주셨습니다. 땅은 땅만 땅이 아니라, 그런 마음이 있는 '나'가 있는 곳은 어디나 땅이라고 일러주시는 듯합니다. 그래서 바다도 땅이고, 하늘도 땅입니다.
지금 이 땅의 사람들은 무슨 꽃을 심어 무슨 냄새를 풍기고 있는가요? '들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름 없는 꽃이라도 저 홀로 피었다 지는 그 생명이 수수천년 이 땅을 지켜온 동포들입니다.
'남'에게 땅을 내어주어도 꽃들에게는 국경이 없습니다. 이덕영 선장님은 우리에게 '나라'와 '나'에 대해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마음으로 온누리에 퍼져나가라고. 그윽한 들풀 같은, 들꽃 같은 냄새를 만방에 피워내라고. 그 땅이 모두 내 나라가 아니겠느냐고.
농부는 남의 땅을 빼앗지 않습니다. 농부는 제 땅을 소중히 지킬 줄 압니다. 생명을 기를 줄 모르는 이에게 땅을 함부로 내어주어서는 안 됩니다. 독도가 그렇습니다. 지켜야 하는 것은 땅이기도 하지만, 생명을 기를 줄 아는 마음입니다. 농부의 마음, 농부의 냄새를 지니기를 그 분이 당부하시는 것만 같습니다.
이덕영 선장님이 그린 발해는 생명을 기를 줄 아는 나라였고, 생명을 기르는 노동의 땀 냄새가 나는 사람들의 나라였습니다.
7. 임현규 대원 거리
임현규(당시 27세) 씨는 아프리카를 비롯해 여러 나라를 단신으로 여행한 탐험가입니다. 저는 그를 처음 본 순간 그의 독특한 매력에 이끌렸습니다. 단단한 체구에 길게 묶어서 엉덩이까지 늘어뜨린 머리채가 눈에 선합니다. 그의 말버릇이 하나 있습니다.
"아름답지 않습니까!"
그는 생사를 건 항해 도중 무선 교신을 하면서도 늘 바다가 '아름답다'고 했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청년이었습니다.
출항을 하기 이틀 전입니다. 12월 28일 임현규 씨와 밤새 술을 마셨습니다.
"박 교수님, 세상은 참 아름답지 않습니까?"
"현규 씨가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시는 게지요. 현규 씨와의 만남을 아름답게 새겨 두렵니다."
"박 교수님, 제가 머리카락을 왜 안 자르는지 아십니까? 이 머리카락이 이만큼 길렀을 때는 어디서 무엇을 했고, 이만큼 자랐을 때는 또 무엇을 했고 하는 일들이 머리카락에 아로새겨져 있답니다. 그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랍니다. 박 교수님을 뵈니까 너무 아름다우신 것 같습니다. 학생들에게 보여주시는 모습이나, 혼자 하시는 일이나.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고국에 돌아가셔서도 그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학생들을 이끌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학생들이 아름다운 사람으로 자라도록..."
아름다운 청년 임현규 씨는 제게 그와 같은 당부의 유언을 남긴 셈입니다. 우리는 팔뚝을 서로 힘주어 잡으며 다짐을 했습니다.
'아름다운 나라와 나를 꿈꾸며'
8. 장철수 대장 거리
장철수(당시 39세) 선생님을 생각하면 목이 멥니다. 하루는 발을 절며 제 방에 찾아오셨습니다. 발목을 삐신 겝니다. 다급한지라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침을 놓아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송곳을 망치로 두들기고 불에 달구고 하여 억지 침을 만들어 놓아드렸습니다.
또 며칠이 지나서는 팔에 깁스를 하고 오셨습니다. 뗏목 작업을 하던 중 밧줄에 손가락 마디뼈를 다치셨답니다. 털로 덥수룩한 선생님의 모습이 떠오르고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박 선생님, 나라꼴이 어쩌다 이 모양이 되었지요?"
"어디 하루 이틀의 일이었겠습니까?"
그 분은 박현 선생의 <한반도가 작아지게 된 역사적 사건 21가지>(두산동아, 1997)라는 책을 읽고 계셨습니다. 해상왕국이었던 백제의 멸망, 청해진의 폐쇄, 발해(대진국)의 멸망으로 인한 해상지배권의 상실을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21세기는 우리 '나라'가 해양국가로 나가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 분에게 발해는 그 해양국가의 꿈을 간직한 우리 겨레의 역사였습니다.
"어찌 이 조그만 땅덩어리에서 이리 저리 갈라져서 싸우고 있는지 한심스럽습니다."
"인류가 쏟아놓은 온갖 쓰레기가 한반도에 그득하지요."
"그래서 이번 항해에 모두 뗏목에 싣고 떠나렵니다. 모든 쓰레기들 동해에 묻어버리고 발해의 기상을 싣고 돌아가렵니다."
"동해가 오염되겠군요."
"허허허, 그렇게 되나요?"
"모두 싣고 떠나서 가지고 들어가세요. 바다를 항해하는 것이 나라를 항해하는 것이겠지요. 우리나라의 모습을 있는 대로 보고, 탈난 곳을 바로 알아내서, 스스로 고쳐내야지요. 그리고 그 힘으로 병든 세상을 고쳐주는 민족이 되어야겠지요."
"맞습니다. 지금 읽고 있는 이 책에서 많은 것을 깨우치고 있습니다. 실학의 의미를 다시 보게 되었고요. 실학사상을 다시 일깨워야겠어요."
"예, 실사구시 해야지요. 이용후생도 해야 하고요. 그 뗏목에 '동학'(東學)을 함께 싣고 떠나주시면 어떠할는지요? 제가 이곳 러시아에 오면서 달랑 들고 온 것이 '동학'이랍니다."
"그렇군요. 실학과 동학이라!"
장 선생님은 서른아홉 해를 온몸으로 사셨습니다. 1998년 1월 21일자 그 분의 마지막 항해 일지를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16:10 추위로 바다의 즐거움은 덜하다. 무엇이든 처음부터 시작하자. 그래야만 무엇인가 할 수 있을 것 같다. 바다를 마음껏 안고 싶던 내게 부상은 30대의 마지막을 정리시키고 있다. 빨리 탈출하고 싶다. 갑자기 눈보라가 치고, 주위는 이내 깜깜하다. 파도가 또다시 발광을 한다. 방황했던 30대. 벌거벗고, 갖은 땟자국을 이 바다에 던지고 싶다. 사랑했던 30대. 잘 가시오.'
장 선생님은 그 기록을 피로 썼고, 저는 그 글을 눈물로 읽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무엇인가요? <공동의 善>이라는 그의 글에서 그 문제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인간에게 3가지 고귀한 액체가 있다. 피는 생명이자 눈물은 사랑, 땀은 노동으로 상징된다. 피는 자신을 지탱하는 원천이자 이를 지키기 위하여 투쟁하는 것이고, 눈물은 감정의 표출로 투쟁하는 것이자 감정의 표출로 문화를 빚어 만드는 삶의 옹달샘이며, 땀은 신성한 노동의 대가로 인간의 가장 빛나는 가치인 것이다.'
피는 생명이라 했습니다. 이덕영 선생님의 생명입니다. 눈물은 사랑이라 했습니다. 이용호 씨의 문화입니다. 땀은 노동이라 했습니다. 임현규 씨의 실천력입니다.
9. 뒷전거리
네 분은 동해에서 생의 노정을 마감했지만, 네 분의 혼령은 우리의 얼 속에 살아있도록 해야 합니다.
각자가 바라는 '나라'와 '나'의 모습이 있을 겁니다. 없다면 그려 볼 일이고, 있다면 그것을 이루기 위해 '나'라는 뗏목, '나라'라는 뗏목을 띄워야 합니다.
그것이 네 분의 혼령이 우리 얼 속에 살아있게 하는 발해탐사 뗏목의 길, 삶의 길입니다.
<푸르고 향기롭고 아름다운 나라>에서, 이용호 님, 이덕영 님, 임현규 님, 장철수 님, 더불어 부등켜 얼싸 안고, 오늘 한 말 안주 삼아 술 한 잔 하고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