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색깔〉 & 〈피아니스트의 전설〉
최근 본 두 영화 ‘피아니스트의 전설’과 ‘가족의 색깔’은 너무 다른 개성을 지니고 있다. ‘시네마 천국’의 감독 주세페 토르나토레가 만든 ‘피아니스트의 전설’은 1998년, 일본 영화 ‘가족의 색깔’은 2018년 개봉되었다. 시간적 간격만큼 두 영화가 보여주는 세상의 모습은 다르다.
‘피아니스트의 전설’은 일본의 커피 장인 이야기를 담은 책 《커피집》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후쿠오카 ‘커피 비미’에서 50여 년 자신만의 커피 세계를 이룬 융드립 장인 모리미츠 무네오가 이 영화에 대해 한 이야기는 무척 인상적이다.
“정말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 생각하는데, 뭐가 재미있냐면 스토리 구성이 클래식 음악의 가장 기본적인 코드법칙과 같다는 점이에요. 도의 화음으로 시작해서 도의 화음으로 끝나는 피아니스트의 생애가, 어딘가 나와 다이보 씨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커피에서 일종의 재능을 펼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배에서 태어난 천재 음악가 나이틴 헌드레드의 이야기를 담은 ‘피아니스트의 전설’은 고전적인 문법에 충실히 따르는 영화이다. 땅을 한번도 밟아본 적 없으며 배를 한 번도 떠나본 적 없는 천재 피아니스트의 이야기는 영화적 설정이라 사실적이지 않다. 그것을 통해 감독은 예술에 대해, 삶에 대해 말하고 있다. 잘 만든 영화이지만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오래된 영화의 틀 안에 있다는 생각이다.
반면 일본 영화 ‘가족의 색깔’은 우리 주변에 있음 직한 일들을 소재로 욕심 없이 잔잔하게 만든 영화다. 일본 영화나 드라마를 좋아해 많이 보는 편인데, 소위 대박을 바라는 블록버스터보다 다양한 주제, 다양한 설정으로 촘촘하게 이야기를 엮어가는 이런 매력적인 작품이 참 많다.
남편 유골함을 든 아키라와 어린 슌야가 기차를 타고 가고시마로 장면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소곤소곤 들려준다.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오랫동안 연을 끊고 살았던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이어지는 만남이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가는 이야기가 잔잔한 물결처럼 흘러간다.
평생 협궤열차 기관사로 일한 아버지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다. 무덤덤한 그 표정. 아들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생전 처음 보는 손자를 보고서도, 죽은 아들의 새 여자에 대해서도 무덤덤하기만 하다. 손자의 ‘열 살 성인식(열 살 되던 해 5월 부모님에게 감사편지를 써서 발표하는 행사)’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갈등 앞에서 아버지의 멘트는 참으로 인상적이다. ‘네가 그렇게 멋대로 죽어버리니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라는 말 한마디. 아버지는 아들의 죽음을 그렇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한 칸 혹은 두 칸짜리 협궤열차는 무척 정감 있어 보인다. 고속철도 신칸센보다 탈탈거리며 달리는 작은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면 왠지 따뜻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 되어 돌아올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가족은 무엇일까, 라는 물음은 의미가 없다. 태어나자마자 배에 버려진 ‘피아니스트의 전설’의 천재에게는 가족의 개념이 없다. 가족의 빈 공간은 음악으로 채워진다. ‘가족의 색깔’은 ‘가족’에 대한 다른 시선을 보여준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적어도 내 옆에 꼭 붙어 있어 줄 한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바로 그 사람이 가족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