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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카레 Jul 25. 2023

잃음과 얻음의 그릇

각자의 그릇을 찾아가는 것이 삶이지요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이 있고,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는 법이라지요. 인생에서는 모든 것을 잃기만 하지도 않을 뿐더러 모든 것을 얻을 수만도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각자에게는 자기만의 그릇이 있지요. 그러나 저마다에게 적당한 크기의 그릇이 있다는 점을 깨닫는 것도 어렵거니와 그 안에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물을 채우는 일은 더욱 어렵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현인들께서 그토록 자신을 알아야 함을 강조하신 모양입니다. 자신을 알아야 능력에 맞는 그릇을 만들 수도 있고, 물을 얼마나 오래 그리고 많이 부어야 하는지도 정확히 가늠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보통 사람은 평생 잃고 얻음을 반복하면서 삽니다.




 모디와 함께 살면서도 잃은 것과 얻은 것이 있습니다. 우선 많은 돈을 잃었지요. 사고뭉치 모디는 이전 집에서는 낡은 수도관과 창문 방충망을 망가뜨려 제가 배상을 해 줘야만 했고, 탈출을 해서 결막염과 장염에 걸리는 바람에 병원비를 거하게 지불해야 했어요. 그 이외에도 사료, 간식, 장난감, 스크래처, 캣폴, 심장사상충약, 종합예방접종 등에 수많은 돈을 썼답니다. 또한 모디는 제 한 몸만 건사하면 되었을 단출한 삶에 걱정을 한가득 안겨다 줌으로써 제가 내면의 평화의 일부를 잃도록 했습니다. 자나깨나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 혼자 있을 모디 때문에 제 정신의 한켠에는 늘 불안이 자리하고 있으니까요.


 모디로 인해 나간 돈을 메우고, 먹이고 재우기 위해 돈이 더 필요했던 저는 제가 무엇을 잘하고 어떤 방향을 잡아야 재능을 살릴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답니다. 그럼으로써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나누어 각각 도전하고,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두 가지를 병행하며 살아가고 있지요. 또한 너무 새로운 길에 뛰어들기는 되도록 삼가고, 무모한 선택을 하는 대신 지금 벌린 일들의 테두리 안에서 최대한 발전하려고 노력 중이랍니다. 돈 잡아먹는 모디 덕분에 인생 처음으로 자기객관화와 자기분석을 할 기회가 생겼다고나 할까요.


쓸 때는 써야지, 집사야.


 모디에 대한 걱정은 매번 집에 돌아오면 여유롭게 늘어져 있는 이 녀석을 보면서 온데간데없이 사라지지만 그래도 부모의 마음은 매일 근심투성이입니다. 하지만 그 걱정들은 반대로 책임감과 가족의 의미를 제게 알려주기도 했답니다. 과거에는 오로지 저 자신을 위해, 자신이 최우선으로 행복하기 위해 선택했던 일들은 이제 모디의 행복을 위한 일들이 되었지요. 제 행복도 중요하지만, 적어도 제게는 스스로 만든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더 가치있으니까요. 앞으로도 걱정들을 그렇게 승화시켜 또다른 평화를 얻어내도록 해야겠습니다.




 한편으로 저는 일정 부분의 자유를 잃었습니다. 이전에는 오로지 목표만을 추구했고 한 곳에 오래 머무르는 일도 좋아하지 않았으며, 반복되는 일상에서는 별로 의미를 느끼지 못했더랬지요. 그러나 모디가 집에 쳐들어오자 피치 못할 사정이 있지 않고서는 결코 집을 비우지 않게 되었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허둥거리기보다는 집에 콕 박혀 모디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답니다. 특히 술을 아무리 들이부어도 꾸역꾸역 집까지 기어 와서 모디와 함께 잠에 드는 극단적인 귀소본능이 생겼지요. 또한 하루하루 모디를 배불리 먹일 수 있으려면 어느 정도 안정된 일을 찾아야만 했고 그 과정은 제게 규칙이 있는 삶, 매일매일이 비슷한 삶을 가져왔습니다.


 모디가 없었다면 저나 동거인이나 각자 적당히 살고 싶은 대로 살 수 있었을 것이고 어쩌면 더 자유롭게 많은 경험들을 해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외국으로 훌쩍 떠나거나 여행을 자주 다녔을지도 모르지요. 대학원에 진학해서 공부를 더 하거나 취미에 시간을 쏟았을지도요.


 그렇지만 일정 부분의 자유를 잃은 대신 지고의 행복이 찾아왔으니 저희에게는 오히려 이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원하고 추구했던 삶은 저만의 허상이자 강박관념에 불과했다는 사실도 깨달았답니다. 누군가에게는 가치있을 수 있는 일들이지만 제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는 사실도요. 그저 남들에게 뒤처지기 싫어 일상을 벗어나려고만 했었거든요. 실제로는 침대에 드러누워 시간 죽이는 일, 스마트폰을 보면서 히히거리는 일, 집 근처 카페에서 디저트를 먹는 일을 더 좋아하면서 말입니다. 아무도 저를 앞지르려고 하지 않았고 저에게는 별 관심도 없을 텐데, 그때는 왜 그렇게도 무언가에 쫓긴다고 여겼는지 모르겠습니다.


 가끔은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기는 합니다. 나이는 먹어 가는데 아무것도 이루어 놓은 일이 없다고 생각하면 조금 불안하기는 하니까요. 하지만 지금의 저란 사람은 그조차도 오래 고민하기 싫어서 일단 모디 뱃살부터 만지작거리면 해결이 되겠지 하고 넘겨 버리는 부류에 속합니다. 한편 이런 게으른 모습이 일상이 되니 자연스럽게 그로부터 느껴지는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생겼고, 덕분에 글도 써볼 기회를 얻게 되었답니다. 모디가 자유를 앗아간 대신 제게 일상을 선물하여 균형을 맞춰 준 셈입니다. 어차피 모디도 집사들을 부려서 안락함을 누리기 위해 집고양이의 삶을 선택했고 더 큰 자유를 포기했으니 피장파장이겠군요.


내가 포기한 것들의 크기만큼 응징을 하겠노라!!!




 또한 저는 헛된 지식에 대한 열망을 잃어버리기도 했답니다. 탐욕스럽게 책을 읽어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위대한 이들의 글을 읽으면서, 그 안에 담긴 그들의 생각을 제 것으로 흡수하는 일이 정말 근사하게 다가왔거든요. 몇 년 전만 해도 학교 도서관이든 집 주변 도서관이든 주마다 정기적으로 방문해서 독서를 하고, 내용을 정리하고, 지식을 축적하는 일들을 지속했더랬지요. 스스로가 똑똑해졌다는 기분이 들어 아주 뿌듯했고 심지어 그들의 생각이 제 생각이 된 것만 같았어요. 물론 지금도 되도록 조금씩이나마 책을 읽으려고 노력하지만 이전처럼 머릿속에 지식을 욱여넣기 위해 시간을 보내지는 않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지식을 쌓을수록 공허해졌으니까요.


 아무래도 당시의 저는 제 자신의 그릇을 무분별하게 키우는 데에만 골몰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식에 대한 열망은 어디까지나, 자신을 다스리고 인생 선배들의 철학을 바탕으로 더 나은 무엇을 찾아가는 밑거름이 되어야 하지요. 하지만 저는 제 자신을 내보이려고 지식을 쌓았고, 단순히 책을 몇 권씩이나 읽었다는 데에서만 희열을 느꼈으며, 남들이 이미 해 놓은 생각들을 통해 제 삶을 구성하려고 했답니다. 능력에 맞지도 않는 그릇을 직접적인 경험 없이 억지로 크게만 만들려고 하니 결국 제대로 담기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요. 그리고 허술하게 만들어 이곳저곳 깨지고 우그러진 그릇을 앞에 놓고 멍하니 있을 때, 모디가 제게 왔답니다.


 모디는 인생은 역시 부딪혀 보아야 안다고 말해주는 듯했습니다. 애초에 이 천방지축 고양이를 데리고 살기로 결정한 것 자체가 지식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모험이기도 했고요. 오히려 모디를 먹여 살리기 위해 돌아다니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사람들과 부딪히며 인간관계에 대해 되짚어 보거나, 돌발상황에 대처하는 법을 익히거나, 피할 일과 맞설 일 혹은 받아들일 일을 경험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지요.


인생은 실전이야, 집사.


 또한 제 지성과 감성이 어떤 지식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 정말로 지식을 얻는 것 자체에서 기쁨을 느낄 자세가 되어 있는지를 고민해 보아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모두의 삶과 그로부터 나온 지식들에는 각각의 이유와 의미가 있고 그 모습들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어야 비로소 진정한 공부를 한다고 말할 수 있을 테니까요. 더불어, 일상을 살아가는 와중에 짬을 내어 하는 독서는 게걸스럽게 지식에 탐닉하던 시절의 독서보다 훨씬 더 재미있고 충만한 느낌을 주더군요. 결국 저는 인생은 실전이고, 단지 지식만을 위해 쌓는 지식은 무의미하며, 모든 일에 천천히 그리고 열심히 임하면 저만의 철학도 조금씩 다듬어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답니다. 지식에 대한 맹목적인 열망은 잃었지만, 삶 안에 숨겨진 지혜를 찾을 기회를 얻은 것 같군요.




 그릇을 만들고 물을 담는 일은 평생의 숙제입니다. 앞으로도 저는 모디와 살면서 많은 것을 잃을 테고 많은 것을 얻기도 할 거예요. 스스로에게 알맞은 그릇과 양을 알고, 쓸데없이 잃지도 얻지도 않는 고요한 상태는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도달하기 힘든 경지이니까요. 일단 저는 평생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행스럽게도, 지나치게 물을 많이 부으면 넘쳐흐르는 모습을 보면서 다음번에 얼마나 물을 부어야 할지 조절할 수 있지요. 만약 그릇을 허투루 만들어 물이 줄줄 새 버려도 그릇을 만든 경험은 항상 남아 있어요. 어쩔 수 없이 잃어야만 하는 것들과 과한 욕심은 넘친 물과 함께 버리고, 얻게 된 것들은 다시 쏟지 않도록 잘 담으며, 잘못한 점은 다음번에 더 나은 그릇을 만들 때 고쳐 나가면 됩니다. 그것이 인생의 묘미 아닐까요. 때로는 잃고 때로는 얻으면서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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