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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카레 Jul 27. 2023

가장 완벽한 숫자, 3

옛날이나 지금이나


 제 동거인은 저보다 네 살 아래입니다. 궁합도 안 본다는 나이 차이라는 말이 사실이기는 한지 올해로 저희는 벌써 연애 10년 차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있었지만 둘 다 그것들을 시시콜콜 기억하는 성향도 아닌데다가, 의견 충돌이 있어도 결국 같은 말을 다르게 표현하고 있을 뿐이었던 경험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지 언젠가부터는 싸울 일도 사라지더군요. 몇 년간 잘 다져지던 관계에 우리의 모디가 굴러온 돌, 아니 굴러온 치즈덩어리마냥 슥 끼어들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관계에 금이 가거나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제야 우리의 관계가 3을 이루게 되었으니 더욱 좋았지요.




 8년을 따로 살다가 동거를 시작한 후에 주변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 중 하나는 이전과 이후가 다르지 않느냐는 것이었답니다. 솔직히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굳이 다른 점을 찾아보자면 더 편해지고 안정되었다는 정도일까요. 저희는 둘 다 선호에 대한 기준선이 확실하고, 원체 서로가 무엇을 할 때 꼭 같이 해야 할 필요성을 좀처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동거 전에 각자의 집에서 개인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니 자연스럽게 동거 후에도 그렇게 하고 싶어 했지요. 연애를 또 워낙 길게 하다 보니 서로가 개인 시간을 꼭 필요로 하는 사람들임을 자연스럽게 인정할 기간도 충분했고요. 그래서 상대방이 할 일이 있다면 간섭하지 않고 그저 다른 일을 찾거나, 재미있는 동영상을 보거나,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는 등 알아서 시간을 보냅니다. 같이 할 일이 있다면 항상 그렇게 하고요.


 아무튼 저희는 매일 얼굴을 맞대고 살지만 동거 전과 크게 다를 바 없이 하루하루를 보낸답니다. 모디도 마찬가지로 나이를 좀 먹고 나니 자기만의 생활방식이 생겨서 집사들이 그 흐름만 잘 지켜 주면 나름대로 만족스러워하지요. 집사가 퇴근하면 간식을 먹고, 조금 포만감을 누리다가 사냥 놀이를 하고, 지치면 아무 곳에서나 늘어져 자다가 깨서 춥춥이를 하고, 집사들이 잘 준비를 하면 집사 다리 사이에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삶이 썩 마음에 드는 모양입니다. 가끔 왠지 모르게 난리를 피워서 저희를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도 하지만요.


맥락없이 난리피우기 3초 전.




 3이라는 숫자가 가져다주는 편안함을 생각해 보면 왜 3이 균형의 상징이라 일컬어지는지 알 것 같습니다. 한 가지 예로, 삼각형 구도는 작품에 조화를 부여하고 관람자의 마음을 가장 안정시키기에 회화에서 자주 쓰였다고 하지요. 이전에도 저희는 셋이었지만 가족이 되어 같은 지붕 아래 이어짐으로써 균형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모디 덕분에 그 관계가 더욱 단단해졌다는 사실이 매우 기쁘고요. 말이 나온 김에, 얼마 전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를 읽었는데 그 중 한 구절이 가슴에 새길 만해서 가져오고자 합니다. 영혼과 영혼 사이에 출렁이는 대양을 놓고, 서로의 잔을 채워 주되 한쪽의 잔만을 마시지 말며, 한쪽의 빵만을 먹지 말라는 구절을요. 그의 말마따나 사랑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삼각형의 꼭짓점들이 적절한 거리를 이루어 안정감을 주듯, 저희는 앞으로도 계속 그런 삶을 실천해 보고자 합니다. 각자의 시간과 더불어 서로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존중하면서요. 모디는 고양이별로 떠날 것이고 저와 동거인도 언젠가 그러하겠지만, 충분한 사랑을 하며 살다 간다면 각자의 자리에는 공허 대신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들이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모디 자체가 세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제 동생이자 아들이자 반려동물로 살아가고 있거든요. 요즘에는 다들 늦게 결혼을 하다 보니 부모님과 자식의 나이 차이가 30년 이상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모디는 아들뻘이라기에는 기껏해야 저와 26년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지요. 게다가 저는 결혼한 상태도 아니었을뿐더러 사람에게든 고양이에게든 아버지라고 불릴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도 않았고, 불릴 생각은 모디의 발톱 부스러기만큼도 없었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형이 되어주자고 다짐을 했더랬어요. 아주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큰형 말이지요.


 그런데 모디를 데리고 살수록 동생보다는 자식처럼 여기게 되더군요. 형제 간 느끼는 정보다는 부모가 자식에게 느끼는 사랑과 비슷한 느낌이었답니다. 사람인 자식을 키워 본 적은 없지만 동물이라면 본능적으로 알게 되는 느낌이요. 기르면서 생기는 정, 내 유전자를 갖고 있지 않더라도 진심으로 걱정하고 마음이 쓰이는 정을 알게 되고 나니 어느새 호칭만 형일 뿐 실제로는 아버지나 다름없는 자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모디를 부를 때에는 모디야, 뚱뚱아 하는 호칭과 함께 아가, 우리 아가 하는 말도 쓰게 되었고요. 어머니께 모디 근황을 전할 때, 어머니가 저를 키우신 일에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부모가 됨이 무엇인지 모디 코딱지만큼은 알 것 같다고 말씀드리기도 했더랍니다. 모디는 분명 반려동물이지만 다른 의미들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합니다.


신비로운 모디의 눈과 뒤통수.




 종교나 철학에서 3이라는 숫자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이를테면 기독교의 삼위일체 즉 성부-성자-성령이라든지, 힌두교의 비슈누-시바-브라흐마 관계라든지, 변증법의 정-반-합이라든지요. 삼권분립도 들 수 있군요. 기라성 같은 이들이 몸담았던 분야에서 3을 자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아마 3이 거대한 사상을 집약해서 표현하기에 안성맞춤인 숫자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3은 사람들에게 강한 영향력을 가져 왔던 모양입니다. 고구려 문화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삼족오도 있고, 옛 중국에서는 최고권력자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서 사용했다는군요. <삼국지>에 등장하는 솥발의 비유도 유명하지요. 문학이나 영화 등에서도 3부작을 통해 이야기를 만들고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전부 다른 의도 아래 나타났지만, 3을 이루는 요소들 중 하나만 빠져도 전체가 무너지거나 최소한 그 순간에 꼭 필요한 무엇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점은 공통적이에요. 셋이지만 하나, 하나이지만 셋이 되어야 하지요. 모디가 담당하는 세 가지 의미는 각각 똑같이 중요하고 그 모두가 모디라는 하나의 존재로 연결됩니다. 어느 한 가지도 소중하지 않을 수 없고, 특별하며, 모디가 모디로서 존재하도록 해주지요. 이처럼 모디의 세 가지의 의미는 안정감을 넘어 완전성과 위대한 화합을 깨우치도록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그 화합이 신성함, 세계의 본질, 정치의 원리, 권위의 상징, 처세술, 완결 등의 이름으로 다가왔다면 제 경우에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왔다고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이제부터는 3을 사랑의 숫자라 불러야겠군요. 동거인과 모디와 함께하면서 최소한의 필요조건은 갖추었다고 봐도 되겠으니 이를 잘 유지하려고 힘쓰는 한편, 3의 의미를 매순간 새김질해야겠습니다. 사실 3이든 4든 100이든 1000이든 숫자 자체보다는 그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삶의 의미가 더 중요하겠지요. 자신만의 중요한 숫자를 찾아보고, 팍팍한 삶을 지탱하기 위한 버팀목으로 삼아 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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