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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카레 Aug 21. 2023

캔버스 - 1

시작부터 난관


 물감을 올리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다른 여러 가지 재료들이 있기는 하지만 보통 캔버스 천을 선택하는 이유는 그나마 재료의 성질에 가장 영향을 덜 받기 때문입니다. 비단이나 종이는 말할 필요도 없이 다루기 힘든 매체이고, 캔버스 천의 질감을 모방해 만든 종이도 선호가 꽤나 갈리는 모양이더군요.


 반면 캔버스 천은 익숙해지는 데에 시간이 길게 걸리지도 않고 무엇이든 대체로 잘 받아들이는, 성격 좋은 매체랍니다. 당연히 세부적으로 들어가자면 엄청나게 다양한 종류가 있고, 제조사나 원자재를 꼼꼼히 따지기 시작하면 심각하게 복잡해지기는 합니다. 가격도 천차만별이고요. 저의 경우에는 이탈리아제 천을 쓰는데 조직이 튼튼하게 짜여 있으면서도 탄성이 상당히 좋아서 나무틀에 씌울 때 비교적 편하답니다. 다만 단점은, 천 자체가 너무 강해서 잘못 다루면 나무틀이 장력을 못 이기고 휘어진다는 것과 무진장 비싸다는 것입니다. 후자가 더 심각한 단점이기는 하고요. 그림을 평생의 업으로 삼으시려거든 반드시 재료비를 충당할 궁리를 다방면으로 해 두시기 바랍니다.




 캔버스 천은 면, 마 등으로 만들어지는데 그리는 사람의 취향이나 다루는 재료에 따라 다르게 쓸 수 있습니다. 고전적인 방식으로 물감만을 사용한다면 고려할 경우의 수가 좀 줄어들기는 합니다. 하지만 보조제를 섞어 쓰거나 물감 이외의 재료를 사용하려면 고민을 더 해야 하지요. 천의 조직이 물감을 잡아 주기는 해도 너무 무거우면 버틸 수가 없을 테니까요. 그래서 나무판, 알루미늄, 심지어는 강철판 위에 그림을 그리는 분들도 있으시답니다. 그분들의 작업은 일반적인 천으로는 감당이 불가능한 재료를 통해서만 표현이 가능하지요. 저야 오로지 물감만을 가지고 작업을 하니, 캔버스 천에 관해서만 짧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천을 주문하면 보통 2m가량 되는 높이에, 9m가량 되는 길이로 재단되어 둘둘 말려 배송됩니다. 이걸 땅바닥에 내려놓고 원하는 크기로 다시 잘라 나무틀에 씌우는데, 나무틀에도 두께가 있다 보니 그것까지 고려해서 여분을 남기고 다시 재단을 해 주어야 하지요. 그리고서는 바닥을 깨끗이 한 다음 그림을 그릴 쪽, 바탕재가 미리 칠해져 있어서 하얀 색인 쪽을 아래로 하고 올이 그대로 드러나 색이 짙은 쪽을 위로 해서 천을 깝니다.


 그 위에 나무틀을 놓을 때는 앞뒤를 잘 구분해야 해요. 모서리가 대각선으로 결합된 흔적이 있는 쪽이 앞면이니 바닥으로 가도록, 다시 말해 천의 짙은 부분과 앞면이 맞닿도록 놓습니다. 나무틀 앞면은 전부 살짝 비스듬히 다듬어져 있는데, 그래야 천을 씌웠을 때 나무에 딱 붙지 않고 살짝 떨어진 상태가 되기 때문이지요. 가운데의 십자 모양 지지대도 조금 안쪽으로 들어간 채 맞물리도록 되어 있어서, 그림의 주제가 될 부분(보통은 가운데)을 나무틀에 잘 닿지 않도록 만들지요. 만약 천이 나무에 지나치게 붙으면 나중에 미처 건조되지 못한 나무 내부의 진액이 새어 나와서 스며들기도 하고 습기가 차 곰팡이가 생기기도 합니다. 심지어 그림을 그리면서 압력이 가해지고 나면 나무틀 모양대로 자국이 남을 수도 있답니다. 또한 서로 좀 떨어져 있어야 사이의 공간으로 인해 천이 본연의 탄성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아주 팽팽하게 씌우지 않는 이상 천이 앞뒤로 조금씩 덩실덩실 움직여 주니, 딱딱한 곳에 천을 붙이거나 놓고 그릴 때보다 훨씬 자유롭지요.


간단한 캔버스의 구조.



 

 천을 틀에 씌우는 일은 아주 귀찮고 괴롭습니다. 다른 사물들이 그렇듯이 여름에는 천도 원래보다 늘어나서 조직들이 덜 쫀쫀(?)해지기에, 다루기가 좀 더 편해지기는 해요. 하지만 가뜩이나 가만히 있어도 덥고 습한 계절에 캔버스를 만드는 상황까지 오면 정말이지 난감해집니다. 꽤 힘이 필요한지라 하나 씌우고 나면 땀이 줄줄 흐르는데다가, 조절을 잘 해야 천이 울거나 찢어지지 않거든요. 그러나 날씨가 춥고 건조할 때 천을 씌우면, 나중에 날이 풀린 후 천이 다시 늘어나면서 물감까지 잡아당기는 바람에 갈라지게 만들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오밀조밀 섬세한 그림을 그리시는 분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여름에만 천을 씌우시기도 하지요. 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완성된 캔버스만 구매하시든지요.


 천을 잡아당기기 위해서는 플라이어, 속칭 왁구바리라고 불리는 도구를 사용합니다. 우선 플라이어로 천을 느슨히 잡고 나무틀 위로 살짝만 접어 씌운 다음 임시로 고정을 하지요. 저는 처음 힘을 주어서 당길 쪽은 고정하지 않고 사각형의 나머지 세 부분만 미리 고정시킨답니다. 이제 나무틀의 가운데에서 시작해서 모서리 쪽으로, 힘을 주어서 순차적으로 천을 당긴 후 완전 고정합니다. 이때 한 손으로는 팽팽하게 당겨진 천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도록 잘 잡고 재빨리 고정을 해야 하기에 악력과 순발력이 있어야 해요. 북을 만들 때처럼 가죽을 당기는 일은 아니니 당연히 그보다는 덜 힘들겠습니다만 그래도 만만치 않습니다.


 게다가 한쪽만 미리 고정을 다 해 놓으면 힘이 분산되지 않고 쏠려 천이 울 가능성이 높아요. 하는 수 없이 이리저리 돌려가면서 진행해야 합니다. 또한 나무틀 규격은 보통 직사각형이므로, 짧은 쪽과 긴 쪽을 잘 보고 거의 비슷한 시점에 일을 마쳐야지, 그렇지 않으면 거의 마지막에 고정될 모서리 부분이 잔뜩 울고 있는 상황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캔버스 뒷면에 분무기로 물을 뿌려 잘 펴바르거나 위에 보조제를 발라 팽팽해지도록 만드는 일은 어렵지 않지만, 이왕이면 처음부터 잘 씌우는 것이 낫지요. 잘못되면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니 배로 짜증이 날 테고요. 천 고정은 흔히 타카라고 불리는 큰 스테이플러로도 할 수 있고, 좀 더 예스러운 방식을 쓰자면 나무틀 옆면에 못을 박을 수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후자가 근사하기는 해서 저도 언젠가 해 보고 싶군요.




 캔버스 하나가 완성되었다고 해서 바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작업하는 사람 본인의 작업방식에 따라 천이 가진 성질을 이용하는 법도 달라지지요. 다음 글에서는 천에 어떤 전처리를 하는지, 그런 처리가 어떤 효과를 볼 수 있는지를 제 경험에 비추어 이야기하겠습니다. 저도 지식과 경력이 일천해서 모든 재료에 관해 하나하나 자세히 알지는 못하고, 지나치게 깊이 들어가면 가뜩이나 재미없는 이 과정이 더 재미없게 느껴지실 것 같기에 기본적인 부분들만 써 보도록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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