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하느라 들인 재료비 정도면 집을 샀을지도
개인적인 이야기라고 해 봐야 별것은 없습니다만, 아무래도 제 성격이나 경험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으니 최소한 거짓말은 하지 않을 수 있지요. 저는 우선 어릴 적 꿈에서 나왔던 것들, 시골에서 겪었던 일들, 책에서 읽었던 것들을 전부 정리한 다음 강렬하게 남아 있는 기억들 몇 가지를 골라냈습니다. 그런 다음 스케치는 거의 하지 않고, 색의 배합이나 구성도 생각지 않고 그야말로 마음대로 그리기 시작했답니다. 크기도 제각각이었는데 어떤 것은 거의 2m에 달하는 캔버스에, 어떤 것은 50cm도 채 되지 않는 캔버스에 그렸지요.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업을 꼽으라면 세 가지 정도가 되겠습니다. 콜드플레이의 <Viva la vida!>를 듣고 그린 동명의 그림인데, 어른이 되면서 세상에 내동댕이쳐지기가 무서운 나머지 방구석에 자기만의 왕국을 만들어 놓은 채 절규하는 사람이 주제였지요. 왕좌를 잃어버리고 여전히 자기만의 망상과 현실의 비참함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노래 가사처럼, 당시의 저는 현실이 얼마나 무섭고 가차없는지를 막 깨달은 참이었답니다. 다음으로는 18명의 가상 인물을 그린 얼굴 시리즈입니다. 각자 전부 표정도 다르고 행동도 다른데, 공통점이 있다면 하나같이 우울함에 빠져 있다는 것이지요. 우울증에 시달리던 때의 감정 상태를 여러 개로 나누어 분석한 다음 하나하나에 맞게 반영해서 작업을 했더랍니다. 마지막으로는 장수풍뎅이와 사슴벌레의 싸움을 그린 그림이었지요. 어렸을 때에는 생명의 무게를 알지 못했기에, 시골에 가면 곤충들끼리의 싸움을 즐기거나 괴롭히는 일을 장난스럽게 저질렀습니다. 크고 나서, 특히 고양이와 함께 살고 나서야 비로소 생명에 대한 책임감을 갖게 되었기에 반성의 의미를 담고 싶었지요. 이 작업만은 아직까지도 보관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 작업들은 제가 더 이상 정신적인 문제에 갇혀 있지 않고 이전의 과오와 슬픔을 전부 다 토해냈다는 점에서, 무언가 거대한 주제가 아닌 제 자신으로부터 나온 주제를 통해 그림을 그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다져지지 않은 기본기가 발목을 잡았지요. 아무렇게나 자유롭게 그리더라도 어느 정도 질이 보장되어야 하는데, 아이가 그린 것처럼 순수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성인의 성숙함도 보이지 않는 어쭙잖은 결과물들이 나왔거든요. 솔직히 지금 돌이켜보면 웃기는 수준의 이미지들입니다. 하지만 처음으로 제가 가진 것들을 전부 내놓았기에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아무튼 1년 정도는 별 생각없이 손 가는 대로 작업을 했고, 이제는 정말 기본기 수련이 필요하겠다는 절박함이 들기 시작할 때쯤 이 방법도 그만두었지요.
사람을 그리려면 인체에 대한 이해와 모사가 필요합니다. 근육과 뼈, 장기들의 조합을 알고 있어야만 했는데, 아쉽게도 저는 좀 더 빨리 그것을 배울 기회를 놓쳤지요. 그래서 남들이 3~6개월 걸릴 일을 1년 넘게 붙잡고 있어야만 했답니다. 수첩에 모든 근육과 뼈를 다 그려 볼 때까지 진행된 이 연습은 물론 귀찮고 힘들었지만, 그리고 수련을 끝마치고 나서도 손재주를 타고나지 못한 제 개인적인 특성상 황금손들처럼 그려낼 수는 없었지만, 정말이지 유익했답니다. 이전까지 갖고 있었던 생각, 즉 현대미술에서는 그런 정도의 기본기 수련이 필수적이지는 않다는 생각이 어불성설 그 자체라는 것도 깨달았고요. 옆에서 동거인이 인체 공부하라고 무던히도 충고를 했건만 듣지 않다가 속는 셈 치고 시작했는데, 그것이 이토록 큰 도움이 될 줄이야. 일찍 시작하지 않았음이 얼마나 후회되던지요.
기본기를 다져 놓았더라도 드로잉이나 실제 작업이 더 근사하게 변하는 것은 아니랍니다. 대신 보는 눈이 달라진다고나 할까요. 이전에는 눈에 잡히는 대로 마구 그렸다면, 수련 후에는 왜 어떤 대상이 거기에 붙어 있는지가 이해되기 시작하니까요. 이는 제 다음 작업, 신화를 주제로 한 시리즈에 큰 영향을 주었답니다. 지나치게 개인적이었던 이전 시리즈에서 벗어나 두루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주제가 필요했던 제게 신화는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지요. 우리나라에도 우리만의 신화가 있으나 대부분의 화가들이 북유럽 혹은 그리스 로마 신화를 차용한 이미지를 보여준다는 점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고요. 이는 우리나라의 신화 형식이 사가, 서사시 형태가 아닌 분절된 형태를 취하며 지방색과 구전성이 지나치게 강해서 통합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 기인합니다. 한 마디로 중구난방이지요. 또한 인간적인 매력이 넘치는 저 동네의 신들과 달리 우리나라의 신들은 그 정도의 구체적인 매력은 없지요. 아니라고 해도 현실이 그러한데 어쩌겠습니까. 그렇다고 천둥번개 쾅쾅 순간이동 짠짠 파도 촥촥 하는 능력들이 강조되지도 않으니 박진감도 떨어집니다. 저는 이런 우리 신화의 문제점들을 살핀 후 저만의 신화를 만들어 보려 했답니다.
어느 곳의 신화에서나 거인은 등장합니다. 거인들은 창조, 파괴, 유지 등 이 세상이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여러 요소들 혹은 무자비한 재해나 폭력을 상징해요. 북유럽 신화의 이미르, 그리스 로마 신화의 티탄 신족과 헤카톤케이레스 및 퀴클롭스, 중국 신화의 반고 등은 그런 복합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거인에 관련된 신화가 많은데, 영등과 설문대할망이 대표적이에요. 그리고 거인은 이미 과거의 여러 미술작품에서도 등장했던 만큼 소재로서의 보편성도 확보되어 있지요.
저는 설화에 등장하는 거인들 중 ‘장길손’이라는 이에게 주목했는데, 그는 초월적인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늘 배고픔에 시달려 사람들에게 구걸을 해서 먹고 살았습니다. 힘을 써서 스스로 식량을 구해 배불리 먹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려면 주변 환경이 죄다 파괴되기에 그랬겠지요. 근본이 선한 거인이라 사람들은 그를 먹여 살렸지만, 그대로 가다가는 모두 굶어 죽을 위기가 닥치자 결국 장길손을 쫓아내 버립니다. 장길손은 북방으로 떠나는 중 극심한 굶주림에 흙, 돌, 나무 등을 미친 듯이 먹어대다가 전부 토해내고, 타인과 너무 다른 자기 자신의 모습이 한스러워 울다 지쳐 잠들게 됩니다. 잠든 장길손의 몸과 그가 토해낸 것들은 한반도의 지형을 형성하게 됩니다.
얼마 살지는 않았지만 작업을 하면서 돌이켜보니 저는 이전에는 외로움을 참 많이 탔던 것 같습니다. 자의식이 상당히 강한 편이라 사고방식이 너무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는 정신적으로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저는 제 모습을 장길손에게 대입하여, 어디론가 떠나는 거인의 뒷모습을 그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남녀노소 거인들의 등을 그리면서, 꽤나 열심히 공부한 인체 관련 지식을 쏠쏠히 써먹었지요. 산 넘고 물 건너는 거인의 모습을 그려야 하니 주변 지형을 함께 그리면서 풍경을 그리는 법도 처음 제대로 연습해 보았고요.
제가 만든 세계관에서 거인은 장길손처럼 결국 이승마저 떠나게 되어 다른 세계로 갑니다. 장길손이 너무도 가엾었던 저는 제가 그리는 거인들만큼은 좋은 결과를 맞이했으면 했지요. 그쪽 세계에서는 거인이 더 이상 거인이 아니며, 모두가 비슷한 크기가 되어 차별이나 외로움 따위는 없습니다. 자신이 더 이상 거대하지 않다는 사실을 안 거인의 뒷모습은 이전의 사실적인 묘사가 아닌 좀 더 단순화된 묘사로 표현을 했답니다.
어, 그런데 제가 작업하는 과정을 유심히 지켜보던 동거인이 여기에서 또다시 커다랗고 중요한 지적을 합니다. ‘거인이 스스로의 모습 그대로 공존할 수 있어야 진정 아름다운 일이 아닌가?’ 하고요. 반박해 보려 애썼지만 반박이 안 되더군요. 저는 외로웠던 제 자신을 같은 처지의 거인에 대입만 했을 뿐, 그리고 타인과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 되면 행복할 것이라 생각했을 뿐 자의식이 강한 제 본성을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정해 놓지 않았던 것이지요. 타인에게 맞춰 그들과 공존할 수도 있겠지만 그거야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위해서는 당연히 어느 정도 필요한 일이고요. 저는 미술을 하는 사람이고, 결국 미술은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일인데, 그 중요한 부분을 간과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보다 상위의 존재에 의해 고독과 고통으로부터 해방되어 행복을 얻는 결말 역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유신론자이기는 하지만 수동적인 사람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반대의 경우에 가까운데, 거인이 더 나은 삶을 살 기회를 얻는 방법은 더욱 초월적인 존재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려 버린 것이지요. 아마 지금보다 더 어리고 외로웠던 시절 누군가 구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던 마음가짐이 저도 모르게 반영되었던 것 같군요. 그러나 지금은 그 기간을 헤쳐 나와 자립을 이루었고, 때문에 그러한 작업을 하는 것은 정신적인 퇴보나 마찬가지였지만 제가 거기까지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작업의 밑바탕이 되는 개념으로 신화를 선택한 논리의 정당성 역시 부족했습니다. 공통된 지점,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 지점을 찾기 위해 신화를 선택했으나, 그런 공감대를 찾으려면 다른 분야도 많았거든요. 고양이와 강아지는 공감대를 만들 수 없나요? 맛있는 음식은 왜 안 되죠? 지금 생각하니 차라리 그것들이 더 적합하군요. 게다가 저는 상징이 죽은 이 시대에, 하필이면 제 자신을 표현하는 상징으로 신화를 사용했습니다. 한참이나 철 지난 방식을 꾸역꾸역 끌고 와 쓴 것이지요. 게다가 상징을 회화라는 장르에 알맞게, 영리하게 사용했다면 또 모르지만 인체에 대한 공부를 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려고 하다 보니 회화만이 가질 수 있는 특징들이 다 사라졌지요. 물감으로 시도해 볼 수 있는 각종 효과들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거든요. 한 마디로 ‘구태여 신화를 선택했고’, ‘하필이면 신화를 상징으로 삼았으며’, ‘방법도 매우 재미없고 진부하게‘ 작업을 했답니다.
그렇다고 얻은 것이 없느냐 하면 그것은 아니에요. 일단 꼼꼼하게 인체의 여러 부위와 화면의 조화를 챙기는 그림을 그려볼 수 있었거든요. 또한 제 자신으로부터 작업을 꺼내는 일은 좋지만 더욱 치밀해야 하고, 공감대를 가진 소재를 선택하는 일보다 특정 소재가 공감대를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만들어내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지요. 진정한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려면 제가 편안함을 느끼는 결과물이 나와서는 안 된다는 점도 알게 되었답니다. 상징을 사용하려면 묘사가 아닌 참신한 회화적 표현을 통해야 한다는 것도요. 무엇보다도, 외로움 등 감정적 유대감만으로 소재를 선택해서 작업을 시작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 가장 이득이었지요. 외롭고 고통받은 존재의 여정과 환생이라. 이거 소위 말하는 중2병, 양판소 감성 아닙니까. 지금 보니 스스로를 고독한 히어로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인데, 저는 그냥 고양이 뱃살 주물거리는 것이 낙인 일반인인걸요.
다음 글에서는 인생 처음으로 도전해 본 추상과 현재의 작업으로 넘어가는 계기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이제부터는 정말로 진지하게 머리 싸매고 고민한 방법론들이 나올 예정이라, 저도 더 이야기하기 편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