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없는 과정은 가치도 없다
실패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만, 실패는 잘만 활용한다면 더 나은 무엇을 가져다줍니다. 이번에는 10년 가까이 그림을 그리면서 제가 했던 실패들을 좀 적어 보려 합니다.
송순의 <십 년을 경영하야~>는 그 마음가짐으로 인해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조 중 하나입니다. 작품 속 송순은 10년 가량을 이리저리 열심히 살다가 겨우 초가 하나를 지어 냈다고 합니다. 자기가 살 집일 수도 있고, 자연 속 별장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당시로서는 초라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크기인 방 세 칸짜리 초가를 겨우 갖게 되었는가 보지요. 하지만 자신 한 칸, 달 한 칸, 맑은 바람 한 칸이 그 집 안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여유롭고 위대한 정신세계를 가졌는지 알게 해 줍니다. 보이는 것 이상의 아름다움을 한정된 공간에나마 담아내려고, 그러면서도 그것을 가두지 않고 공존하려고 하는 그의 자세는 감탄을 자아내지요.
무한함과 친구가 될 수 있는 경지에 다다르려고 그가 스스로 얼마나 노력을 했을지를 생각하면, 제 지난 10년은 실패와 뒷걸음질로 가득했다고밖에 할 말이 없군요. 그래도 겪었어야만 하는 실패들은 모조리 겪은 것 같아서 나름대로 기쁩니다. 아직 이름이 알려지지도 않았고, 여전히 초짜에 불과하지만 수많은 실패를 통해 정말 다양한 방식의 그리기를 죄다 해 볼 수 있었거든요. 온갖 방법을 다 시도해 보느라 제 방법론을 세우는 데에 시간은 오래 걸렸을지언정, 적어도 쓸데없는 경험은 없었답니다.
10년 전에는 지금만큼은 아니지만 물감을 두껍게 쓰되, 아주 사실적으로 그림을 그리려고 노력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림을 시작할 때에는 대상과 똑같이 그리는 일을 선호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며, 저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지요. 짧고 힘센 붓질들을 통해서 초상화를 그렸는데, 완전한 사실적 묘사보다는 그 사람의 분위기, 저와의 관계, 외모에서 느껴지는 인상 등을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초심자의 열정으로 가득했던 시기라 말 그대로 혼신의 힘을 다해서 그림을 그렸는데, 앞으로도 그 정도의 열의를 가지고 그림을 그릴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문제는 제가 기초가 없었다는 것이지요. 원래는 다른 전공이었다가 미술을 해야겠다 싶어 시작을 했으니, 입시미술도 거치지 않았고 기본기가 단 하나도 없었을 수밖에요. 그래서 구조나 형태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채로, 사람이건 사물이건 일단 똑같이 보이도록 하는 데에만 집착했지요. 그때는 그래도 된다고, 색을 쓰는 능력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결국 앞뒤 가리지 않고 그리다 보니 어느 정도 비슷하게 그릴 수는 있었지만 막상 전체적인 동세나 비례가 전혀 맞지 않거나 명암이 부분적으로 자꾸 틀리는 일이 발생했지요. 그야말로 ‘잘 그리고 싶어서 안달났지만 무언가 어색한 그림’만 매번 나오고는 했답니다. 게다가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대상과 똑같이 묘사 및 재현을 하는 데에도 이유와 계보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데, 저는 그냥 남들에게 자랑하기 가장 쉬운 소재인 사람을 택해서 사람처럼 그리려고만 했던 것도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얼마 가지 못하고 결국 포기해야만 했지요.
이때 체계적으로 빠르게 기본기를 다지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았으련만, 저는 새로운 표현 방법을 찾겠다는 명목으로 기본기 연습을 회피했습니다. 물론 시간을 오래 들여 기본기를 체득했기에 나중에 가서는 더 잘 되었고 그 안에 갇히지 않을 수 있었기는 합니다. 하지만 귀찮음과 두려움에서 나온 회피는 분야를 막론하고 결과가 좋지 않은 법, 그 때문에 수많은 방황을 겪었음도 부정할 수 없지요.
아무튼 그 다음에는 캔버스 크기를 줄이고, 물감 양을 확 줄여서 거의 천이 비쳐 보일 정도로 얇게 칠하는 한편 더 느슨하고 가벼운 붓질을 사용해 자유롭게 그려 보고자 했지요. 주변 사람들의 얼굴을 주로 그렸는데, 캔버스 전체에 얼굴이 꽉 차도록 그려서 짓눌린 인간성을 드러내고자 했답니다. 전체적인 인상은 비슷하나 눈은 커지고, 색은 착 가라앉게 그림으로써 불안함을 보여주고 싶었지요. 생계 유지를 위해 부업으로 하고 있는 일을 막 시작한 시기라 한창 바빠서, 두세 시간 만에 하나의 그림을 완성할 정도로 빠르게 작업을 하던 시기였기도 합니다. 말 그대로 그림 하나 뚝딱 그리고 일하러 가고, 다음 날에 또 하나 그리고 일하러 가는 삶을 살았지요.
접근법은 상당히 마음에 들었지만, 그림이 너무 빨리 그려진다는 것이 영 마뜩잖았습니다. 붓질이 자유로워졌다고 해서 그림에서 느껴지는 힘이 떨어지는 것은 원치 않았는데, 실력이 미숙하다 보니 그저 가볍기만 한 그림이 자꾸 나왔거든요. 또한 하루에 하나의 작업을 마쳐야 한다는 강박이 있기도 했고, 일하러 가기 전까지 어떻게든 마음에 드는 모양새로 그림을 끝내야 한다는 부담감도 들었답니다. 그야말로 기계처럼 작업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체감한 때였습니다. 결국 어느 순간부터 작업에 몰입하지 못한 채 하나씩 찍어내고만 있는 스스로를 보면서, 이거 오래 갈 방법은 못 되겠다는 생각이 고개를 쳐들었지요. 그리고 그쯤에서 그만두기로 마음먹었고요. 무엇보다도 그렇게 계속 가다가는 작업량만 많고 깊이는 없는 화가가 될까 두려웠던 마음이 가장 컸던 것 같습니다.
그 다음 해는 제 인생 최악의 시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통장에는 땡전 한 푼도 없었고, 작업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고, 그 와중에 무언가 커다랗고 충격적인 결과물을 내야겠다는 포부는 하늘을 찌르던 해였지요. 지금 돌이켜보면 대학을 졸업한 직후라, 목표와 보호막이 사라지고 난 다음 찾아온 허무감이 너무 강력했던 것 같습니다. 거기에 부업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아직 제대로 된 벌이가 없었으니 자괴감도 컸지요. 자기파괴가 계속되고 몇 개월 동안 우울증에 시달리면서 제 안에 분노와 증오가 자리잡기 시작했답니다. 그냥 인간과 세상 자체가 싫었고 그 중에서도 제 자신이 가장 싫었던 시기였습니다. 영양부족 및 스트레스로 일시적인 탈모와 면역력 저하, 약한 알코올 의존증이 올 정도였으니 말 다 했지요.
작업을 잠시 멈추고 현실적인 문제와 정신건강을 고민해야 할 시기에 저는 부득부득 이를 갈며 불안정한 작업을 이어갔지요. 분노가 치밀면 그것의 원인을 파악하고 승화시켜야 하는데 엉뚱하게도 작업은 정치사회적 문제들, 역사적인 사건들을 반영하게 되었어요. 의도적인 폭력과 차별이 난무하는 사회, 그 모든 원인이 되는 인간의 광기가 제 상태를 표출하기 위한 소재로 적합하다고 보았거든요. 어디까지나 저는 개인적인 황폐함만을 경험하고 있었고 그 참혹한 일들과는 일절 관계가 없었는데 말이지요. 어처구니가 없는 생각의 과정이지만 그 당시에는 그래야 한다고 여겼다는 것도 신기합니다. 아무래도 대단한 작업을 해내서 빨리 이름을 알리고 암울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는데, 그러려면 거대하고 무거운 주제를 잡아서 최대한 잘난 척을 해야 한다는 마음에 그랬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는 그저 잔뜩 화가 나 있었을 뿐인데도요. 허영심으로 가득 차 급박하게 쫓기는 자의 전형적인 사고방식이로군요.
정치인이나 범죄자, 전쟁 및 인권 문제에 관련된 사람들을 찾아보고 분석하며 그들을 그렸는데, 회화에 필요한 정당성과 그에 맞는 방법들을 세세하게 연구하고 작업을 하지 않으니 결과물은 들쭉날쭉했습니다. 바로 전 해에 그림을 그릴수록 두려워졌다면, 그 해에는 울화통만 터졌지요. 무언가 크게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예감은 들었지만 정신은 성찰은커녕 논리적인 생각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였기에, 이상한 자신감에 사로잡혀 작업을 하지 않을 수도 없었고요. 결국 보다 못한 동거인의 일침, 은사님께 작업을 보여드린 다음 영혼까지 털리는 경험이 있은 후에야 비로소 제가 얼마나 저와 관련 없는 일에 집착하고 있었는지를 알게 되었답니다. 제 안에서부터 나온 작업이 아니라 남에게 보이기 위한 작업, 근거와 정당성 없는 작업, 개념은 없이 감정에만 치우친 작업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사실도요.
우울증과 맥락 없는 분노에서 벗어나는 기분은 뭐랄까, 눈이 확 트이는 기분이더군요. 또한 다행스럽게도, 정신을 차리고 나니 다시 벌이가 안정될 기회가 생겨서 작업을 하기도 보다 수월해졌지요. 이 실패를 통해 저는 몇 가지 원칙을 세울 수 있었답니다. 첫째, 절대 굶으면서 작업하지 않기. 둘째, 작업의 시작은 반드시 개인적인 부분에 두기. 셋째, 정신건강에 각별한 주의 기울이기. 비록 인생 최악의 시기였지만 지금까지도 잘 지키고 있는 원칙들을 세울 수 있던 기회였달까요. 대가가 좀 크기는 했지만 큰 교훈을 얻었으니 확실히 쓸모있었다고 위안을 삼아 봅니다.
다음으로 시도했던 작업들은 이전에 대한 반성과 반작용 때문인지 지나칠 정도로 개인적이었습니다. 여전히 기본기는 부족했지만, 일반적으로 진행하는 선을 사용하는 연습 대신 면을 활용해서 공간을 채우는 방법을 조금씩 익혀 가면서 보완을 해 나갔지요. 비록 그림을 그릴 때는 마음대로 그렸지만요. 다음 글에서는 거기서부터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