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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카레 Oct 09. 2023

실패들 - 3

무엇이 되었든 꾸역꾸역 가보세


 거인 시리즈를 그만두고 나니 사람을 그리기가 싫어졌습니다. 너무 많이 그려서 질리기도 했거니와, 사람을 그려서 무엇을 해낼 수 있다는 확신이 없어졌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사람 대신 다른 것을 그려 보기로 했답니다.


 제가 거인을 그렸던 이유는 외로운 존재로서의 동질감, 연민 등이었지만 그것들이 방법론과는 연결되지 않았지요. 그래서 저는 대학에서 배웠던 주제와 소재, 대상을 나누는 법과 그것들을 융합한 개념을 물감으로 만들어내야 하는 정당성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해 보기 시작했습니다. 앞에서의 실패들로 교훈을 얻어, 거대한 목표가 아닌 그저 제가 무엇을 그리기 원하고 무엇을 그릴 것이며 어떻게 그려내야 하는지를 정리해 보려 했지요.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형태 감각보다는 색 감각입니다. 기본기를 다질 때 상당히 많이 연습하기는 했지만 확실히 색을 사용하는 데에 더 자신이 있지요. 형태는 본질적으로 공간을 인식하는 일입니다만, 제게는 공간지각력을 근육으로 연결시키는 능력 자체가 거의 없는 모양입니다. 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렸을 적부터 희한하게 거리감각이 아주 부족했지요. 농구를 하는데 얼마나 멀리서 공을 던져야 하는지 수백 번 슛을 연습해도 깨닫지 못한다거나, 운전면허를 딸 때 제동거리를 잘 잡지 못한다거나, 권투를 배울 때 안으로 파고들어 상대방과 붙지 않으면 펀치를 낼 시점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거나 하는 식으로 어렴풋이는 알고 있었더랍니다. 처음에는 운동신경이 너무 떨어져서 그런가 보다 했지요. 그러나 시간을 두고 천천히 생각해 보니 감각의 문제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즉, 원근법을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능력이 제게는 없습니다.


 원근법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니 형태와 입체감도 눈에 들어올 리가 없지요. 저는 사람들이 입체를 보며 부피를 먼저 생각한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습니다. 제게는 어둡고 밝은 부분만이 보일 뿐이거든요. 물론 사람은 공간 인식을 3차원으로 하지 못합니다만, 제 경우에는 극단적인 2차원 즉 색만이 보이고 원근법은 단지 글로 읽어서 무엇인지 아는 수준이랍니다. 이러니 세상은 제게 공간보다는 평면에 가깝고, 자연스럽게 다들 어딘가에 달라붙어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지요. 달라붙음이라는 작업의 모토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답니다.


 아무튼 사람을 그리지 않으려면 무얼 그려야 하느냐가 관건이었지요. 감정적 동질감을 제외한다면 거인에게서 제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신화적인 존재감, 힘이었습니다. 제 세계관 안에서 거인이 비참한 삶을 끝내고 다시 자신만의 모습을 가질 수 있게 만든 것은 더한 초월적인 존재의 개입이 있었기 때문이랍니다. 제가 그림을 보는 방식과 그 존재가 거인을 바라보는 방식이 비슷하지 않을까요? 저도 어쨌든 그림에게는 하나의 창조자이니까요. 비록 이전에는 거인을 같은 눈높이에서 형태를 지켜 그리려고 했지만, 그것보다는 초월자가 바라보는 방식 즉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을 반영하는 것이 훨씬 합당했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본다는 것은 한 차원 낮게 바라본다는 것이지요. 형태와 공간지각력, 원근감, 입체감 등은 차원이 달라지면 무의미해집니다. 결국 색만이 남게 되는데 이러면 구상이 아닌 추상으로 가야 하게 되어 버리지요. 그러나 처음부터 구상을 포기하기는 어려워서, 대신 초월적인 힘을 보여 주는 자연의 힘들을 그림으로써 탐구를  해 보고자 했습니다. 불, 허리케인, 화산 등을 그리되 오로지 몇 가지의 색으로만 칠해서 단순화하고 이것을 다시 어떻게 추상화시킬 것인가를 고민했답니다. 그리다 보니 부담도 덜하고 마치 색칠놀이 같아서 재미는 확실히 있었지요. 하마터면 거기에 머물러 있을 뻔했지만 다행히 빠져나와서, 추상을 시도할 수 있었습니다.


 이전까지는 붓을 사용했다면 물감을 더 달라붙도록,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도록 하려면 우선 저부터 캔버스에 더 밀착되는 경험을 해야 했지요. 이는 롤러를 사용함으로써 가능했습니다. 붓은 ‘세운 상태로’ 물감을 칠하지만 롤러는 물감을 발라 ‘밀어내기에’ 캔버스와 보다 가깝고 그 과정에서 제 몸도 마찬가지가 되지요. 또한 하나하나 물감을 찍어내면서 색들의 조합을 더 잘 볼 수 있는 한편 형태에 대한 집착에서도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때그때 눈앞의 색들에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에 다른 요소들은 좀 덜 고민하게 되거든요. 거리가 가까울수록 전체를 조망하기가 어려워지니 계획보다는 즉흥적이고 우연적인 요소들이 개입하게 되고요.


 전체적인 형상은 바로 전에 그렸던 자연의 힘들을 따르되 저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해서 단순화했습니다. 불의 형상, 땅의 형상, 물의 형상, 바람 형상 등을 기반으로 했지요. 다음으로는 그 힘들이 발산되면서 나타나는 색들 중 가장 확연한 것들을 골라냈습니다. 처음 전체적인 색을 롤러로 밀어 칠하고, 그 위에 한 겹을 더 밀어 칠하고, 붓으로 격자무늬를 만들고, 롤러로 툭툭 찍는 과정을 반복했지요. 하나하나 찍힌 물감들은 자연 안에서 나타나는 색이자 초월적인 존재가 위에서 바라보았을 때 보이는 우리의 모습이었지요. 자연의 힘과 섭리 안에서 그저 물감처럼 달라붙은 우리의 모습, 이것이 바로 제가 추상으로 보여 주고 싶었던 이미지입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물이 제가 지금 커버 이미지로 사용하고 있는 저 작업들이에요. 제게는 굉장히 중요한 작업들이지요. 지금 계속하고 있지는 않지만 물감이 무엇인지, 물감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보여야 하는지에 대해 순차적으로 정리한 후 진행한 작업이니까요. 회화가 얼마나 논리적이어야 하는지를 체험해 보았다고나 할까요. 스스로도, 이 정도면 나중에 어떻게 평가받을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아무것도 없다고 욕은 안 먹겠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남들에게 내보일 만하다고 여긴 첫 시리즈는 그렇게 겨우겨우 나왔답니다. 마침 은사님들과 식사를 할 기회도 있었고, 외국에서 유학 중이던 친한 동생도 잠시 한국에 들어와 있는 중이라 그분들께 작업을 좀 보여드려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지요.


 제가 작업을 보여드린 후 나온 반응은 이러했답니다. 예쁘다, 발전시키면 잘 팔리겠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와 왜 이렇게 표현했는지도 알겠다, 접근 방법에서 틀린 것은 딱히 없다, 크기가 커서 나름대로 멋있겠다, 그런데…..


 “이게 끝인가?”


 정말 세 사람 모두 마지막에 모두 이렇게 이야기하셨더랍니다. 제가 보일 수 있는 반응은 단 하나였지요.


 “?”


 그러니까, 지금 당장은 솔직히 나쁘지 않고 쭉 해도 되기야 하겠지만, 이 다음엔 대체 무엇을 할 것이냐는 질문이었지요. 발전될 수 있는 가능성도 있기야 하겠지만 물감을 찍는 단순한 방법을 사용해서 10년이고 20년이고 작업을 계속해 나갈 수 있겠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아니 조금 더 강하게 말하자면 여기서 끝내고 빨리 다른 방법을 시도해라, 그렇지 않으면 지루해져서 뒤늦게 울며 겨자먹기로 또다시 길을 찾거나, 저대로 평생 물감 칠하고 찍다가 화가로서의 삶이 끝나거나 둘 중 하나다….라는 말이었답니다. 당연히 저는 할 말이 없었고요. 그런 부분까지는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거든요.


 솔직히 세 명의 평가가 다 같지 않았다면, 이힝 모르겠당 하면서 그냥 계속 작업을 이어 나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전부 같은 평을 해 주시니, 이건 확실하게 제 쪽의 문제였지요. 1년 정도가 지난 지금 생각하기에도 정말 예쁜 결과물들인지라 매우 아쉽기는 합니다. 하지만 문제가 나타나면 바로 바꾸었기에 수없이 많은 시도를 하고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는 점을 상기하면서 다시 한 번 도전해 보기로 했답니다. 게다가 작업을 하는 저만의 기본 철학은 앞으로 급격하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들었지요. 어차피 유명하지도 않은데 또 뒤집는다고 해서 별 일 생기겠냐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도 있었고요.




 추상 작업에서 제가 얻은 것들은 세 가지입니다. 먼저 장기적인 가능성, 즉 단 몇 년이 아닌 몇십 년을 이어갈 수 있는 방법론을 마음에 새겨 두라는 것입니다. 진주가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아무리 아이디어가 괜찮더라도 이어 가지를 못하면 쓸모가 없으니까요. 한탕 하고 튈 생각이 아니면 한 시리즈를 해도 제대로 해야 하지요.


 또한 롤러로 물감을 밀어내고 찍는 것은 달라붙은 존재를 표현하는 데에는 효과적이나, 정해진 네모 모양대로만 결과물이 만들어지기에 물감들 사이에 있어야 할 작용이 보이지 않게 된답니다. 모든 물감덩어리들이 전부 따로 떨어져 있으니 인내심을 가지고 열심히 찍었다는 사실 말고는 전달되는 느낌이 없다는 것이지요. 어떤 존재도 고립되어 있지 않고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말이에요. 유화의 물성을 최대한 이용할 생각이라면 섞이고, 뭉개지고, 겹치는 모습이 드러나도록 해야겠다는 교훈을 얻었답니다.


 마지막으로는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하고 나서야 그만두는 습관을 버려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지요. 그전까지야 어떻게 회화에 접근할지 찾는 과정을 밟고 있었다면, 슬슬 어설프게나마 한두 개라도 좋은 것들을 건진 시점에서까지 그런 일을 반복할 수는 없었으니까요. 오히려 너무 많은 생각을 하다 보면 그런 일이 발생하는 것 같아서, 차라리 그림을 그릴 때만큼은 별 생각을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임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로 했답니다. 그럴 능력도 안 되면서 지나치게 촘촘하게 작전을 짜면 약간의 균열에도 망그러지지만, 충분한 대비를 한 후 유연하게 얼기설기 작전을 짜면 복구하거나 대처하기 쉬워지기 때문이지요.


 



 결국 저는 다시 구상 작업으로 돌아왔고, 지금은 꽤 오랫동안 같은 방식으로 작업을 지속하고 있답니다. 아마 저만큼 실패의 연속을 경험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패하지 않고 성공만을 쟁취하는 일도 나름대로 문제가 있어요. 실패에 대한 면역력이 있어야 다음에 새롭게 도전할 때에 두려움이 적을 테니까요. 또한 얼마나 실패해 보았는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실패했는지를 아는 일도 중요한 것 같고요. 단순히 실패만 계속한다면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하게 될 테니까요. 처참한 실패담들을 쭉 풀어 놓고 나니, 앞으로는 좀 더 자신있게 한 길을 걸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하고 있는 작업에서도 물론 변화가 있겠지만 큰 줄기가 바뀌지 않기를 바라면서, 계속 작업을 이어 나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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