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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꿈은 별에 묶어두세요!

두근두근 가슴 설레게 하는 달리기.

by 원더랜드의 앨리스

중학교 2학년 때 한문 과목 담당 선생님이 새로 부임하셨다. 성함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자그마한 체구, 다부진 몸에 커다란 눈을 가진 얼굴은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새로 오신 한문 선생님은 인기가 많으셨다. 내가 사는 옆 아파트에 사셨는데 출근길에 같은 아파트에 사는 학생들을 태워서 같이 등교하시는 소탈한 모습이 아직도 인상 깊게 남아있다.

그분은 여러모로 인기가 많으셨지만, 내가 그 선생님을 기억하는 이유는 이 말 한마디 때문이다.

“ 너희들은 좋겠다. 자신의 꿈만 바라보고 살아갈 수 있어서.”


그날은 그저 평범한 한문 시간이었고, 아이들과 이런저런 대화로 수업을 시작하던 여느 때와 다를 것 없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중2 여학생들과 무슨 대화가 통했을지는 모르지만, 선생님은 아이들과 이런저런 근황토크로 수업을 시작하시곤 했고 나는 조금은 시크한 자세를 유지 중인 중2병 말기인 학생이었다. 아마도 공부하기가 싫다고 하는 아이에게 선생님이 툭 던진 말씀이었던 것 같다.

“너희 나이 때는 그걸 모르지. 너희 때는 너 자신만 생각하고 살면 되잖아. 너 자신의 꿈만을 위해 살아가면 되잖아. 가장 좋을 때지. 어른이 되면 나 자신을 생각할 수 없어. 나의 꿈을 좇아 살 수 있는 어른은 얼마 없지. 너희들은 좋겠다. 너 자신만 생각하면 되어서. 자신의 꿈만 고민하고 쫓아가면 되어서. “


그 말이 어린 내 가슴에 꽂혔던 것이 틀림없다. 이 후로 지금까지 그날 그 말을 하시던 선생님의 눈동자까지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어린 나이라 전부 이해할 순 없었지만, 뭔가 쿵 하고 마음을 치는 느낌이 왔다. 그리고 살아갈수록, 어쩌면 그 말을 하던 당시 선생님의 나이가 된 지금이라 더욱더 그 말이 와닿는다.


이제 나는 그 뜻을 확실히 알 것 같다. 아이 셋을 키우며 중학교 한문 교사로 살아가던, 중년의 나이가 되신 선생님의 마음을 알 것 같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꿈이라는 단어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이 되어가고 그저 해내야 할 의무와 역할이 허들처럼 남아있는 일상에서 자신만의 꿈을 좇아 나아갈 수 있는 지금이 가장 좋을 때라고 말해주던 그 의미를 말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중년의 나이가 주는 안정감이 있다. 더 이상 꿈을 꾸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꿈을 이루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확실성이 없는 편안하고 안정적인 삶이다. 젊은 시절 이루고자 한 것을 치열하게 이루어낸 후라면 더욱더 값진 안정감일 것이다. 꿈을 이루기 위한 도전 같은 건 젊은 시절에나 하는 것이지, 지금은 편안하게 여유를 즐기며 살아가는 시기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안정된 중년을 맞이한 사람이라면, 젊은 날부터 해오던 익숙한 일을 능숙하게 해내고 그 분야의 베테랑이 되어있을 것이다. 젊은 날에 꿈을 위해 고통의 시간도 감내한 도전을 이루어낸 대가를 이제야 거둬들이는 수확의 시기일지도 모른다. 편안하고 안락한 삶에 불안정성을 내포한 꿈을 꾼다는 건 어쩌면 어리석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래서 잠이 오지 않았다. 십 대 때 심하게 앓았던 중2병처럼 내가 생의 반환점을 돌았다는 사실이, 중년의 나이가 주는 안정된 삶이 불안했다. 자려고 누우면 심장이 요동치며 잠이 오지 않았다. 아버지를 여의고 생긴 증상이니까 그 상실감과 슬픔때문에 그려려니 했다. 시간이 지나면 망각이라는 선물을 받아 슬픔은 잊혀지고 다시 예전과 같은 편안한 일상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주위를 둘러보면, 다들 잘 살아가는 듯 보였다. 이번에도 나만 유난스러운 것이다. 나는 언제나 무엇이건 쉽게 넘어가질 않는다며 자책했다. 남들 다 하는 40세, 불혹이라고까지 일컬어지는데 불혹은커녕 일상이 흔들거리는 불안함은 무엇 때문일까. 이런저런 철학책에 나름의 설명이 있고 위로의 말도 있었지만 좋아지지 않았다.


그때, 한문 선생님의 말이 가슴을 스쳐 지나갔다. 나에게는 도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나는 미지의 영역에 도전을 하고 그것이 주는 불확실성이 필요했다. 너는 왜 그렇냐고, 그냥 남들처럼 조용하게 살아갈 수 없냐고 한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겨먹은 인간인 것이다.

가슴 뛰게 하는, 설레게 하는 무언가가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나 같은 사람은 어쩌면 도박에 빠질지도 모른다. 아니면 중년에 가정을 버리고 사랑을 찾아 떠나는 로맨스의 주인공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다행히 달리기에 빠졌다. 마라톤에 빠졌다.


나이가 많든 적든, 설레는 꿈이 있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 다음 대회를 구상하고 그 대회를 생각하며 현재의 나를 절제하고 훈련하며 꿈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 그것이 주는 에너지는 실로 강력하다. 오늘의 훈련이 성공이든 기대에 못 미쳤든 상관없다. 북극성을 보고 사막에서도 길을 찾아 나서던 사람들처럼 나는 내 마음에 품은 꿈을 깜깜한 밤하늘의 별처럼 바라보며 나아간다. 그렇게 나아가는 내 삶이 내 일상이 되고 나를 빛나게 한다.


꿈을 꾼다는 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반대로 꿈이 없다는 건 얼마나 시시한 일인가. 남들에겐 하찮은, 의미 없는 도전이고 기록이라도 상관없다. 나에게는 가슴 설레는 꿈을 꾸게 한 달리기니까.


내 마음속 북극성을 따라 오늘도 나는 나아간다.

나만의 방식으로, 마음 속 빛나는 별을 따라, 로맨틱하게 말이다.


나를 빛나게 하는 달리기. 두근두근,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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