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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마라토너가 되었는가.

평범한 사람이 마라토너가 되는 과정.

by 원더랜드의 앨리스
다만 이것만은 꽤 자신 있게 단언할 수 있다. '좋아, 이번에는 잘 달렸다'라고 하는 느낌이 회복될 수 있을 때까지 나는 앞으로도 기죽지 않고 열심히 마라톤 풀코스를 계속 달릴 것이다,... 그렇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이 태어날 때부터의 나의 성격인 것이다. 전갈이 쏘는 것처럼, 매미가 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달리가를말할때내가하고싶은이야기_무라카미하루키


여름이 다시 찾아왔다. 작년 여름, 역대급의 끈적하고 텁텁한 더위를 겪은 나는 봄이 되자마자 여름 걱정부터 앞섰다. 작년 여름은 정말이지 잔인할 정도였다. 특히나 대프리카로 유명한 대구 더위가 아니던가. 작년 여름은 가을도 못 오게 막아서서 11월까지 끈질기게 엉겨 붙던 더위가 특히 기억난다. 그놈의 더위가 봄이 오자마자 닥칠 것만 같아서 덜컥 걱정부터 되었던 것이다.

러너라면, 여름이라고 더위를 핑계로 달리기를 등한시할 수는 없다. 여름 달리기를 게을리하면, 가을에 있을 대회에서 만족할 만한 기록을 얻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고만고만한 기록이지만, 기록이 쪼그라드는 것만은 싫은 것이다. 흘러가는 세월 앞에 기록을 유지라도 하려면 달리는 것을 더위를 핑계로 멈출 수는 없다. 언젠가는 현상 유지도 힘든 때가 오겠지만, 지금은 1분이라도 PB를 세우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더위 속에서 달리기를 지속해 나가는 것에 대한 의지가 꺾일 때 나에게는 비장의 무기가 있다. 숨겨둔 비법의 과자를 꺼내 먹듯 꺼내드는 책이 바로 그것이다. 러너라면 누구나 사랑하는 책, 무라카미 하루키의 바로 그 책,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이다. 아무 페이지나 펴서 읽기 시작해도 금방 빨려 들어간다. 고개를 끄덕이며 어느덧 몰두하게 된다.


무라키미는 책에서 마라톤이 아무리 좋아도 남에게 권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했다. 어쨌든 마라톤을 20여 년째하고 있는 본인은 마라톤이 맞는 사람이라서 하는 것이지 달리기가 건강에 이득이 있고 남들보다 의지가 강해서 하는 것은 아니라고. 그저 장거리를 달리는 것이 본인의 셩격과 맞고 그다지 고통스럽지 않고 좋아하니까 꾸준하게 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나는 어쩌다 마라토너가 되었을까?

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결국, 나도 장거리 달리기가 그다지 고통스럽지 않고 나에게 맞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몸에 좋은 운동이라 한 들, 힘들고 괴롭다면 참고 꾸준히 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팀 경쟁도 아니고, 남들과의 대결도 아닌, 그저 묵묵히 혼자 끝까지 달려낸다는 것은 어쨌든 나의 성격과 맞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빠진 것이 있다. 바로, 마라톤을 생각하면 설렌다는 것이다. 대회를 준비하며 남몰래 가슴속에 품어온 기록에 대한 기대감. 그 순간을 위해 하기 싫은 훈련도 꾸역꾸역 하고, 뛰기 싫은 날에도 기꺼이 달려온 그 모든 시간이 바로 내가 계속해서 달릴 수 있게 하는 그 무엇이다. 그런 노력과 애씀은 나를 설레게 만들고 그것이 바로 내가 마라토너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이 태어날 때부터의 나의 성격인 것이다. 전갈이 쏘는 것처럼, 매미가 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나는 그렇게 생겨먹어서 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달린다는 행위가 하루 세끼 식사나 수면이나 집안일이나 쓰는 일과 같이 생활 사이클 속에 흡수되어 갔다. 달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습관이 되고, 쑥스러움 같은 것도 엷어져 갔다.
스포츠 전문점에 가서 목적에 맞는 제대로 된 신발과 달리기 편한 옷도 사 왔다. 스톱워치도 구입하고, 달리기 초보자를 위한 책도 사서 읽었다. 이렇게 해서 사람은 러너가 되어간다.


당신은 어떻게 마라토너가 되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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