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확실한 행복을 위해서
쾌락이라는 단어와 기쁨이라는 단어는 완전히 다른 것 같아요. 쾌락이란 그 어떤 노력을 하지 않고 지금 즉시 어떤 행위를 통해서 얻어지는 것 같아요. 그거는 지속적이지도 않고 그 경험 후엔 어떤 허무함 같은 것이 생기고 후회가 생기는 거예요. 반면, 기쁨이라는 것은 어느 일정 부분의 고통과 시간과 인내를, 또 눈물을 통과하고 나서야 얻은 것들이에요. 이런 것들은 일시적이지 않고 지속적이고, 사라지는 기억이 아니라 오랫동안 저장되고 기억되는 기억이에요. 그래서 이 고통을 통한 기쁨을 많이 느껴본 사람은 인내심이 생기는 거죠. 견뎌낼 수 있는 힘이 생기고 성실함을 갖추게 되고.... 그런데 노력하라는 단어들, 인내하라는 단어들, 좀 견뎌내라는 단어들 자체가 되게 구식이 되어버린 거예요....
이영표 님이 션님의 유튜브에서 한 말 중에서.
요즘 나는 달리기를 통해, 인내심을 배우고 있다. 무더위 속에서 일정 부분의 달리기를 이어간다는 것이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한 여름의 날씨에 접어든 대구는 더위에 있어서 만큼은 전국적 명성을 떨치고 있는 탓에 그리 엄살로만 여겨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게 6월의 햇살이 맞나 싶은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게다가 습도는 또 얼마나 높은지, 숨이 턱턱 막히는 날이다.
나에게 달리기는 감정의 쓰레기통 같은 것이다.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이런저런 감정의 찌꺼기들을 달리면서 태워버린다. 달리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아니 생각을 떨쳐낸다. 달리고 나면 머리가 깨끗해지고 감정이 정리가 되며 기분이 상쾌해진다. 그렇게 그저 좋아서, 행복해서 하는 달리기가 요즘 나에게 인내심을 요구하고 있다. 그저 취미로 하는 운동이 힘들고 괴로우면 잠시 쉬어가면 되지 왜 굳이 그렇게 무더위와 싸워하며 달리느냐고 지인들은 나에게 묻는다. 내가 덥다는 이유로, 불쾌지수가 높고 날벌레가 많이 날아다닌다는 이유로, 비가 온다는 이유 등등으로도 달리기를 멈추지 않는 이유는, 정말 좋아하는 것을 하려면 견뎌내야 할 고통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앞서 이영표 님이 말했듯, 내가 느끼는 즐거움은 즉각적으로 얻을 수 있는 "쾌락"이 아니다. 일정 부분의 고통과 인내와 어쩌면 눈물도 함께 견뎌낸 시간이 주는, 마침내 얻게 되는 기쁨이다. 그것이 마라톤 완주의 기쁨이 될 수도 있고 기록이 주는 기쁨이 될 수도 있다. 또 내가 달리기를 지치지 않고 할 수 있는 체력이 주는 기쁨이기도 하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비슷한 말을 책에서 한 적이 있다.
생활 속에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크든 작든 철저한 자기 규제 같은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꾹 참고 격렬하게 운동을 한 뒤에 마시는 시원한 맥주 같은 것이다. "그래, 이 맛이야"하고 혼자 눈을 감고 자기도 모르는 새 중얼거리는 것 같은 즐거움, 그건 누가 뭐래도 '작지만 확실한 행복'의 참된 맛이다...
#작지만확실한행복_무라카미하루키
이 책에서 유명해진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말이 "소확행"이라는 단어로 우리나라에도 유행을 하였다. 그런데 소확행은 하루키의 의도와는 달리 지금 이 순간의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자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인식되어 온 것 같다. 그러나, 하루키가 말한 소확행의 진짜 의미는 선행되는 '철저한 자기 규제'의 시간을 견뎌내야 한다는 것에 있다. 그 고통의 시간을 견뎌낸 사람만이 진정한 행복과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철저한 자기 규제의 과정 후에야 그 행복이 정말 확실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유로, 달리기가 괴롭고 하지 싫은, 하지 않아도 될 많은 이유가 있지만,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꾸역꾸역 달린다. 새벽에 못 일어났으면 밤이라도, 헬스장이라도 찾아가서 달려본다. 조금은 즐겁지 않은 달리기를 이어가는 나를 미련하다 할지도 모른다. 달리기 밖에 모르는 바보라고 진정 러닝 변태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가을에 있을 마라톤 대회에서 완주 후에 느낄 그 "크고 확실한 행복"을 위해서, 오늘의 철저한 자기 규제의 나날들은 필수인 것을 알기에 나는 멈출 수는 없다. 그리고 그 모든 고통의 과정이 바로 마라톤이기에, 그러한 과정이 있기 때문에 마라톤을 사랑하는 것이기에, 나는 올해도 뜨거운 여름 속을 꾸역꾸역 달려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