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콩알이 Dec 22. 2023

커피쟁이, 졸업.

23년 12월의 바리스타

카페를 인수받을 분이 나타나자 양도양수는 기다렸다는 듯이 후다닥 진행되었다.

우리 카페는 1~2월이 최대 보릿고개 시기여서, 컨설팅업체와 양수자분에게 가능하면 일찍 시작할 것을 권유드렸다. 처음부터 보릿고개를 맞으면 심적으로 힘드실 테니, 상대적으로 매출이 괜찮은 12월에 시작하시라고...(정말 누가 누굴 걱정한 건지 모르겠다만.)


5년 동안 하나둘 쟁여졌던 개인짐들을 집으로 옮기고,

창업축하로 지인들에게 선물 받아 잘 버텨준 화분들도 언니와 나의 각자 집으로 가고, (집은 훨씬 더 추울 거야.... 잘 버텨줘야 해.)

쓰지도 않으면서 버리지 못했던 것들을 이제야 버리고,

포터필터와 샤워스크린도 묵은 때를 벗겨주고.....

몸도 마음도 분주해졌다.


고작 5년 해놓고는 뭐 그리 정이 들었는지 안부를 챙겨가며 들러주었던 단골들이 마음에 쓰였다.

샌드위치와 초코파이를 즐겨드시던 어머님께도 인사를 드려야 할 것 같았고(항상 곁에 계시는 아버님 커피도 챙겨주셨으면 좋겠어요^^), 딸기 라떼를 즐겨드시며 간호사분들 고생하신다며 음료 배달을 자주 부탁하시던 어머님께도 인사를 드리고 싶었다.(요즘 들어 부쩍 기운이 많이 없어 보이세요. 입맛 없어도 잘 챙겨드셔야 해요.)

우리 카페 커피가 맛있다며, 카페를 그려주고 싶다던 환자분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 내려오기도 힘들어한다며 걱정하시던 어머님과 따님께는 커피를 한 잔 내려드리며 인사드리고 싶었고,

손짓으로만 까딱하셔도 주문이 되었던 몇몇 어르신들께도 인사를 드리지 못해 마음 한편에 남았다.

남편분 간호를 하시며 카페에 들러 한숨 돌리고 가셨던 부부는 퇴원을 하셨다가 다시 온다는 시일이 너무 길어져 혹여나 먼 길 가신 건 아닌지 걱정이 되고....(짧게 머리 자르시고는 저희에게 선물 주신 머리집게는 너무 잘 쓰고 있어요...)

매일처럼 들러주셨던 아이스티 열번 추가 고객님께도 차일피일 미루다 인사를 못드려 마음이 쓰이고(건강하셔야해요. 항상 운전 조심하시구요.)

극에 달한 스트레스를 달래려 지나는 길에 잠시 들러 커피 한잔 원샷하고 가시던 몇몇 직원분들에게도 인사를 드리고 싶었다.(선생님들은 계속 다니셔야 하니까, 실명을 밝히지 않겠어요.^^)

비록 모든 분들을 챙기지는 못했지만 그분들 덕분에 많은 에너지를 얻었기에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었다.


이제 뭐 할 거예요?
개인카페 하실 거예요?

많은 분들이 질문을 주셨다.

사람일은 장담할게 아니라지만, 지금의 나의 대답은 "No. 절대."

미련한 이야기지만, 지인들이 말하던 "넌 안돼."라는 부정하고 싶었던 내 체력의 한계를 카페를 하고서야 받아들이게 되었고, 커피를 내리는 자영업자가 되었음을 나 스스로가 자랑스러워하지 않는다는 걸 느끼게 되었고, 최근에 와서는 '카페를 하지 않았다면 내가 쓰러지지 않았을까?' 하는 부질없는 자문마저 하게 되었다.


언니들은 어릴 적부터 타 지역에서 학교를 다니느라 타향살이를 하는 바람에 친해질 겨를이 없었던 우리 자매가 카페에서 긴 시간을 함께 보내며 쓸데없는 수다를 떨어가며, 알지 못했던 서로의 성격도 알아가게 된 시간들이기도 했다. 오빠 같은 언니라며 웃으며 얘기하지만 그 든든함이 없었다면 5년이라는 시간이 더 짧아졌을지도, 시작도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몇천 원 아껴보겠다며 마트며 시장이며 이리저리 함께 끌려다녀 준 두 집안의 남편분들과,

그런 사소한 일들을 핑계 삼아 잦은 외식을 하며 함께 웃었던 시간들에도

카페 일에 끌려다니느라 자주 찾아뵙지 못했던 양가 부모님들께도 모두 당신들 덕분이었음을 전하고 싶다.


취약계층을 위한 병원임에도 직원 할인에 대한 계약조건과 비싼 임대료 때문에 정작 환자들에게는 더 비싼 가격으로 음료가가 책정될 수밖에 없었던 카페 운영 정책이 5년 내내 아쉬움이었고 딜레마이기도 했지만,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이 우물 안이었음을 알게 된 시간들이었다.


'카페하는 콩알이'는 이제 다시 '콩알이'로 돌아가 길을 잃은 사람처럼 새로운 나침반을 찾아 나설 것이다.




이전 11화 카페를 내놨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