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쟁이 이런저런 이야기
20년 8월의 바리스타
슬슬 마감 설거지를 시작하려는데 그 시간 즈음이면 가끔 오시던 중년 남성 한 분이 오셨다. 여느 때처럼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신다.
카드를 찾으며 지갑을 뒤적거리시다 카드를 찾아 건네시며
사는 게 왜 이리 재미없을까요?
무심하게 한마디 던지셨는데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하셨다.
말문이 막혔다. 무어라 말씀드려야 할까....
대답을 기대하는 질문도 아니었겠지만
뭐라도 한마디 건네드리고 싶은데,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떤 말도 위로가, 아니 마땅한 답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맛있게 드세요." 밖에 없었다.
" ㅇㅇ과장 커피 들어갔어?"
" 오늘은 저희가 바빠서 잘 모르겠어요. 들어갔는지 아닌지."
" 장사하는 사람이 그걸 모르면 어떡해!"
" 저희가 비서도 아니고 그걸 어찌 다 알아요...(ㅜ.ㅜ)"
점심시간이면 매일같이 입원실에서 내려오셔서는 ㅇㅇ과장님의 음료를 챙기시는 할머니가 오늘도 내려오셨다.
"ㅇㅇ과장 커피 들어갔어?"
"오늘은 무지 많이 들어갔어요. 사드리지 마세요."
"진짜야? 나 사지 말라고 거짓부렁 아니야?"
"저희가 뭐하러 거짓말해요. 선생님 커피 진짜 많이 드셨어요. 사지 마세요. 할머니 맛있는 거 사드세요."
"그럼 쌍화차 한잔 줘봐."
우리 카페에는 생강차만 있다고 그렇게 말씀드렸는데, 오실 때마다 쌍화차를 찾으신다.
"지난번에 그 쌍화차 있지? 그거 맛있더라. 오늘도 한 잔 줘봐."
"지난번에 생강차 드셨어요. 그때도 쌍화차 찾으셔서 없다고 말씀드렸는데..."
"그래? 내가 언제? 알았어 그럼, 생강차 줘봐. 그리고 쌍화차를 해봐, 진짜 잘 나가. 내가 알려줄게. 내가 예전에 다방 했거든."
몇 번째 듣는 필살기 전수 제의이지만 들을 때마다 큭큭거리게 되는 귀여운 할머님이시다.
할머니를 위해 쌍화차를 담가야 하나 진지한 고민이 든다.
뜨거운 아메리카노에 스틱설탕 2개. 우유 조금
외래 진료 때마다 카페에 오셔서 같은 주문을 하시는 어르신.
어느 날 갑자기 환자복을 입고 오셔서는 "입원하셨어요?" 하는 놀란 질문에 고개만 끄덕하고 가셨다.
하루하루 안색이, 기력이 나빠지시는 게 눈에 띌 만큼인 어느 날은 수혈팩까지 매달고 커피를 주문하러 오셨다.
얼굴 익은 어르신이라 정이 들었던 건지, 수혈까지 받으시는 모습에 괜스레 마음이 쓰여서는 집에 있던 헌혈증을 몇 개 챙겨 왔다. 링거대를 밀고 지나가는 어르신을 붙잡아 몇 개 안되지만 챙겨봤다며 주머니에 넣어드렸더니, 별 것 아닌 그 헌혈증을 받으시며 허리까지 숙여 고맙다며 인사를 하시고는 병실로 올라가셨더랬다.
그렇게 입퇴원을 반복하시는데, 얼마 전 입원 때 오셔서는
"요즘 얼굴이 많이 안 좋아지셨어요...."하고 건넨 인사에 고개를 끄덕이시며
"나 죽으면, 누가 내 장례식장에 요 커피 한잔만 갖다 줬음 좋겠어." 하시고는 사람 좋은 미소를 보이시며 가셨다.
너무 무덤덤하니 말씀하셔서, 더 마음이 이상했다.
자리한 곳이 병원이다 보니, 종종 어르신들의 건강상태에 변화가 느껴지고
오실 때가 되었는데 보이지 않을 때면 문득 조심스러운 염려가 들었다가도 얼굴을 뵙게 되면 안도의 웃음을 짓게 되는 여기 이곳,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