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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세상 Oct 12. 2023

어머니와 함께 살기(4)

엄마와 아시안 게임 시청하기

추석 다음날 저녁 밥상을 물리고 텔레비전 앞에 앉은 어머니가 ‘추석이라고 재미난 것도 하나도 안 허냐’ 불평을 하신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사극이 없다. 채널을 돌리다가 보니 MBC에서 여자축구 남북대결을 중계하고 있다. 

    “엄마, 축구하는데? 축구 보실래요?”

    “여자 축구여? 북한하고 우리하고 허는 경기네? 빨간 옷이 우리나란가 비네”

화면 상단에 보이는 기록을 벌써 읽으셨다.

어머니가 관심을 가지고 계속 보았다. 이미 후반전 40분이 지나고 한국이 1대 2로 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해설을 들어 보니 전반전 끝 무렵에 파울로 한국 선수 한 명이 퇴장당하고 수적으로 열세인 상황에서 게임이 진행되고 있는 모양이다. 우리가 시청하기 시작한 지 몇 분 안 되어 북한 팀이 또 한 골을 넣어 1대 3이 되었다.

수적으로 불리하니 수비를 제대로 못하고 패스가 자주 커트당하고 공을 뺏기는데 그것이 몹시 답답한 모양인 어머니.

     “아이고 저런 또 뺏겼네. 아 왜 뒤에만 서있어. 앞으로 달려와서 공을 뺏어야지. 그라고 서 있으면 누가         공을 주나.”

     “아무래도 한국선수들이 딸리는디. 안 돼 갔구먼. 

     “바보들. 앞으로 빨리 가야지… 왜 저려. 아이고 답답 혀라…”

게임은 연장 시간이 8분이 넘게 주어졌지만 한국팀은 점수를 만회하지 못하고 북한 팀에게 1대 4로 지고 말았다. 한국 팀이 한 명 부족한 상태로 뛰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어머니로서는 골 장악력이 훨씬 부족해 보이는 한국팀이 못내 만족스럽지 못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실망한 어머니의 한숨과 함께 게임이 끝났다.

     “에이 졌네. 안 되는 게임여.”


여자축구 중계가 끝나고 전지희 , 신유빈 선수가 대만 선수와 벌이는 4강전 탁구게임이 나왔다.

이번에야 말로 우리 엄마 기를 좀 살려주라 마음속으로 빌며 탁구 경기를 보았다.

첫 게임을 대만에 뺏기자 어머니는 몹시 실망하는 눈치다. 

하지만 2회전과 3회전 연속 한국 팀이 이기자 어머니도 흥이 나기 시작했다. 연속 추임새가 나온다.

    “그렇지, 잘 헌다” 

    “나갔지. 또 점수 얻었네.” 

    “옳지. 이제 1점만 더 얻으면 이번 게임도 이기네.”

눈치도 빠르시다. 벌써 한 게임에서 11점을 먼저 얻는 쪽이 그 게임을 가져간다는 것을 아셨다.

네 번째 게임이 시작되자 물으신다.

    “이거는 몇 게임을 허는 거여?”

    “아, 이번 게임을 이기면 끝나요. 다섯 게임 중에서 세 번 이기면 돼요.”

    “응, 다섯 게임을 하는 거고만”

마지막 승리가 확정되자 어머니가 축구의 패배는 잊은 듯, 드시기 좋게 강판에 갈아드린 배를 기분 좋게 숟가락으로 떠 드신다. 

     “이거 맛나네. 잉”

우리 어머니가 행복한 추석 다음날 밤이다. 


며칠 후, 뉴스에서 한. 일전 축구 결승전이 저녁 9시에 열린다는 소식이 나왔다.

    “엄마, 축구 경기 볼까요?”

    “잉, 그려. 나 축구 좋아 혀.”

    “근데 엄마, 9시에 시작한다는데… 엄마가 보기 힘들겠는데?”

어머니는 저녁 8시경이면 어김없이 잠에 빠져드신다. 낮잠도 잘 주무시고 밤잠은 더 잘 주무신다. 낮에 많이 움직인 날이면 더 잘 주무신다. 이 날은 병원에 정기 검진을 다녀온 날이라 피곤해서 낮잠을 곤하게 주무셨다고 하셨다.

    “내가 낮에도 실컷 잤은 게 9시에 축구 볼 수 있을 거여.”

저녁 상을 물리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어머니가 부엌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아 뉴스에서 본 이런저런 얘기를 하신다.

    “부산에서 뭔 축제를 허는 모양인디, 유명헌 배우들이 다 모였디야.”

    “예~부산에서 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어요.”

    “근디… 지금 청문회를 허는디 어떤 이가 죄를 짓고 국회의원들이 묻는 말에 대답을 못 혀고 도망갔다 더       라. 그이는 인자 장관 되는 디서 떨어진 거지.”

    “글쎄요? 그래도 윤 대통령이 임명할 걸요?”

    “아녀. 아무리 윤 대통령이라도 죄짓고 도망간 사람을 어찌게 장관을 시켜. 그렇게는 안 될 거여.”

    “글쎄요… 엄마 생각에는 안 될 것 같아요?”

    “암만… 죄를 지었더라도 끝까지 앉어서 잘못혔다고 빌고 뭐라도 말을 허면 몰라도 대답을 못 하고 끝까         지 앉어 있지도 못 허고 도망간 인사를 어찌케 임명을 혀. 아무리 윤 대통령이라도 그렇게는 못 할겨.”

어머니의 경험과 상식에 따르면 청문회 도중 도망간 장관은 임명되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다. 

과연 어머니의 상식이 통하는 대통령일지 두고 볼 일이다.


설거지를 마치고 TV앞에 나란히 앉았다. 축구 경기가 시작되려면 2시간쯤 남았다. 

1시간쯤 지나자 어머니가 자리에 눕는다. 

    “야야, 나는 안 되겄다. 졸려서… 자야겄다.”

저녁 8시. 어머니의 취침시간이다. 

    “낮에 많이 자서 괜찮을 거라더니…ㅎㅎ… 이따 경기 시작하면 깨워드릴까요?”

    “아녀, 내가 혹시 저절로 깨서 보면 몰러도 일부러 깨우지는 말어.”

축구 보다 잠이 중허지. 암. 어머니는 내가 경기를 보는 내내 꿈쩍도 않고 깊은 잠을 주무셨다. 다음 날 아침 5시 반까지.

아침에 옥상에 올라가 고추 화분을 한 바퀴 살피며 손에 빨간 고추 대 여섯 개와 푸른 고추 대 여섯 개를 들고 들어 오셨다. 아침 밥상을 마주하고 앉자마자 내게 물으신다.

     “참 야야… 어제 축구는 어찌 되았냐?”

     “하하… 2대 1로 한국이 이겼어요.”

     “그려? 이겼어? 2대 1로. 잉, 잘혔네”

마침 뉴스에서 어제 경기의 하이라이트가 나온다. 

자막으로 나오는 골 넣은 선수들의 이름과 간단한 설명을 또박또박 읽으며 어머니의 주름진 얼굴이 활짝 펴진다. 

어머니의 즐거운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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