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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세상 Oct 07. 2023

어머니와 함께 살기

(3) 엄마와 밥먹기

어머니는 이가 거의 다 빠지고 없다. 특히 어금니는 하나가 겨우 남았고 앞니만 8개 남았다.

몇 년 전에 어금니가 빠지면서 남아 있던 뿌리가 썩어 엄청난 통증이 생기니 이를 이기지 못하고 자식들에게 하소연을 하셨다. 썩은 어금니 뿌리를 뽑아내고 그 김에 틀니를 해드리려고 두어 군데 병원에 갔는데 의사들이 틀니를 하려면 틀니를 걸 봉을 심는 수술을 해야 하는데 너무 고통스럽고 연세도 많으시니 그냥 현 상태로 사시는 게 나을 거라고 했다. 

가기 싫은 치과를 자식들의 성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끌려가신 어머니는 옳다구나 즐거워 하며 집으로 돌아오셨다. 

어머니 이가 이렇게 망가진 것이 고단했던 어머니의 일생을 반영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평생 어머니를 고생시킨 아버지와 불효막심한 장녀인 내가 어머니 치아가 이렇게 초토화되게 만든 원흉이라고 할 수 있다.


어금니가 없으니 식사가 쉽지가 않다. 

딱딱한 고기류는 전혀 못 드시고 채소도 거칠고 오래 씹어야 하는 것들은 피한다. 거기에 맵고 짠 음식도 싫어하니 김치도 연한 열무 물김치를 주로 드신다. 그러다 보니 당신이 뒷밭에서 키운 연한 열무를 솎아내고 다듬어 반 건조된 빨간 고추를 조금 넣고 들깻물을 부어 담근 열무김치가 주 반찬이다. 그 외에는 당근, 양파를 다져 넣은 달걀 찜, 고등어 감자조림, 호박 나물이 단골 메뉴로 상에 오른다. 

육류보다 생선류가 드시기 쉬울 것으로 생각하고 고등어 구이나 고등어 조림을 해드려도 요즘은 생선도 잘 안 드시려고 한다. 감자만 골라 드신다. 내가 억지로 가시를 바른 고등어 조각을 밥 위에 놓는다.

   “큰 딸이 같이 있으니까 생선도 발라주고…” 하시며 웃는다.

   “많이 드세요. 천천히”

두어 번 더 고등어를 올리자 드디어 어머니가 반항을 시작한다.

   “그만 해라. 나도 다 할 수 있다. 내가 유치원생이냐.”

   “엄마가 고기는 안 드시고 감자만 드시니까 그러지.”

   “아 고기는 이에 끼어서 싫다니께.”

어린애 밥 먹이듯 밥상 앞에서 실랑이가 벌어지는 일이 잦다.

얼마전에는 떡갈비를 구어 드렸다.

고기가 부드러워 잘 드셨다. 마지막 남은 두 조각을 어머니께 마저 드시라고 했더니 밥 없다고 빈 공기를 들어 보이며 반찬 접시를 내게 민다. 

   “에이, 엄마, 그냥 고기만 드셔요. 꼭 밥하고 같이 먹어야 하나. 샐러드랑 드셔요.”

내 강권에 못 이겨 어머니가 접시를 비웠다.

며칠 뒤 떡갈비를 다시 상에 올렸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어머니가 남은 떡갈비 네 조각을 둘 씩 갈라 놓더니 두 조각을 내 쪽으로 미신다.

   “자, 너 두 조각, 나 두 조각”

어머니 얼굴에 웃음기가 솟는다.

   “엄마, 나 밥 다 먹었는데…봐요, 밥 없잖아.”

   “그냥 먹어도 되잖아. 양배추랑 먹어… 니가 저번에 그랬잖아, 나한테… 히히히, 복수다, 복수.”

   “하하하 나 참…” 


밥 양을 놓고도 자주 말이 오간다.

오늘도 그랬다.

   “왜 니 밥은 쪼금 푸고 내 밥만 이렇게 많이 푸냐.”

   “아닌데요. 엄마. 제 밥이 더 많았는데? 엄마가 천천히 드시니까 밥이 많이 남아서 그렇지.”

   “아녀. 내가 다 봤어. 내 밥이 더 많았어.”

   “아니라니깐.”

   “내가 봤다니깐. 내 밥이 더 많았어.”

계속 우기시다가 하하하 웃음을 터트린다. 당신 생각에도 애처럼 이게 무슨 짓인가 싶었던 모양이다.

   “하이고 참 웃기다. 하하하…”

식사가 끝나고 양치를 하시라고 했다.

어머니는 이도 없어서 닦을 것도 없다고 하시며 미룬다. 

   “닦을 이나 있간디. 그라고 이 걸로(치간 칫솔) 사이에 낀 것 다 빼내니께.”

내가 남은 앞니라도 잘 닦지 않으면 썩어서 나중에 큰 고통을 당할 수 있으니 잘 닦아야 한다고 소리소리 지르며 목이 쉬도록 설명을 한다. 설명이 길어지면 소리지르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괴롭다. 어머니는 내 말을 끊고 당신 얘기를 시작한다. 

   “내가 옛날에 이가 썩어서 치과에 가서 치료를 받았는데 어떻게 아팠는지 몰라. 근디 테레비에서 이*탄 이라는 거 선전하는 걸 보고 그걸 사서 먹었어. 그걸 계속 먹으니까 이도 안 아프고 잇몸에서 피도 안 나고 그러더라고. 이가 흔들리면 내가 요리조리 흔들어서 뽑으면 그대로 쏙 뽑히고 피도 얼마 안 나고 바로 아물고…참 좋아. 너도 이가 안 좋으면 그걸 사 놓고 계속 먹어봐. 이에는 이*탄이 최고여.”

어머니의 이*탄 찬양을 이미 여러 번 들은 터라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안다고 일단 맞장구를 친다.

   “근데 엄마 이*탄은 잇몸에는 좋아도 충치가 생기는 걸 막아주는 건 아니거든. 일단 충치가 생기면 엄청 아프잖아. 그럼 또 치과 가서 치료해야 되고. 엄마 치과 가기 싫잖아. 그니까 빨리 양치 하셔요.” 

소리 소리 높여 설명을 한다. 

   “알았어. 안다고. 지금 갈거여.”

당신이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는 걸 아시는지라 천천히 몸을 일으키다가 벽에 걸린 시계를 올려다 보더니 나를 향해 실눈을 뜨고 방긋이 웃는다.

   “한 시간 뒤에 간식 먹을 시간인디…간식 먹고 닦는 기 낫지 않을까?”

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소리를 지를 준비를 하자 어머니가 손을 휘휘 내두르며 몸을 일으킨다.

   “잉, 안 되지. 알어… 간다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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