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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세상 Sep 30. 2023

40년만에 어머니와 함께 살기

(1) 엄마 알아가기

1984년 1월 결혼해서 어머니 곁을 떠난 지 거의 4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서야 비로소 어머니 곁에서 몇 달 지내려고 한국에 왔다. 사실 연금이 나오는 65세가 되면 일년에 석 달은 어머니 곁에서 지내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인생이 뜻대로 되는 일은 별로 없다고, 전혀 예상치 못한 일 때문에 1년 늦게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기게 되었다. 사실 결혼 후 어머니 곁을 떠났다고 했지만 나는 그 보다 훨씬 전부터 어머니에게 참으로 무심하고 무정한 딸이었다. 이제까지 잘 기다려 주신 어머니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60년 만에 어머니를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어머니는 올해 구순이 되셨다. 원래 총명하셨던 분인데 구순이 되어서도 정신없는 나 보다 더 기억력이 좋으시다.


휴대폰에 ***톡을 깔아서 자식들과 영상통화 하는 법을 일러드렸더니 멀리 캐나다와 미국에 사는 자식들까지 이렇게 얼굴을 보며 전화를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냐고 기뻐하셨다. 한동안 옥상이나 뒷밭에서 키운 고추나 꽃 사진을 올리며 자랑하는데 재미를 붙여서 열심히 사진을 찍어 올리기도 하셨다. 최근에는 이모티콘도 하나 올렸다.

늘 휴대폰을 옆에 두고 가족 단톡방에 수시로 들어가 자식들이 무슨 얘기를 주고 받는지 점검을 하신다. 얼마 전에는 어머니 생신 즈음해 언제 모일 것인지를 문자로 주고 받았다. 그런데 단톡방에 들어가 점검을 하시던 어머니가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셨다.

“막내가 화요일이라는 데 누가 토요일이 어쩌구를 올렸어…” 하시며 나를 힐끔 보신다. 뜨끔해진 내가 휴대폰을 확인해 보니 내가 잘못 올린 문자가 빼도 박도 못할 증거로 딱 기록되어 있었다. 막내가 화요일 오후에 온다는 문자에 내가 엉뚱하게 “어느 토요일?” 이라는 답글을 올렸다. 왜 화요일이라 읽고 토요일이라고 생각했는지…나 스스로도 이해가 안 된다.

엄마가 기억력이 좋다고 칭찬을 해드리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옛날 같지 않게 맨날 해야 될 일을 잊어 먹는다고 한탄을 하신다. 내가 엄마 딸들도 이제 다 그렇다고 해도 별로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눈치다. 사실 요즘 나와 동생들은 서로 누가 더 건망증이 심한지 경쟁이라도 하듯 건망증 무용담(?)을 늘어 놓는 실정이니.


그런데 어제는 내가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집을 나와 지하철역을 향해 가다가 아침에 먹을 약을 잊고 먹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 10분 정도를 걸었는데 그 길을 다시 갈 생각을 하니 약간 고민이 되었다. 그렇지만 오후 늦게야 들어올 예정인데 그때까지 약을 건너 뛰는 건 안될 일이었다. 할 수 없이 집으로 돌아갔다. 20분 만에 돌아온 나를 보고 웬일인가 하다가 약을 먹는 걸 보더니 “참…”하고 돌아앉아 파 다듬는 일을 계속하신다.

오늘은 도서관을 가려고 나왔다가 휴대폰을 집에 놓고 나온 걸 깨달았다. 다행히 오늘은 어제 보다는 덜 걸었다. 부지런히 집에 돌아가 휴대폰을 찾아 나오니 어머니가 기어이 한마디 하신다.

        “나는 너 정도는 아니다.”

          “…ㅎㅎ”

그저 멋적은 웃음을 남기며 다시 집을 나설 밖에…


얼마 전 주말에는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과 캠프 그리브스에서 열리는 DMZ 오픈 페스티벌에 동생 가족과 함께 다녀왔다. 미술을 전공하는 조카가 좋아하는 교수님 작품도 전시되고 있다고 가고 싶어해서 덕분에 나도 오랜만에 바깥바람도 쐴 겸 따라 나섰다.야외에 전시해 놓은 사진 작품들 앞에 술판을 벌이고 있는 자유총연맹 회원님들 때문에 작품 감상에 지장이 많았던 것을 빼면 날도 화창하고 의미 있는 작품들을 감상하며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하필 그날이 자유총연맹에서 주최하는 안보다짐대회가 열리는 날일 줄이야. 바람개비 돌아가는 평화로운 누리동산에서 전시된 작품을 감상하는 즐거움을 빼앗긴 우리는 셔틀버스를 타고 캠프 그리브스 등 다른 전시장을 둘러 보고 다시 누리공원에 왔다. 다짐대회가 끝난 뒤라 쓰레기가 잔뜩 쌓여 있긴 했지만 무대에서 틀어주던 트로트도, 확성기 소리도 사라져 누리공원엔 다시 평화가 감돌고 있었다. 몇몇 어른과 어린이들이 독수리 연과 가오리 연을 날리는 하늘엔 구름도 예쁘고 사이사이 보이는 하늘 빛도 예뻤다. 우리는 비로소 느긋한 마음으로 전시된 작품들을 다시 감상하고 사진도 찍었다.

                                         

정소영작가의 <환상통>이라는 작품이 특히 인상적이었다.(위의 오른 쪽 끝 사진) 두 개로 잘려진 하나의 돌 위에 세워진 금속판에 비치는 돌의 모습이 빛과 보는 위치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작품이다. 과거의 고통이 아직도 실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환상통이라는 제목과 더불어 분단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인 것 같았다.


대성동 마을 특산품으로 유명한 장단 콩으로 빚은 청국장을 사가지고 왔다. 어머니에게 김치 쫑쫑 썰어 넣은 청국장을 끓여드릴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두부도 넉넉히 넣은 영양 만점 청국장을 밥상에 올렸다.

아무 말없이 몇 번 찌개를 뜨시던 어머니가 은근히 말씀하신다.

   “청국장은 이렇게 빡빡하게 끓이는 게 아녀. 김치는 쬐께 넣고 국물을 훙덩하게 부어야 맛있지”

   “그래요? 나는 김치 많은 게 좋은데. 너무 빡빡해?”

   “그려. 나는 원래 된장찌개도 안 좋아허고 청국장은 니 아버지가 좋아해서 가끔 끓였어도 이렇게 진하게는 안 끓여. 내가 된장국 끓일 때도 된장을 살짝 풀어서 맑게 끓이는 걸 좋아 혀.”

그러고 보니 어머니가 해 주신 김치찌개나 동태찌개는 많이 먹었지만 된장찌개에 대한 기억이 없다. 평생 어머니가 해주는 음식만 먹다 처음으로 하루 두 끼(어머니는 아침 8시와 오후 5시 두 번 식사를 한다) 어머니 밥상을 준비하고 함께 식사를 하면서 나는 이제야 비로소 어머니가 된장찌개처럼 텁텁한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랬구나. 얼마나 무심한 딸인가.

 

그토록 무심한 큰딸이 준비한 밥상을 생전 처음 받으시는 어머니가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우리 딸 덕에 내가 참 편해 뿌렸네. 가만히 앉아서 해다 주는 밥 따박따박 받아 먹고. 석달 동안이나...너도 집에 있었으면 혼자 편하게 먹을 틴디…엄마 집에 와서 고생허네”

(아녜요. 엄마. 앞으로 10년은 더 밥상을 차릴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엄마의 60년에 비하면 너무 짧지요.)


추신: 할머니 스케치 그림을 사용한다고 미처 허락을 받지 못한 채 사용하게 되었네요. 조카님.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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