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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세상 Oct 02. 2023

어머니와 함께 살기

(2) 엄마가 TV시청하는 법

딸의 건망증을 비웃는 어머니지만 귀가 어두워서 대화를 하려면 큰 소리를 질러야만 한다. 보청기를 해드렸어도 *톡으로 아들. 딸과 통화할 때만 쓰시고 평상시에는 불편하다고 아예 사용하지 않으신다.

그러니 즐기는 TV 시청에 어려움이 많다. 

40년 만에 어머니 곁에서 먹고 자며 며칠 지내다 보니 어머니가 TV를 즐기는 방법이 기가 막히다.


일단 뉴스는 주로 아침에 보신다.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볼륨을 최대로 높이고 보긴 하나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웬만한 주요 사건은 다 아신다. 화면 아래쪽에 나오는 자막을 읽으시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대다수 노인들처럼 정치뉴스에 관심이 많으시다. 자세한 내용까지는 몰라도 이 재명 대표가 구속 위기에 처해있다 거나 단식 중이라는 것은 아신다. 이 재명 대표가 북에 돈을 보내라고 했다 거나 뇌물을 받은 죄로 조사당하고 있다는 정도의 세부정보는 꿰고 계신다. 

나머지는 어머니 나름대로의 기준에 의해 미루어 짐작하거나 판단하신다. 어차피 모두들 정파적으로 편향된 정보를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마당에 기본적인 큰 정보만 아시고 나머지를 스스로 판단하는 어머니가 더 정확한 판단을 할 수도 있겠다 싶다.

여기저기에서 나오는 온갖 정보에 휘둘리는 우리와 달리 자막으로 전달되는 단순 명확한 소식과 당신의 긴 삶의 경험에 의해 판단을 한다. 즉 대한민국에 뇌물 받지 않은 공직자가 얼마나 되겠느냐는 당신의 경험 위에서 유독 이 재명 대표만 계속 뇌물 죄네, 뭐네, 수사한다, 구속한다, 2년이 되도록 시끄러운 것은 다른 속내가 있는 것이라고 결론 내리신다. 이렇게 오래 끄는 것도 정상이 아니니 뭔가 다른 목적이 있는 거라고 간단명료하게 결론을 내린다. 얼마 전 이 재명 대표가 북한 송금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나오는 것을 보시고 한마디 하신다. 

    “설사 북에 돈을 보냈다고 혀도 도지사 시절에, 어 그때는 남. 북이 서로 잘 지낼라고 애쓰던 땐 게… 그때       돈을 좀 보낸 것이, 자기가 먹은 것도 아니고 그대로 북으로 갔을턴디 그게 뭐 뇌물이고 감옥 갈 죄가             되는가? 말도 안 되는 것이여.”


뉴스 끝나고 그만큼 중요하게 꼭 보시는 것은 날씨예보이다.

요즘은 옥상에 빨간 고추와 토란대를 널어 말리느라고 일기 예보를 보시는데 주간 날씨까지 꼼꼼히 보신다. 언제까지 무엇을 말리고 거둬들여야 하는지 대강의 계획을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구순의 나이에도 매일 아파트 뒷밭과 옥상을 오르내리며 채소를 기른다. 참고로 어머니는 삼층 아파트의 삼층에 사신다. 해마다 올해가 마지막이라고 하면서 계속 짓고 있는데 양은 전보다는 확실히 줄었지만 구순 노인이 감당하기엔 버거워 보이는데도 포기하질 않는다.


다음으로 즐겨 보시는 것은 역시 드라마이다. 어머니가 보는 드라마는 요즘 새로 방영하는 것들이 아니다. 이미 오래전에 방영된 것들을 계속 틀어주는 드라마 재방송 채널을 고정시켜 놓고 보신다. 20여 년 전에 방영된 것들이다.

어머니가 샐쪽이 웃으시며 변명처럼 말씀하신다. 

    “내가 왜 옛날 것만 보냐면 말이다, 귀가 안 들리니깨 요즘 새로 나온 것들은 봐도 몰라. 재미가 없어.            옛날  드라마는 그래도 좀 내용이 기억이 나니까 안 들려도 재미있게 볼 수가 있거든.”

그렇구나. 십분 이해가 가기도 하고 요즘 드라마는 설사 귀가 잘 들린다 해도 어머니가 재미있게 보실 만한 내용인지 의심스러워서 골동품 같은 드라마를 재방송해주는 채널이 더없이 고맙게 느껴졌다.

어머니와 되도록 시간을 같이 보내려고 왔으니 드라마도 옆에서 같이 본다. 그런 내게 어머니가 지난 줄거리를 설명해 주신다. 요즘 어머니가 시청하고 있는 드라마는 ‘은희’라는 제목의 현대극과 ‘이산’ ‘주몽’ 등 오래전 사극이다.


‘은희’를 보면서 어머니가 설명해 준 지난 줄거리에 의하면 은희의 어머니는 은희가 취직한 두부공장 사장님의 며느리였다. 그런데 은희를 다른 남자와 사이에서 낳은 것으로 오해한 사장님이 며느리를 쫓아냈다는 것이다. 6.25 전쟁과 그 직후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인데 한국 드라마의 문법대로 출생의 비밀과 원수 집안의 자식들의 사랑 이야기가 얽힌 드라마처럼 보였다. 은희는 사실은 은희 엄마의 친 딸이 아니고 부득이한 사정으로 은희 엄마가 맡아 키운 딸이라고 하였다. 은희와 사랑에 빠지는 성재(사장님의 손자)는 그럼 결국 남매간의 사랑이라는 막장 드라마의 탈을 쓰게 되는데… 나중에 은희가 친 딸이 아닌 것이 밝혀지면서 해피 앤딩으로 가는 건가? 

나도 한국 드라마의 문법에 따라 추측을 해 본다.

그런데 정신 차려서 보다 보니 영 앞뒤가 안 맞았다. 

은희 엄마가 두부공장 사장님의 며느리가 아닌 것이 확실해졌다.

    “엄마, 은희 엄마가 사장님 며느리 아닌데요?”

    "그려? 맞는디…? 그럼 어떤 사이여? 저 사장 할멈이 왜 그렇게 야단을 치고 나가라고 한 거여??”

    ”은희 아버지가 저 사장 회사 일을 하던 사람인데 사장 아들을 죽인 것으로 오해를 받고 쫓겨난 건데요?

    “아 그려…”

어머니가 배시시 웃으며 무릎 한쪽을 세우고 다가앉는다. 비밀 이야기라도 할 태세처럼.

    “사실은 내가 옛날에 이 드라마 볼 때 바빠서 앞부분을 잘 못 봤거든. 어떤 여자가 사정해서 은희 엄마 한      테  은희를 맡겼어. 그거 보고 몇 번 빠지고 그다음에 본 게 할머니한테 막 야단맞고 쫓겨나는 거여. 그래        서 시애미가 오해를 하고 은희 엄마를 쫓아낸 줄 알았지”

    “어휴 참 엄마… 모르는 건 그냥 모른다고 해야지. 하하… 어이가 없네. 엄마 땜에 헷갈렸잖아.”

결론적으로 ‘남매간의 사랑 이야기’는 한국 드라마의 문법에 맞춰 어머니가 만들어 낸 각본이었다. 어쨌든 연역법을 쓰던지 귀납법을 쓰던지 당신이 보지 못한 공백을 메꿔 나가면서 대사는 듣지 못하지만 화면에 나타난 인물들의 연기만으로 어머니는 자신만의 드라마를 창조하고 계셨다.


다음 드라마는 <주몽>이다.

   “내가 이 주몽이를 몇 번을 봤는지 아냐? 근데 저 주몽이가 어쩌다 강물에 빠져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되았는     지를 한 번도 못 봤어. 오늘 그걸 알게 되겠구만.”

만족스런 웃음을 띄우며 화면에 집중하신다. 


부여군이 진번, 임둔군에 잡혀간 고조선 유민을 해방시키기 위해 한사군과 전투를 벌인다. 주몽을 선봉장으로 한 부여군은 화공술로 진번, 임둔, 현토군을 격파하고 궁지에 몰린 임둔군, 현토군 태수는 퇴각한다. 주몽은 소수의 군사만을 이끌고 도망치는 임둔군 성주를 쫓는다. 그런데 부여군 왕자 대수의 부하 하나가 현토군 태수의 첩자였다. 그 첩자의 정보에 의해 주몽이 본진을 벗어나 임둔군 성주를 쫒는다는 것을 알게 된 현토군 태수가 군대를 이끌고 가서 임둔군 성주를 죽이고 돌아오는 주몽 무리를 급습한다는 내용이다. 

어머니가 원래 예상했던 스토리와는 많이 달랐다. 어머니는 대수와 그 형제들이 숨어 있다가 주몽을 해코지 했을 거라고 짐작하셨다. 대수의 부하들에 의해 주몽이 공격당하는 장면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으나 그 장면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간신히 혼자 살아 돌아온 주몽의 부하가 현토 태수의 급습으로 같이 있던 군사들이 모두 당하고 주몽은 실종되었다고 보고한다. 당신의 예상이 빗나갔지만 어머니는 포기하지 않는다.

    “저 대수 왕자랑 한나라당 대장이 한패여. 그 놈들이 주몽을 죽이려고 꾀어낸 거지.”

    “아니, 엄마, 대수 왕자는 아니고 그냥 현토 태수가 주몽이 밖으로 나왔다는 걸 알고 쫓아간 거예요.”

    “아니라니께. 저 놈(대수 왕자의 부관, 첩자)이 대수 부하자녀. 대수가 짜고 부하를 한나라당 대장한테 보낸 거여.”(어머니에게 한사군, 한나라 군은 모두 한나라당이다.)

    “아 네… 대수 왕자의 부하가 맞긴 한데… 대수 왕자가 보낸 건 아니고 그냥 첩자인 것 같은데… 하…           참…”

대수 왕자가 부여국의 계승권을 놓고 주몽과 대결하면서, 현토 태수와 비밀스레 협정을 맺는 장면도 나오니 어머니가 그렇게 오해를 하는 게 아주 멀리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여러 번에 걸쳐 반복해서 보면서 장면과 장면을 연결시켜 나름 추론을 하시는데 가끔은 이처럼 음모론의 확대도 감행하신다. 그렇지 않다고 자세히 다시 설명을 한들, 대수 왕자의 극에서의 역할이 크게 달라지지 않으니 나도 그만 웃으며 지고 만다.

    

    “주몽은 돈이 많이 들었을 거여.”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내가 빤히 바라 보니 어머니가 말하신다.

    “주몽은 나올 때마다 옷이 달라져. 빨간색, 보라색, 비단옷이 여러 벌이여. 찍을 때마다 저렇게 옷을 갈아입히려면 돈이 많이 안 들겄어? 대수는 맨날 저 똑같은 옷인디?”

    “아, 그래요? 하하…”

주인공과 부주인공의 대우의 차이가 어머니 눈에 불합리하게 들어온 모양이다.

하긴 부여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인데 주인공이나 군사들의 복장이 시대에 맞게 고증이 되었나 싶은 측면이 있었다. 더구나 주인공에게 집중된 의상쇼의 불공평이 구순의 노인에게도 눈에 띌 정도라면 조금 더 섬세하고 사실적인 연출이 필요한 것 아닌가 싶었다.


아침에 뉴스 끝에 프로야구 하이라이트가 잠깐 나왔다.

    “야야… 저 공을 쳐서 공이 날아갔는디 공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 받으면 먼저 나가 있다 뛴 사람도 잡히는       거쟈?”

내가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엄마가 그걸 어떻게 아셔?”

    “잉, 자꾸 보다 보니께 그런 것 같은디 긴가 민가 하긴 혔지.”

    “야구도 보셔요? 재미있어요?”

    “잉, 야구허고 축구는 보재. 한국사람이 허는 것만 봐. 한국 사람허고 외국사람이 허는 것 보지. 외국사람         끼리 허는 건 안 보고. 한국사람 중에 잘해서 외국에 팔려 가서 외국사람 틈에 혼자 껴서 열심히 허는 것         도 보고…”

   “아 그 손흥민이 하는 경기 봤어요?”

씩 웃으시며 말한다. 

   “잉… 재미는 오로지 축구여.”


(어머니가 축구와 손흥민을 알게 된 것은 매주 주말이면 어머니 옆에서 하룻 밤을 지내고 가는 큰 아들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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