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달래지 못했다
고등학생이 된 내 마음속에 남은 건 증오와 외로움뿐이었다. 부모님과의 관계는 이미 한참 틀어져 있었다. 성적이 바닥을 치기 시작했다. 책 따위 꼴도 보기 싫었다. 공부를 때려치운 건 내가 어머니에게 할 수 있는 일종의 시위였다. 나는 당신 뜻대로 살아갈 생각이 없다는 저항이었다. 나는 내가 가야 할 길이 어딘지 알지 못했다. 하고 싶은 일도,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열정의 순간도 없었다. 싸우고 도망치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학교에서는 무시받고 따돌림을 당했다. 총명한 눈빛을 가지고 풍부한 가능성을 품었던 아이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다. 하루하루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바닥이 없는 물에 가라앉고 있는 느낌이었다. 미래를 준비하고 꿈을 키워갈 시기의 나는 심리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쳐야 했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살기 위해 도망칠 곳도, 마음 놓고 쉴 곳도 없었다. 입학한 이후 기숙사 생활을 했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허구한 날 반 아이들과 싸우며 문제를 일으켰다. 정상적인 대인관계 능력이 그따위 환경에서 제대로 배양되었을 리 없었다.
학교 선생님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하며 그냥 엇나가는 불량학생 정도로 생각했다. 어머니와의 갈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학부모 상담을 할 때마다 나에 대한 낙인은 짙어졌다. 그럴 만도 했다. 선생님들과 다른 사람들 앞에서 어머니는 눈물을 글썽이며 나를 걱정하고 사랑한다고 말했다. 가증스러웠다. 만에 하나 어머니의 말들 안에 진심이 있을지언정 그게 나에게 저지른 행동들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는 없었다. 나는 당신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려고 태어난 아이가 아니었다. 어머니는 바깥에서는 친절하고 현명하며 인자한 부모의 모습을 연기했다. 악마 같은 모습은 오직 나만이 겪었을 뿐이다. 견디지 못한 내가 대들며 저항하는 날에는 경찰에 전화를 해 아들이 날 죽이려 든다며 악을 썼다.
집과 학교, 둘 다 나에게는 다른 형태의 지옥일 뿐이었다. 악순환의 반복. 자해를 하는 날이 늘었다. 열일곱의 어느 날이었다. 학교에서 돌아가는 길에 아버지가 나를 데리러 오셨다. 차를 탄 후 휴대폰 사용시간이라는 별 것도 아닌 이유로 아버지와 크게 다투었다. 서럽고 분한 마음에 차 문을 세게 닫았다. 뒤이어 윽박지르는 소리가 들여왔다. “쌍놈의 자식. 당장 때려죽여버릴 거다. 집에 처박혀 있어. 올라가서 보자. 싸가지 없는 새끼.” 욕설이 들려왔다. 아버지는 핏대가 선 채로, 벌건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순수한 분노였다. 공포와 환멸이 몰려왔다. 다시 한번 마음속에 검고 거대한 파도가 들이닥쳐 내 안을 헤집어놓는 것 같았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그때 일에 대해 아버지에게 사과를 들었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다. 그날 지울 수 없는 상처의 자국이 가슴 깊이 새겨졌고 나는 더 이상 가족을 믿지 않게 되었다.
집에 가방을 내려놓고 후드집업 하나를 걸치고 무작정 도망쳤다. 뒤에서는 어딜 나가냐는 어머니의 고함이 들렸지만, 더 이상 누가 뭐라고 씨부리던 알 바가 아니었다. 돌아버릴 것 같았다. 당장이라도 벗어나지 않으면 내가 펑 하고 터져 몸의 조각이 세상에 피얼룩과 함께 흩뿌려질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휴대폰과 현금 1000원이 내가 가지고 있었던 전부였다. 처음에는 아버지가 쫓아올까 두려워 도망치듯 달렸다. 얼마나 달렸을까. 조금 지쳐서 걸었다. 답답하고 서러운 마음에 다시 달렸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고 걷기를 반복했다. 날씨는 추웠고, 몸에서 힘이 점점 빠져나갔다. 입술이 파랗게 질려 벌벌 떨렸다.
졸업한 중학교를 지나 시내가 보였다. 계속 도망쳐도 나를 숨겨줄 곳은 없었다. 피시방에서 50분을 때우고는 다시 걸었다. 내가 가출했다는 소식이 학교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선생님께 부탁을 받았는지, 별로 친하지도 않은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대충 답장하고는 유심을 빼버렸다. 그렇게 10킬로는 걸었던 것 같았다. 육교가 보였다. 밝은 밤거리. 빠르게 지나가는 차들이 보였다. 한 줄기 빛조차 없는 어둠에 갇힌 느낌이었다. 아무도 나를 구하러 오지 않는다. 그런 생각을 하며, 세상이 무너진 눈을 하고는 육교에 올라갔다.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아이는, 그날 스스로를 죽여버리고 싶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