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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Aug 18. 2024

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새 (3)

도망칠 곳은 없었다

  몇 번의 계절이 흐르고 내가 처음 교복을 맞추게 될 즈음이었을까. 어머니의 정신과 영혼은 점점 불안정해졌다. 그리고 온 가족이 이에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아버지를 향한 의부증과 재정적 갈등으로 다툼이 시작되었다. 동시에 나를 대하는 태도는 학대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어울리는 사람들과 이성친구의 관계를 감시하고 내 일상의 모든 부분을 통제했다. 건강염려증과 미신은 상황을 악화시켰다. 어머니는 끔찍하게 먹기 싫은 음식과 다단계에서 구해온 영양제들을 억지로 먹였다. 몰래 구토를 하거나 뱉기도 했다. 들키면 다시 식탁으로 끌려와야 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나를 향한 인신공격이 이어졌다. “니가 왜 그렇게 삐쩍 말랐는지 알아? 주는 대로 안 처먹으니까 그렇지. 한심한 새끼. 공부라도 안 하면 네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냐.” 억울했다.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니 잠시라도 나에게 내 삶을 결정할 권리를 달라고 요구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리고 약한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란 때에 따라 얼마나 불합리하고 일방적으로 뒤틀릴 수 있는 것인가.


  바쁜 자신을 대신해 나를 돌봐주며 정이 들었던 선생님들과의 관계는 어머니가 나를 휘두를 수 있는 무기가 되었다. 말을 듣지 않으면 그분들을 다시는 못 보게 만들겠다며 협박을 했다. 생판 남, 그것도 이해관계로 얽힌 사교육 선생이 뭐 그리 중요한가 싶겠지만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나에게 그 협박은 치명적이었다. 이제는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그분들에게 받는 티끌만 한 순수한 관심과 애정이라도 내게는 간절했다.


  내 인격은 마치 부실공사로 지어진 건물과도 같았다. 지겹도록 쓰라린 학대의 자국은 습관으로 남게 되었다. 먹는 것 자체를 싫어하게 되었다. 밥을 먹다 보면 옆에서 누군가 억지로 입에 음식을 욱여넣는 기분이 들며 식욕이 떨어졌다. 덩치는 비정상적으로 작았다. 성장기의 아이가 먹는 걸 그리도 싫어했으니 제대로 자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성격은 점점 망가졌다. 어머니의 불안하며 폭력적인 모습에 그대로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터이다. 주변 친구들과 자주 싸우며, 또래 관계도 불안정하게 변해갔다. 텅 빈 자존감으로 인해 조금만 배신당한다는 느낌을 받아도 불같이 화를 내며 공격성을 표출했다. 모든 순간에 대한 확신을 잃었다. 이미 몸과 마음의 통제권은 내 손아귀를 한참 벗어나 있었다.


   어머니는 나의 자존감이 뿌리를 내릴 기회를 주지 않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욕설과 폭언, 비난이 쏟아졌다. 인자한 당신의 미소와 악마 같은 모습이 하루에도 몇 차례씩 반복되었다. 그즈음부터 밤에 잠을 잘 자지 못했다. 몰래 일어나 텔레비전을 보거나 밖으로 나갔다. 그게 내가 자유를 느끼는 유일한 방식이었다. 아직도 그 습관들은 몸에 배어있다. 밤이 되면 끔찍한 불안과 이유 없는 분노에 휩싸여 답답한 마음에 밖으로 뛰쳐나간다. 정처 없이 길거리를 방황하며 날뛰는 기억을 진정시킨다. 그러고도 한참을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악몽에 신음소리를 뱉어대며 깨어난 적이 숱하다. 트라우마란 그런 것이다. 어린 나의 시간이었을지언정 어른이 되어서도 나는 그 수많은 날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상황은 날이 갈수록 끔찍해졌다. 물건을 집어던지며 나를 협박하는 어머니. 대들기라도 하는 날에는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아들이 날 죽이려 한다며 난동을 피웠고, 나는 한순간에 패륜아가 되었다. 어머니가 손을 대기 시작했다. 체벌의 형태가 아니었다. 나를 밀치고 할퀴었다. 자신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마음의 상처를 나에게 쏟아내었다. 아마 당신은 내가 당신의 삶을 구원해 주는 존재이기를 소망했던 것이 아닐까. 그건 나에게 무거운 짐이고, 동시에 저주였다. 선택한 적 없는 삶이었고 나에게는 어머니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야 할 의무가 없었다. 불안정하고 공격적인 어머니의 모습은 나에게 그대로 스며들었다. 갈수록 충동을 조절하기 힘들었다. 벽을 부수고 물건을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그게 내가 배운 유일한 화를 내는 방법이었다.


  극단적인 모습은 하루가 다르게 심해졌다. 나를 쓰다듬고 끌어안으며 소중하게 대하다가도, 쓰레기 같고 쓸모없는 아이로 매도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조마조마한 마음에 하루도 편할 수 없었다. 어머니가 조수석에 나를 태우고 같이 죽어버리자며 미친 듯이 차의 속도를 올리던 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야, 그냥 이따위로 살 바에 같이 죽자. 나도 지친다.” 어머니는 고함을 지르며 눈물과 함께 액셀을 밟았다. 속도계는 200을 넘었고 엔진소리가 울렸다. 사고라도 났다면 틀림없이 그대로 온 몸이 조각나 죽었을 테다. 그러나 내 안에서는 무서움을 분노가 압도하기 시작했다. 나를 세상에 데려온 사람이 나를 부정하고 미워한다. 그 혼란이 내 영혼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어머니라는 거울에 비친 나는 천사이며 악마였고, 어떨 때는 보석이지만 어떨 때는 굴러다니는 돌만도 못한 존재였다. 당신은 내 세상의 전부였으며 그 세상에 평화는 없었다. 나는 점점 나를 잃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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