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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Aug 04. 2024

기어코 태어난 아이 (1)

탄생은 축복이었을까

  2002년 10월 5일. 가을의 어느 날에 한 아이는 태어났다. 노산과 산모의 질병으로 인한 유산의 위험성을 극복한 아이였다. 강 씨 집안의 두 번째 아들이자 우리 집의 막내. 아이의 어머니는 그제야 시댁의 아들 없는 집이라는 손가락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내 삶의 시작. 거기에는 처음부터 어머니의 욕망이 끼어들어 있었다.


  가난한 집에서 차별을 이겨내고 의대에 합격한 아버지. 역시 딸이라는 이유로 외삼촌들에 비해 대우를 받지 못했었던 어머니. 두 분은 학생 시절에 만났다고 한다. 아버지가 끓여주신 너구리가 너무 맛있어서 반했다나. 뭐 어쨌든 그건 어머니의 첫 연애였고, 두 분은 결혼하게 되었다.


  나보다 11살 일찍 태어난 누나. 당시에는 경제적으로도 그다지 여유롭지 못했으며, 아버지는 훨씬 엄격하고 무섭게 누나를 키웠다고 한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탓에 나는 그 시절의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잘 알지 못한다. 다만 기억나는 몇몇 장면에서 누나는 부모님에게도, 본인 스스로에게도 큰 기대에 짓눌려있었던 것 같았다. 알만도 하다. 본인들도 힘들고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소위 말하는 사회적 성공을 이루었으니, 자식에게 거는 기대도 그만한 것이었을 테다.


  부모님은 고학력자인 동시에 한창 커리어를 끌어올리는 어른이었다. 정신과 전문의였던 아버지는 내가 태어난 전후로 본격적으로 병원을 키우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석사 학위를 수료하고 많은 강의를 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머니가 주로 강의하시는 분야는 육아와 심리학이었다. 글쎄, 날 그렇게 잘 키우신 것 같지는 않은데. 뭐 어쨌든 두 분은 그렇게 커리어의 전성기를 달리고 있었다. 그 사이 나는 다른 이들의 손에 키워져야만 했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어떤 아주머니가 아이를 도맡아 키웠다. 적어도 어린 나에게는 그 사람이 가족이고 보호자이며, 내가 많은 시간 동안 지냈던 그 집이 세상이었으리라.


  나는 몸이 약했다고 한다. 쉽게 토하는 체질이어서 분유를 7번이나 바꿨다.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나의 영아기를 책임져야 했던 누나는 어린 시절의 귀여웠던 내 이야기를 아직도 종종 하곤 한다. 이제는 스물셋에 수염이 잔뜩 난 성인 남성이 되었지만, 가끔 누나가 나를 대하는 걸 보면 여전히 누나 눈에 나는 어린애인가 싶다.


  나의 첫 어린 시절 기억은 작은 집이다. 한 네다섯 살쯤 되었으려나. 식사 대신 끓여준 컵라면을 먹으며 게임을 하는 어떤 형의 모습을 구경한다. 그런 환경에 어머니는 나를 방치했다. 아이는 엄마가 필요했다. 어른이 된 지금에야 머리로는 이해한다지만, 어린 나에게 어른의 사정을 이해할 의무는 없었다. 불규칙적으로 찾아오는 어머니와 자주 바뀌는 보호자. 주말이 되면 고된 일로 항상 피곤해했던 아버지와 수험생활을 하느라 바빴던 누나. 그 아이는 외로웠을 터이다. 아이의 이야기는 시작부터 금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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