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피우기도 전에 시들다
천재는 아닐지언정 범재. 그게 나였다. 하늘이 내렸다기엔 약간 부족했지만, 아이는 분명히 재능을 품고 있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읽고 쓰고 말하는 데에 특출 난 모습을 보였다. 유치원 때부터 고등서적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즈음에는 이미 십 대 중반 수준의 어휘와 문장을 구사했다. 그 탓에 또래 아이들과 어린애다운 대화를 하지 못하고 답답해할 때도 많았다. 월반 제안을 받았지만 내가 내 나이의 또래와 동떨어진 삶을 사는 것을 걱정한 어머니는 거절하셨다. 그러나 아이의 마음은 불안정한 시작점에 있었다. 자주 바뀌는 보호자. 안정적이지 못한 애착관계. 어린 나의 어머니는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채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다.
간섭과 통제가 시작되었다. 나에게 가족보다 더 가족 같았던 아주머니와는 더 이상 만날 수 없었다. 갑작스러운 관심과 통제는 전혀 사랑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먹을 것. 친구 관계. 공부. 취미. 옷. 생활습관. 모든 것이 통제당하기 시작했다. 친구가 생기면 어머니는 친구의 가정환경, 집안사정 등을 낱낱이 조사해 나에게 놀아도 되는 친구와 그렇지 않은 친구를 구분시켰다. 간식거리는 절대 용납되지 않았다. 정해준 음식들을 억지로 먹어야 했다. 어린 내가 도망치는 방법은 도망치고 거짓말하는 것이었다. 그럴수록 통제와 감시는 심해졌다. 따뜻함과 사랑이 가득해야 할 마음의 창고에 분노와 원망, 억압된 자아가 내뱉는 억울함이 쌓였다. 나는 나쁜 아이가 되고 있었다.
동시에 나는 잘난 아이가 되어야 했다. 사랑받지 못한 어린 마음을 가리려 잘난 척을 하고 가시를 둘렀다. 그러나 내면은 이미 질투와 애정결핍으로 가득했다. 사랑받지 못하는 것이 두렵고 불안했다. 매일 숨통을 조여 오는 어머니와 집이 싫었다. 바쁜 아버지는 평일에는 보기도 힘들었고, 수험생인 누나는 도통 집에 오지 않았다. 내 세상은 좁아지고 있었다. 새장에 갇힌 관상용 조류가 된 기분이었다. 나는 항상 겁에 질려 있었다. 미움받고 싶지 않았고, 버려지는 것이 두려웠다. 충분히 사랑받아 불안에 떨지 않을 권리가 모든 어린아이들에게 있다는 사실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빈약한 마음을 깊숙이 숨긴 아이는 점점 자랐다. 어머니의 통제와 손에 집히는 대로 읽어대던 책이 전부였던 어린 내가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 동굴에서 그림자만을 보던 그 아이가 세상으로 나가고 싶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건 갈등을 의미했다. 자라나는 아이와 부모 간의 충돌은 당연한 것이지만, 나의 경우 그 정도가 아예 달랐다. 어머니는 자신이 생각하는 아들의 모습을 ‘만들어내고’ 싶어 했다. 내가 자라온 과정, 그리고 어머니가 나를 대한 방식은 일반적이지 않았으며 명백하게 나에게 악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어린 나는 혼나지 않는 것에 급급해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아이에게는 부모가 세상의 전부이다. 그리고 어머니가 내게 주신 세상은 완전히 비틀렸다. 정서적 학대가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