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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Sep 04. 2024

절망과 사랑, 조각난 모습

마지막은 예쁜 단어일까

  

  한 순간에 전부가 무너지는 느낌. 내가 해온 모든 일들이, 내가 견디고 만들어온 시간들이 무의미해지는 것 같은 시간. 좌절은 마치 내 자존심에 작은 금이라도 생기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단숨에 작은 마음의 틈을 비집고 들어와 내 인격을 깨부순다. 허무. 후회. 무의미한 가정. 두려움과 막막함.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쏟아진다. 나는 그 어떤 삶을 살아간다.


  책임이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제 어떻게 살아갈 생각인지. 이것저것 그럴듯한 답변을 늘어놓는다. 책임은, 침묵한다. 질문을 던질 뿐.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방황의 시간. 이것마저도 가치 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답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책임의 질문은 아프게 가슴에 박혀 도저히 사라지지를 않는다. 속이 답답하다. 해소하지 못하고 묵혀둔 감정의 찌꺼기들이 발끝에서부터 나를 묻어간다.


  가슴이 벅차오르고 열정으로 가득 차는 순간의 마지막이 언제였더라. 그런 뜨거운 종류는 아니더라도 나는 바닥에 쓸려가며 몸을 끌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 에로스의 사랑이 아닐지라도. 나를 본다. 열 두 조각으로 깨져버린 거울 속 제멋대로인 나는 사랑을 하고 있다. 아름답고 빛나지 못하며 스스로를 내던지는 사랑을 하고 있다.


  절망을 수도 없이 겪어 마지막에 닿아서야 뒤를 돌아본다. 무엇이 가장 후회되려나. 아마 당신의 탄생을 축복한다고 전하지 못한 채 길가에 버려진 마음이 가장 아쉬울 것 같다. 용기 있고 대범한 사람은 내 인간 군상이 아닌 듯하다. 나를 밀어낼 당신의 모습이 아직도 두려운가 보다. 알고 있으려나, 사실 한여름에 나의 사람들은 주황색 옷을 입지 않는다. 그러니 나는 사랑하기 위해서 산다는, 부끄러운 말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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