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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청지기 Sep 17. 2023

95년의 아버지 인생

가족이야기



망백(望百)을 훌쩍 넘긴 아버지는 올해 95번째 생신을 맞으셨다. 95번째 생신의 의미는 우리들이 매년 맞는 생일과는 남다를 것이다. 해마다 크게 잔치를 해도 부족함이 없을 귀한 장수를 축하하는 생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갑연을 성대하게 치른 이후에 아버지의 생신을 맞아 특별한 행사를 치른 기억이 나에게 없다. 아들과 며느리가 4명이나 있지만 외국에 2명이 나가 있고 2명은 서울에 거주하며 바쁘게 살다 보니 매년 아버지의 생신을 챙기는 것은 가까이 사는 딸과 사위의 몫이었다.


아버지는 6남매 중에 차남이셨다.  하지만 큰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작은 아버지는 6.25 때 전사 하셨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고모들까지 함께 돌봐야 했다.  나의 어린 시절에 한 집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는 물론 고모들과 사촌들까지 같이 살았던 기억이 있다.  어머니가 시집와보니 막내 고모가 어려서 본인이 업어서 키워야 했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군무원으로 근무하시다가 이후에 철공소를 운영하셨다. 철공소는 직원 1명과 함께 밀링 선반 1대를 둔 작은 공장이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을 리가 없었다. 그 많은 식솔들을 어머니는 아버지가 가져다주는 적은 돈으로 어떻게든 먹여 살리고 아이들 공부를 시켜야 했다.


아버지께서 95년을 살아오면서 많은 일들을 겪으셨다. 넷째 아들인 내가 어릴 때 질병으로 인해 장애를 갖게 되어 평생 걱정을 안고 사셨고, 힘든 시절 잘 보내고 이제 살만할 때 여동생은  가족들을 남겨두고 하늘나라로 먼저 떠났다. 뿐만 아니라 늦게 얻은 막내아들을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하늘나라로 먼저 보내야 하는 아픔도 겪었다


아버지는 평생 교회와 일 외에는 관심을 가져 본 것이 없었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날 없다고 크고 작은 집 안의 일들로 인해 힘들어하셨고, 경제적 어려움과 고부간의 갈등을 지켜보며 자신 있는 목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사셨다.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였던 아버지는 시부모와 시누이를 모시고 사는 어머니에게 늘 미안해하면서도 다정한 말 한마디 못하는 분이셨다.


아버지는 오래전 가장의 의무에서 자유로워지셨다. 함께 해로한 어머니와 행복한 노후를 지내시기만 하면 되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쉽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과거에 겪었던 상처들이 더욱 뚜렷하게 생각나고 무심했던 아버지의 성품과 아직도 변하지 않는 고집들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고 한다


연로하신 두 분이 함께 지내다 보니, 이제 88세가 되시는 어머니가 집안 일과 식사를 챙기는 것이 오래전부터 많이 힘들어지셨다. 요양보호사님이 오셔서 장도 봐주시고 가끔 반찬도 해 주시는 등 도움을 주고 계시지만 오롯이 하루 세끼 상차림과 설거지, 청소 등의 일을 두 분이 서로 감당하기에 무척이나 힘들었다. 뿐만 아니라 몇 년 전 인근에 거주하는 막내딸 집에서 2년간 함께 살다가 다시 분가한 이후로 자녀들과 함께 사는 것은 더 힘들어하신다.


지금까지 아버지는 바깥일만 하시고 부엌일이나 빨래, 청소 등 집안일을 거의 하지 않으셨다. 그동안 어머니가 그 많은 가족들을 위해 혼자 도맡아 해 오셨기에 아버지는 이것이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셨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제 어머니가 나이가 들고 기력이 쇠하여 보행도 불편하고 앉고 일어서는 것이 힘들어지게 되자 모든 것에서 더욱 섭섭함을 느끼시게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어머니의 목소리가 커지고 서운함이 잔뜩 묻어난 폭풍 잔소리가 아버지에게는 익숙한 일상이 되었다. 아버지는 이전부터 잘 참으시다가도 ‘욱’ 하는 성격이 있다. 어머니의 잔소리를 잘 참고 듣다가도 가끔은 본인이 화를 내고 어머니와 일정 기간 냉전을 치르기도 한다. 하지만 뒤늦게 어머니의 마음을 읽으려고 무진장 애쓰시는 중이다. 이번에 부모님 댁을 방문했더니 어머니께서 ‘니 아버지가 설거지를 해 주더라’라고 말씀하셨다.


지금까지 아버지는 집안일에 너무 무심하셨다. 젊은 시절 어머니의 힘들어했던 마음을 많이 보듬어 주지도 못하셨고, 집안일은 모두 어머니 몫으로 여기고 사신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물론 아버지가 부엌에 들어가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으신 할머니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과거의 삶이 아버지 노년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자녀들은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와 대화를 많이 한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다. 아버지는 자녀들과의 대화도 많지 않다. 특히 귀가 잘 들리시지 않게 되면서부터 전화 통화도 쉽지 않아 더욱 그랬는지도 모른다. 함께 사는 어머니로부터는 늘 좋은 이야기를 듣지 못하고 과거에 쌓였던 것이 일상에서 표출되며 일방적인 대화로 끝나기 일쑤였다. 대화가 단절된 아버지는 많이 외로우실 것 같다.


부모님의 갈등은 아들로서 안타까움이 크다. 나는 아침 기도 시간에 부모님을 위한 기도 중에 “함께 하는 동안 두 분이 사랑으로 섬기게 하시고 다툼이 없게 하소서.”라고 기도한다. 남은 여생 서로 사랑하며 행복했으면 하는 것이 나의 간절한 바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작은 희망을 보게 되었다. 매일 티격태격하면서도 어머니는 아버지의 건강을 챙기고 하나라도 더 맛있는 거 해 드리고 싶어 하셨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지난날 고생한 것 아시고 서툴지만 설거지도 하고 집안 일도 거들려고 애쓰고 있었다.


휴가를 맞아 부모님 댁에 온 나는 늦잠을 잤다. 거실에서 두 분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가 보니 두 분이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부모님 곁으로 가서 가정예배에 참석했다. 아버지가 태블릿으로 섬기는 교회 목사님의 가정예배 설교 영상을 유튜브를 통해 들었다.  설교 영상이 끝난 후 성경 2장을 어머니와 함께 번갈아 낭독하셨다. 두 분은 노안이라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아 모두 안경을 쓰고 큰 글씨 성경을 읽으셨다. 아버지는 안경을 써도 잘 보이지 않으신지 돋보기를 들고 글씨를 따라가며 또박또박 읽으셨다. 성경낭독이 끝나면 찬양을 부르셨는데 음정, 박자를 모두 무시하고 책 읽듯이 노래하셨다.


나는 두 분의 성경낭독과 찬양에서 가슴 뭉클함을 느꼈다. 아침마다 예배를 드리며 각지에 흩어져 사는 자녀들과 며느리, 손자, 손녀들을 위해 평생을 기도해 오신 두 분의 모습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갈등과 다툼, 서운함, 원망 등이 교차하는 가운데서도 신앙 안에서 하나 됨을 잃지 않으시고 평생을 지키며 살아오신 두 분의 삶이 나에게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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