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김화진 작가의 '나주에 대하여' 책을 읽다가 너무 가슴에 와닿는 문구를 발견했다. 사실 와닿다기 보다는 이 문구에서 모두에게, 심지어 나조차에게 숨겨왔던 내 모습을 들킨 것 같은 부끄러움이 먼저 다가왔다
" 이를테면 솔지의 요리가 그랬다.
솔지는 그럴 듯한 요리를 잘했는데 수언은 솔지의 메뉴 선택에서 항상 그런 태도를 느꼈다.
카나페나 뇨끼나 뱅쇼 같은 것. 진짜 좋아하는 건 아니고 멋진 걸 좋아하고 싶어서 먹는 듯한 것.
입에서 설은 맛이었지만 그렇다고 아예 맛이 없지는 않았다. 수언은 그런 건 너나 나에게 안 어울린다고 그만 됐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막상 솔지가 차려주면 잘 먹었다.
그럴듯하게 살고 싶구나. 막 걸쳐서 몸에 설은 것이 솔지 그 자체인 것 같았다.
아직 이루지 못했다는 점에서, 지향하지만 익지는 못했다는 점에서 허세로 보였다. "
카나페나 뇨끼나 뱅쇼 같은 것.
이런 음식들은 정말이지 그럴 듯한 음식들이다.
파스타나 제육볶음처럼 어느 식당에서나 자주 접하지는 못하는,
보통의 음식들보다 가격이 조금 더 나가는,
주로 메뉴판의 두 번째 페이지 또는 첫 번째 장의 맨 아랫줄에 자리잡고 있는,
메뉴판에서 잠깐 눈길을 받지만 결국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 크림 파스타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카나페나 뇨끼나 뱅쇼 같은 것은 정말이지 그럴 듯한 음식들이다.
그리고 나는 이런 음식들을 좋아하려고 노력해본다.
이런 음식을 시킬 수 있는 멋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본다.
그렇다고 이 음식들이 정말 맛이 없냐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그렇지도 않다. 적당히 맛이 있는 음식들이다.
그리고 적당히는 이 음식들을 좋아해보려는 내 노력을 더욱 뻘쭘하게 만든다.
카페에서 아주 쓴 에스프레소를 먹을 때는 쓰지 않은 척 연기를 하면 됐다.
이건 내 자신을 속이는 분명한 연기이다.
하지만 뱅쇼는 처음에는 애매하게 계피 쓴 맛이 나면서 뒷맛은 레몬의 상큼함과 설탕의 달달함이 조금씩 올라온다. 그리고 이 맛은 내 연기를 더욱 어색하게 만들어준다.
맛이 있는 척을 억지로 하기에는 생각보다 마음에 들었고,
그렇다고 정말 맛있다고 하기에는 쌉쌀한 맛이 혀를 오래 맴도는..
애매한 음식이다. 차라리 아주 맛이라도 없지...
나는 그렇게 어색한 연기를 끝마치고 잔을 내려놓는다.
나는 인상주의 화풍의 창시자 클로드 모네보다 그의 그림자에 가려졌던 알프레드 시슬레의 그림을 좋아한다.
새로 나온 앨범의 타이틀곡 보다 좋아요 수가 훨씬 적은 수록곡을 먼저 들어본다.
소주, 맥주 보다 고급스러운 레드와인을 좋아해보려고 한다.
CGV, 메가박스 보다 사람이 적은 독립 영화관에 발길을 돌려본다.
생텍쥐베리의 대표작 어린왕자 보다 그가 쓴 두 번째 소설 야간비행을 더 먼저 읽어본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사람이 없는
한적한 동네 골목 속 카페에 들어간다.
한 손에는 야간비행 책이 들려있고,
귀에는 가장 좋아하는 앨범의 수록곡이 반복재생 되고있다.
메뉴판을 쓱 훑어보고 메뉴를 주문한다.
아메리카노보다 4000원 더 비싼 벵쇼.
나는 조심히 벵쇼를 주문한다.
나는 오늘도 이 4000원으로
뱅쇼를 먹는
그럴 듯한 사람이 되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