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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나 Nov 13. 2024

지나간 사랑은 존재감을 표한다

그 언제인가의 감정

외출 준비를 하던 도중이었다. 뜬금없이 방탈출카페에서 수신동의안내 메시지가 왔다. 내가 이런 걸 동의한 적이 있었나 싶어 들어가 보니 2년 전에 탈출 기념으로 구남자친구와 나란히 찍었던 사진이 남아있었다. 신기하게도 사진을 보자마자 그날의 추억이 떠올랐다.


모든 사랑은 흔적을 남긴다. 분명 다 지웠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아무것도 아닌 날에 불쑥 나타나 지나간 사랑은 존재감을 표한다.


사람을 잊으려고 할 때는 그와 관련된 모든 것들은 같이 없애버리려는 습관이 있다. 카톡을 차단한다던가, 인스타 친구를 삭제한다던가, 관련한 모든 추억이 깃든 사진과 물건을 버리고 그대로 봉인하는 것이 나의 이별의 애도 방식이다. 헤어질 때마다 관계에 대한 상실감이 커 몇 번이고 울곤 했지만 추억을 정리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물론 여태까지는 말이다.


애도를 하려고 물건을 모으다가 새삼 정리할 물건이 몇 가지 없다는 걸 깨달았다. 걸어온 추억들을 곱씹어보며 사진을 정리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책장을 바라보는데 지나온 사랑이 그곳에 있었다. 어느 기점으로 그의 취향이 내 취향이 되어 변해버린 모습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따라서 산 책, 그를 생각하면서 코멘트에 코멘트를 달았던 볼펜자국으로 더러워진 책. 버릴 수도 펼 수도 없어 그냥 자리만 차지하게 두었다.


내 마음이 너무 힘들 때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고통스러울 때는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자. 자연스레 시간이 해결해 주는 일도 있는 거니까. 그냥 모른 척 가슴에 묻고 넘어갈래. 마주할 용기가 생길 때까지 그냥 회피할래. 내가 나를 지킬 수만 있다면 비겁하다고 불안정하다고 욕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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