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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정한 교사가 되고 싶었다

모든 이야기의 시작

by 서이안

학창 시절, 가난은 교실 한구석을 유난히 멀게 만들었다.

무료 급식을 신청할 사람을 묻는 선생님의 질문이 끝나고, 나는 끝내 손을 들지 못했다. 친구들 앞에서 가난을 고백할 용기가 없었다. 대신 나는 수업이 끝난 뒤 교무실을 찾아가, "실수로 손을 못 들었어요"라는 작은 거짓말과 함께 신청서를 내밀었다.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부를까 조마조마했던 그때의 공기를,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뚱뚱했던 내 별명은 '코끼리'였다. 운동을 못해도 덩치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팀의 방패가 되어야 했다. 놀림은 일상이었고, 시험 점수는 내 존재를 증명할 유일한 방패였다.


가장 괴로웠던 건 체육 시간이었다. 무력하게 서 있기만 했던 어느 중학교 3학년의 오후, 체육 선생님이 나를 칭찬하셨다.

"이안이는 덩치가 커도 성실하게 체육 시간에 참여해. 그런 점은 다른 친구들도 본받아야 해."


모두가 듣는 앞에서, 선생님은 나의 존재를 처음으로 긍정해 주셨다. 그 칭찬 한마디가, 얼어붙었던 내 마음을 녹였다.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그 순간, 내 안에서 작은 꿈이 싹텄다. 나도 누군가의 삶에, 저런 한마디를 건네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는 다정한 교사가 되고 싶었다.

소외된 자리에 앉아 있지만 아무도 시선을 주지 않는 아이, 괜찮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괜찮지 않은 아이의 마음을 가장 먼저 알아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길고 어둡던 수험생의 시간을 지나, 나는 마침내 교사가 되었다.

그 시간을 버티게 한 것은 결국 사람이었다. 가족들의 응원, 친구의 작은 후원, 누군가의 한 끼 식사, 손 내미는 다정함에 힘입어 여기까지 왔다. 이제는 나도 누군가의 ‘믿을 구석’이 되고 싶었다.


이 책은 그 다짐에 대한 기록이다.

내가 받은 다정함이 나를 통과해 누군가에게 흘러가는 이야기. 조용히 앉아 있는 아이에게 먼저 시선을 주는 일, 말 한마디로 누군가를 살리는 일, 그리고 책과 영화를 통해, 스쳐 가는 인연들을 통해, 서툴렀던 내가 매일 조금씩 더 사람다워지는 이야기.


다정한 사람이 되어, 이 험난한 세상에서 끝끝내 살아남으려는 한 교사의 분투기.


그 이야기를 지금부터 차근차근 풀어가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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