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나의 위선에 대하여
"아무리 힘들어도 같이 일하는 사람이 좋으면 버틸 수 있다."
교사들 사이에서 흔히 하는 이 말의 힘을, 나는 역으로 체감했다. 교무실 배치 하나가 이렇게까지 내 하루를 흔들 줄 몰랐다. 교무실 내 바로 옆자리에 앉은 박하주 선생님(가명) 때문에, 나는 학교 가는 길이 지옥 같았다.
문제는 가치관의 차이였다. 아이들을 단호하게 몰아붙이는 그분의 방식은, 나의 신념과 달랐다. 옆에 앉아 있자니, 매 시간 누군가를 불러 상담하고, 중요한 용무가 아니면 교무실에 들어오지 말라며 방송하는 목소리가 자꾸 귀에 걸렸다. 부장님이 계신데도 회의를 주도하려는 모습은 ‘오버한다’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결정적으로, 내가 지도한 아이들을 다시 불러서 기어이 벌점을 매겨야 한다고 주장하는 모습에서 불편함을 느꼈다. 그분의 모든 행동이 '내가 옳다'는 자기 과시처럼 보였다.
미움은 전염성이 강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동료들도 그분을 불편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내 마음속 미움은 정당성을 얻고 더욱 커져만 갔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분의 목소리가 소음처럼 느껴져 이어폰을 귀에 꽂았고, 1학기 말 바쁜 시기에 그분이 병가를 냈을 때는 걱정보다 '민폐'라는 단어가 먼저 떠올랐다.
그분의 반 아이가 더 엇나가는 것도, 같은 교무실 선생님들이 난감해하는 것도 모두 그 사람 탓인 것만 같았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를 단죄하며, 내 힘듦의 모든 원인을 그에게 돌리고 있었다.
잠들기 어려운 밤이 이어졌다. 새벽에 일어나 문득 거울을 보았다. 거울 속에는, 남을 미워하고 험담하며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내가 서 있었다. 아이들에게는 '다정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면서, 정작 나는 동료 한 명을 온전히 미워하고 있었다. 그 모순과 위선이 너무도 괴로웠다. 이것은 내가 원하던 모습이 아니었다.
2학기 시작 후 견딜 수 없었던 나는, 난생처음 상담 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문 앞에는 '환대(GOOD I)'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다. 그 자리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내가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가장 해주고 싶었던 바로 그 단어였다.
상담실 뒷면은 통유리였다. 7층이라 시야가 확 트여 있었고, 퇴근 무렵이면 창밖으로 보랏빛 구름과 노을이 겹겹이 번져갔다. 나는 그 풍경을 바라보며, 쌓아둔 이야기를 쏟아냈다. 상담사님은 어떤 해답도 주지 않았다. 다만 초롱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을 다 들어주었다. 그 고요한 끄덕임과 노을빛이 겹쳐지며, 나는 ‘환대’라는 단어를 몸으로 느꼈다. 비난도, 평가도 없는 그 시선 앞에서, 엉켜있던 내 마음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몇 주간의 상담을 통해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워진다는 사실을 몸소 깨달았다.
얼마 뒤, 나는 용기를 내어 친한 동료 선생님들과의 식사 자리에서도 내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분을 욕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남을 미워하는 내 자신이 너무 괴로워서였다. 놀라운 이야기가 들려왔다.
"박하주 선생님, 부장님 찾아와서 펑펑 울었대요. 과거에 큰 수술을 한 적이 있어서 다시 아프기 싫은데, 우리 학교 분위기가 이전 학교와 너무 달라서 적응하기 힘들다고, 도와달라고 했대요."
그분의 사연을 들었을 때, 솔직히 처음엔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몇 번이나 곱씹으며 돌아오는 길, 마음속에서 묘한 감정이 일었다. 내가 본 건 단호한 가면이었지만, 그 안에는 상처를 감추려 애쓰는 얼굴이 있었다. 그때부터 미움이 천천히 연민으로 바뀌었다.
내가 '오버한다'라고 생각했던 그분의 적극성은, 낯선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이었을지 모른다.
내가 '민폐'라고 생각했던 그분의 병가는, 과거의 고통을 반복하고 싶지 않은 절박한 두려움이었을지 모른다.
그러자 잊고 있던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바로 학기 초, 내가 감기로 힘들어할 때 그분이 조용히 영양제를 챙겨줬던 일이다. 나의 미움은, 그분의 다정했던 순간마저 기억 속에서 지워버렸던 것이다.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변화가 일어났다. 그분의 목소리는 더 이상 소음이 아니었고, 그의 단호함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갑옷처럼 보였다. 나는 먼저 다가가 안부를 물었고, 간식을 건네기도 했다. 미움이라는 안경을 벗자, 비로소 한 사람의 연약한 맨얼굴이 보였다.
뜻밖에도, 내가 학생 지도로 지쳐 있던 어느 주말, 박하주 선생님이 장문의 메시지와 작은 선물을 보내주었다. 메시지 마지막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안 샘 힘내세요. 제가 엄청난 걸 해드리지는 못하겠지만, 같이 이야기 들어드리고 위로해 드릴게요!”
그 한 문장이, 몇 달간 쌓였던 내 피로를 눈 녹듯 풀어주었다.
지금도 학교 창문 너머 노을을 보면, 그날 상담실에서 느꼈던 ‘환대’와, 그분이 내게 건네준 응원이 겹쳐 떠오른다. 그 노을빛은 내게 가르쳐주었다. 진정한 다정함이란, 상대의 보이지 않는 사연까지 헤아리려는 ‘연민’의 시선이라는 것을.
그리고 나는, 바로 그 시선 덕분에 살아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