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시선으로 교실에 선다는 것
아이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는 교사로서 늘 부딪히는 고민이다. 교육학 책에도 수많은 원칙과 이론이 적혀 있지만, 내 마음을 가장 크게 흔드는 것은 종종 스쳐가는 풍경이나 우연히 본 영상 속 한 장면에서 온다.
몇 해 전, KBS 다큐멘터리에서 한 젊은 외과 의사의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암 선고를 받은 그는 마지막까지 환자들을 돌보며 삶을 이어갔다. 무엇보다도 기억에 남는 장면은 돌아가시기 하루 전, 일곱 살 아들과 나눈 짧은 대화였다.
"우리 OO 이는 OO이가 원하는 직업 가지고... 그렇게 잘 살아!"
"아빠, 저 훌륭한 사람 되고 싶어요."
"그래... 아빠도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었어."
아들의 꿈을 안심하는 듯한 아버지의 눈빛. 그 안에는 자식을 향한 절절한 사랑과 믿음이 담겨 있었다. 죽음을 앞둔 아버지가 아들을 향해 보낸 그 눈빛은, 어떤 교훈보다 깊은 울림을 주었다.
또 다른 장면은 예능 프로그램에서였다. 한 여자아이가 어른이 되면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는 질문을 받자, 주위에서 “훌륭한 사람이 돼야지”라는 대답이 흘러나왔다. 그때 가수 이효리가 웃으며 말했다.
“뭘 훌륭한 사람이 돼? 그냥 아무나 돼.” 짧은 한마디였지만, 그 말속에는 ‘남의 기준이 아니라 너의 삶을 살아도 된다’는 따뜻한 조언이, 아이를 보는 눈빛에서는 존재 자체를 긍정해 주는 마음이 느껴졌다.
겉으로는 서로 다른 말처럼 보이지만, 두 장면이 전하는 메시지는 결국 하나였다. 아이가 자기답게,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라는 다정한 시선이다. 때로는 아이의 꿈을 뜨겁게 지지해 주고, 때로는 아이의 어깨를 짓누르는 기대를 가볍게 털어주는 것처럼, 아이의 상황에 따라 필요한 다정함의 모양이 다를 뿐이었다.
교사로서 나는 아이들을 볼 때 늘 그 두 눈빛을 떠올리려 애쓴다. 성적이 뛰어난 아이든, 늘 늦게 숙제를 내는 아이든, 모두가 자기만의 속도로 자라 가고 있다. 때로는 엉뚱한 장난으로 나를 곤란하게 만드는 아이조차, 마음속에서는 ‘나도 잘 살아가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품고 있다고 믿는다.
언젠가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에 있는데 한 아이가 조심스레 찾아왔다. 친구들이 자기 콧수염을 보고 ‘히틀러’라고 놀려 큰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아마 낄낄대며 웃는 친구들 앞에서 '놀리지 마'라는 말을 삼켰던 것 같다. 원칙대로라면 해당 학생들을 불러 사실을 확인하고 꾸짖는 것이 먼저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아이에게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과 함께 마음을 위로해 줬다. 짧은 말 한마디였지만, 아이의 표정에서 안도감이 번져가는 걸 보았다.
놀렸다는 학생을 따로 상담실에 불렀다. 아이들은 상담실에 오기만 하면 긴장한 듯한 표정을 보인다. 아이의 마음이 혹시라도 다칠까 조심스레 물어봤다. 다행히 자신의 잘못을 바로 인정했고, 그런 행동이 왜 잘못된 것인지,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 상처를 줄 수 있는지를 이야기 나누며 재발 방지에 힘썼다. 며칠에 걸쳐 아이들을 상담하고 사과하며 문제를 바로잡았다. 며칠 후 "이제 괜찮다"며 환하게 웃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깨달았다. 아이를 살게 하는 것은 때로 거창한 지도가 아니라, '나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작은 확신이라는 것을.
또 다른 아이는 전학생이었다. 예쁜 외모로 주목받으며 전학 온 아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위태로운 비행을 저지르며 나와 자주 부딪혔다. 문제 행동을 먼저 바로잡는 것이 순서였겠지만, 나는 그 아이의 반항적인 눈빛 속에서 의사 아빠의 시선을 떠올리려 애썼다.
'이 아이도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을 텐데...'
그러던 중 아이가 춤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내가 맡고 있던 댄스 동아리로 이끌었다. 아이는 놀라운 솜씨로 모두를 감탄시켰다. 연말 축제 때 수백 명의 학생 앞에서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춤을 추는 아이의 모습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축제 후 최고의 무대였다고 칭찬할 때, 아이가 쑥스러워하며 지었던 미소는 아직도 선명하다. 학교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던 아이의 굳은 표정 뒤에서, 자기답게 빛나고 싶다는 한 사람의 간절함을 나는 그제야 보았다.
책에서 배운 원칙보다, 병상에 누워서도 아이를 다정하게 바라보던 아버지의 눈빛, 혹은 “아무나 돼도 괜찮다”라고 말해주던 한 연예인의 한마디가 내 시선을 바꿔놓았다. 그리고 그 시선은 결국 내 교실에서 제자들과의 작은 순간들로 이어지고 있다.
결국 교사가 아이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아이들의 자존감을 세우기도, 무너뜨리기도 한다. 나는 오늘도 교실 한가운데 서서 다짐한다. 아이들이 자기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나는 다정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