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마음을 움직이는 힘
대학교 4학년. 임용시험을 준비하던 시절.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 공부만 하는 날들이 이어졌고, 그런 일상에서 내가 삼았던 유일한 낙은 '오늘도 공부했다'는 성취감뿐이었다.
그럼에도 숨통이 트이던 순간이 딱 하나 있었다.
매달 한 번, 머리를 자르러 가던 시간이다.
나는 일부러 왕복 1시간 넘게 걸리는 저가형 미용실을 골랐다. 운동 삼아 걷기도 하고 답답한 마음을 바람에 씻기기 위해서였다.
머리를 다듬는 20여 분의 시간은 유일하게 고개를 들고 거울을 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미용사님은 과묵하셨지만 늘 정중하셨다. 종종 손목이나 무릎이 아프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하루에도 여러 명의 머리를 다듬는 고단한 직업이지만, 그분은 머리를 자르는 순간에 늘 집중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향수 바꾸셨어요? 원래 P사 향수 쓰셨잖아요.”
향수를 알아보는 미용사님의 세심함에 놀랐다.
그날도 40분 가까이 걸어온 탓에, 땀 냄새가 더 진동했을 텐데 말이다.
매일 10시간 넘게 책상 앞에 앉아 세상과 단절된 채 고독한 공부를 이어가던 나에게, 미용사님의 세심한 한마디는 마치 어둠 속에 드리운 한 줄기 빛과 같았다.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익명의 수험생이 아닌, 환하게 웃는 미용사님과 온전히 연결된 사회적인 존재로 다시 태어난 듯한 기분을 느꼈다.
나는 미용실의 단골이 되었다.
한 달쯤 지나면 내가 다시 찾아올 걸 예상하신다며 머리를 상상 속으로 미리 다듬어보신다는 말에 웃음이 났다. 미용에 대한 진심과 사람에 대한 존중이 느껴졌다. 그분의 한마디가 내 시험 준비 기간 내내 잔잔한 위로가 되어주었다.
그때 배웠다.
단 한 문장이 누군가의 하루를 견디게 만든다는 것을.
시간이 흘러 교사가 되며 말의 무게를 더 절감하게 된 지금, 나는 종종 그 한마디를 떠올린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는 가능한 한 긍정적인 말을 자주 건네려 한다.
“오늘 표정이 참 밝아서 보기 좋네.”
“새로 바뀐 스타일이 너의 분위기랑 잘 어울린다.”
“오늘따라 뭔가 더 당당해 보여.”
어쩌면 평범한 말일지 모르지만, 나는 믿는다.
그 말이 누군가에겐 살아 있다는 느낌이 될 수 있다는 걸 말이다.
한 학생이 있었다.
지각이 잦고 수업에도 흥미가 없어 보이던 아이였다. 살펴보니 한부모 가정에서 자라며 게임에 몰두해 밤을 지새우곤 한다고 했다.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고민했다. 단호하게 혼내야 하나, 설득해야 하나, 아니면 모른 척해야 하나.
나는 결국 칭찬을 선택했다.
어느 날, 그 아이가 점심시간에 맞춰 학교에 왔다. 나는 종례 시간, 아이들 앞에서 박수를 쳤다.
“우리 OO이가 늦게 일어났지만, 수업 듣겠다고 서둘러서 왔대. 대단하지 않니?”
누가 들으면 비꼬는 말처럼 들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 눈빛과 말투는 달랐다. 나는 진심으로 말했다. ‘네가 지금 이 자리까지 오느라 수고했다’는 마음을 담았다. 그리고 그날 이후 그 아이는 서서히 아침에 맞춰 등교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후에도 드물게 지각도 했으나, 분명 변화했다고 믿는다.)
또 한 번은 코로나가 잠잠해졌음에도 여전히 마스크를 쓰는 아이가 있었다. 단순히 위생적인 이유로 쓰는 게 아닌, 자신을 가리려 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아이는 큰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무엇에든 수동적인 태도를 보였었다. 그러다 체육 시간 후에 마스크를 벗고 헉헉대길래, 그 아이에게 조용히 말했다.
“네 얼굴, 참 밝아 보여서 보기 좋다.”
그날 이후로 아이는 신기하게도 마스크를 서서히 벗기 시작했다. 단지 얼굴을 드러냈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신을 드러내는 일에 조금 더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었다.
말은 때론 너무 가볍게 느껴지지만
어떤 말은 조용히 오래 남아 마음을 움직인다.
누군가가 나를 기억해 준 한마디.
내가 아이에게 건넨 다정한 말 한마디.
그 모든 순간이 모여 사람 사이의 온기를 만든다고 믿는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묻는다.
'오늘은 어떤 한마디로, 아이의 마음에 머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