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제가 괴물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한 교사를 구원한 다정한 시선

by 서이안

한동안 출근길마다 나는 같은 기도를 했다.

"오늘은 부디 아무 일 없게 해 주세요."

하지만 기도는 대개 허사였다.


복도에서 목발이 허공을 가르는 것을 보았다. 남학생 둘이 서로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싸우고 있었고, 한 명의 손에 들린 목발이 흉기처럼 휘둘리고 있었다. 여러 선생님들이 말렸지만, 아이들은 멈추지 않았다. 그 순간, 내 안에서 본능적으로 무언가가 터져 나왔다.

"그만해!"


평생 내본 적 없는, 내 것이 아닌 듯한 거친 고함이었다. 아이들은 그제야 멈췄다. 나는 씩씩대는 아이들을 상담실로 데려가며, 정작 나 자신에게 더 놀라고 있었다. 아이들을 압도한 그 목소리는, 내가 그토록 경멸했던 '무서운 어른'의 목소리였다.


교사 2년 차, 나는 내가 괴물이 되어가고 있다는 공포에 휩싸였다.


학생부 소속의 '생활지도' 업무를 2년 연속 맡았다. 1년 차 때는 "신규니까"라며 선배들이 많이 도와주셨지만, 2년 차에는 "더 잘해야 된다"는 부담이 뒤따랐다. 업무가 익숙해져 행정 처리도 능숙히 해내자, 최은숙 부장님(가명)은 "이안 샘의 능력에 감탄한다"라며 칭찬해 주셨다. 그 말이 그땐 큰 힘이 됐다. 하지만 칭찬이 쌓일수록,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더 커졌다.


그해 내가 맡은 중학교 1학년은 유독 사건 사고가 많았다. 입학 일주일 만에 운동장에서 대놓고 흡연하다 걸리는 아이가 있었고, 복도에서는 하루도 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고, 학교로 응급차가 올만큼 긴박한 일도 벌어졌다.

나를 더 힘들게 했던 것은 눈에 보이는 사건들이 아니었다. 내 눈에는, 학창 시절의 내가 너무도 선명하게 보였다. 돈을 빌려달라는 말에 거절하지 못하고 웃으며 돈을 건네는 아이. 친구들의 놀림에 그저 멋쩍게 웃으며 속으로 눈물을 삼키는 아이. 나는 그 아이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어떻게든 돕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관련 학생을 지도해도 반성하는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학부모님께 연락하면 오히려 "우리 애만 갖고 그러신다"며 적반하장으로 화를 내는 경우가 많았다. 선한 의지는 무력감으로, 책임감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변해갔다.


결국 다른 곳에서 상처가 터져 나왔다. 어느 오후, 화장실에서 담배 냄새가 진동했고, CCTV와 진술로 범인을 특정했다. 해당 학생은 평소 관심을 쏟던 아이였다. 안타까운 마음이 밀려왔다. 교무실로 불러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와중에도 아이는 거짓말을 하고 장난을 쳤다. 목발 사건 이후 애써 눌러왔던 감정이 다시 폭발했다.

“왜 거짓말해?!

나는 언성을 높였고, 순간 정적이 흘렀다. 아이를 상담실로 데려와 지도하고 달래면서도 등골이 서늘했다. ‘나는 지금, 아이들을 위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저 내 스트레스를 분출하고 있는가.’


며칠을 자책하며 괴로워하던 어느 날, 최은숙 부장님이 나를 부르셨다. 학교 앞 카페였다. 나는 혹시 내가 무슨 실수를 한 것일까 긴장했다. 하지만 자리에 앉자마자 부장님은 따뜻한 커피를 내밀며 나지막이 물으셨다.

“이안 쌤, 요새 힘든 일 없어요? 원래 쌤 모습 잃지 말아요. 우리 학년에서 일어나는 일들, 그거 다 샘 잘못 아니에요.”


그 순간, 둑이 무너졌다. 애써 단단한 척, 괜찮은 척 버티고 있던 마음이 그 한마디에 전부 허물어졌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부장님은 그저, 역할의 무게에 짓눌려 있던 한 사람의 지친 어깨를, 과거의 상처 위에서 위태롭게 버티고 있던 한 교사의 여린 마음을 봐주신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조금씩 달라졌다. 출근길 차 안에서 거울을 보며 억지로라도 웃어보았다. ‘내 표정, 내 눈빛, 내 말투가 아이들에게 상처가 되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를 매일 올렸다. 전에는 혼자 끙끙 앓았던 생활지도의 어려움도 선배들에게 털어놓았고, 조언을 적극 받아들였다.


며칠 뒤, 한 학생이 “샘, 웃는 모습이 포비(만화 뽀로로 속 캐릭터) 같아요”라며 장난스럽게 말을 걸었다. 그 순간, 작은 변화가 아이들에게도 전해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을 배웠다. 아이가 흥분할수록 교사는 더 차분해야 한다는 것. 순간적인 감정이 아니라, 차분한 태도가 결국 상황을 다스린다는 걸 몸으로 알게 된 것이다.


연말이 되었을 때, 나는 부장님께 짧은 메시지를 받았다. 그 마지막 문장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내 마음에 등대처럼 남아 있다.

“이안 샘이 있어서 올 한 해 우리 학교가 더 따뜻했던 거 아세요? 샘의 그 매력, 잊지 마세요.”

그 경험을 지나며 알게 되었다. 교사라는 직업은 언제든 괴물로 변할 위험이 있다는 것. 그럴 때 필요한 건, 누군가의 다정한 시선이다. 나 역시 이제 후배 교사들이 힘들어할 때 “요즘 괜찮으세요?”라고 물어주고, 커피 한 잔을 건네주려 한다. 오래전, 최은숙 부장님이 지쳐있던 내게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내밀었을 때, 그 사소한 다정함이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다정한 사람이 살아남는다'는 것은, 혼자 힘으로 버텨낸다는 뜻이 아니다.

때로는 나를 잃고 괴물이 되어갈 때, 손 내밀어주는 또 다른 다정한 사람 덕분에, 우리는 길을 잃지 않고 다시 살아남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정함을 경험한 사람만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기꺼이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다.


나를 괴물로부터 구해낸 건, 다름 아닌 다정함이었다.

keyword
이전 14화나의 다정함이 실패했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