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건넨 가장 어른스러운 말
"당신네들 말이야. 내가 누군지 알아?"
전화기 너머로 터져 나오는 고성이 교무실의 정적을 갈랐다. 귀가 뜨거워지고 심장은 발밑까지 떨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한편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어쩌면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지금 내가 지켜야 할 것은 상처받은 내 자존심이 아니라, 이 모든 소동의 한가운데에 있을 한 아이의 마음이라는 것을.
신규 교사 시절이었다.
우리 반에는 쉬는 시간마다 빗자루를 드는 아이가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청소가 취미인가 싶었지만, 아이의 눈빛 속에서 나는 오래전 나의 모습을 보았다. 칭찬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그 간절한 마음. 그래서 틈날 때마다 아이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고맙다.”, “참 부지런하다.”
학부모 상담 때 어머니께 이 이야기를 전하자, “초등학교 때부터 늘 그랬어요.”라며 기특해하셨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 한구석은 조금 아렸다.
아이는 모범적이었지만 성적이 아주 높진 않았다. 기초학력 미달 학생만 치르는 재시험 대상이었다. 나는 아이의 자존심이 다칠까 염려해, 다른 아이들이 눈치채지 않도록 쉬는 시간에 아이를 불러 조용히 신청서를 건넸다. 며칠 후, 마감일이 지나서야 아이가 안내장을 들고 찾아왔다.
“부모님이 신청하래요... 늦었는데 가능할까요?”
“그럼! OO이 부탁인데, 선생님이 한번 얘기해 볼게.”
나는 담당 선생님께 고개를 조아렸고, 다행히 아이는 시험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재시험 전날, 나는 아이에게 다시 한번 일정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게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하교 후, 교무실 전화벨이 울렸다.
"아니, 우리 아들은 학교생활 A급인데 왜 이런 시험을 봐야 합니까?"
아이가 직접 신청했다는 사실을 설명할 틈도 없었다. 그는 나를 ‘선생님’ 대신 ‘당신네들’이라고 부르며, 십여 분간 활화산처럼 분노를 쏟아냈다. 교육감과 교육청에 아는 사람이 많다는 으름장과, 아들에게 불이익을 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나는 그저 "네... 알겠습니다"와 "죄송합니다"만 반복할 수 있을 뿐이었다.
전화가 끊기기 직전, 나는 겨우 한마디를 내뱉었다.
“걱정 마세요, 아버님. OO이는 제가 정말 아끼는 학생입니다.”
그 순간, 나는 거친 분노의 목소리 뒤에서, 자신이 기대했던 모습과 다른 아들의 현실을 마주한 세상 모든 아버지의 불안과 서툰 사랑을 보았다. 하지만 이해와 별개로, 서러움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날 밤, 가장 무서웠던 것은 나를 향한 폭언이 아니었다. 그동안 예쁘게만 봐온 그 아이를, 내일 아침 미워하게 될까 봐, 내 상처 때문에 아이를 예전처럼 대하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다음 날 아침, 조례가 끝난 뒤 나는 아이를 불렀다.
“OO아, 오늘 시험은 안 봐도 될 것 같아.”
아이는 잠시 나를 보더니, 어색하게 웃었다. 어젯밤의 모든 소동을 다 알고 있다는 얼굴이었다. 늘 “스승님”이라며 살갑게 다가오던 아이는, 그날 하루 종일 그림자처럼 조용했다.
수업 시간에도, 복도를 지날 때에도, 문득 고개를 들면 나를 가만히 살피다 황급히 고개를 돌리는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 작은 어깨 위에 얼마나 무거운 고민이 올려져 있을까. 나는 애써 아이에게서 시선을 피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나조차도 길을 잃었기 때문이다.
점심시간, 소란스러운 급식실에서 배식 지도를 하고 있을 때였다. 문득 한쪽 구석에서 나를 향하는 시선이 느껴졌다.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계속해서 내 눈치를 살피는 아이였다. 망설이고, 결심하고, 다시 주저하는 그 모든 마음의 과정이 아이의 표정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마침내, 아이가 식판을 내려놓고 일어섰다. 시끄러운 급식실을 가로질러, 아이는 내게로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그리고 한참을 머뭇거리며 자신의 손끝만 만지작거리더니, 마침내 고개를 들었다.
"선생님..."
내가 몸을 숙이자, 세상에서 가장 작고, 가장 무거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죄송합니다."
그 한마디에, 어젯밤부터 나를 짓누르던 모든 분노와 서러움이 눈 녹듯 사라졌다. 아무 잘못도 없는 이 작은 아이가, 그 한마디를 꺼내기 위해 아침부터 하루 종일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까.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본 나였기에, 그 진심의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져 마음이 울컥했다.
"뭐가 죄송해~ 괜찮아. 걱정 말고 밥 맛있게 먹어."
그날, 어른인 내가 아이에게 위로받았다.
어른의 거친 분노로 생긴 상처는, 아이의 가장 작고 진실한 한마디로 아물었다. 그 아이는 지금도 매년 스승의 날과 내 생일이면, 마음을 꾹꾹 눌러 담은 긴 메시지를 보내온다. 그리고 나는 그 메시지를 읽을 때마다 그날의 점심시간을 떠올린다. 그날의 작은 사과는 내 안에 남아, 거친 세상의 소음 속에서도 내가 들어야 할 가장 작은 목소리를 놓치지 않게 만드는, 나의 영원한 이정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