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누군가의 첫날이란

"살았다"라고 속으로 외친 날

by 서이안

이 이야기는 나의 첫 출근 전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잠이 오지 않았다. 긴장과 설렘이 교차했다.

결국 새벽에 옷장을 열고 가장 정제된 칼 정장 차림을 골랐다. 이만큼은 예의를 갖춰야겠다는 마음이었다. 아이들에게 보내는 첫 메시지이기도 했다. '나는 너희를 환대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어.'라는 마음을 담아서.


출근한 아침, 교무실엔 어색한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처음으로 부딪힌 교사들의 세계. 내가 교육실습생일 때 봤던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그러다 쉬는 시간, 한 사람이 내 이름을 불렀다.

"이안이 맞지?"

초등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함께 나왔지만 군 입대 이후 연락이 끊겼던 한민호(가명)라는 친구였다. 그 친구의 다정한 인사에 속으로 외쳤다. '살았다.'

다행히 우리는 같은 학년부가 되었다. 급하게 민호를 찾아가 "교과서를 못 받았다는 아이들이 몰려왔어. 어떻게 해야 해?" 하고 조용히 물었을 때, 민호는 "그건 내가 맡은 일이야, 보내줘"라며 웃어주었다. 신규 교사로서 그 다정한 응원은 참 든든했다.


아이들 앞에 서는 첫날.

30명의 눈빛은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특히 축구부 아이들은 까맣게 탄 얼굴에 단복을 입고 있었다. 마치 ‘이 반의 분위기는 우리에게 달려 있어’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중 김○○라는 이름은 지금도 내게 특별하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안부를 나누는 제자다.


나는 실수도 많이 했다. 아이들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말에 마스크를 쓴 채로 한 명씩 찍었고, 그 모습을 본 민호가 다가와 "마스크 벗고 찍어야지"라며 작은 조언을 건넸다. 그 순간의 민망함도, 그 다정함도 기억에 남는다.


하루가 끝난 후, 1번 권○○이라는 학생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인사하고 총총히 집에 가던 모습이 잊히질 않는다. 그 후로도 나를 위해 자잘한 심부름을 도맡았고, 아직도 연락하는 고마운 제자다.

첫 주가 지나고 아이들이 "사회가 제일 재밌어요!"라고 말해줬을 때, 그건 분명 선생님을 향한 작은 아부였겠지만 그 한마디가 오래도록 나를 붙잡아줬다.


모든 아이들이 집에 돌아간 오후, 텅 빈 교실에서 나는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부디 이 아이들과 잘 지낼 수 있게 해 주세요.’

그게 내 첫 종례였다. 목소리는 일주일 만에 쉬었고, 나는 그걸 코로나 초기 증상이라고 착각했을 만큼 정신없이 몰아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혼란 속에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내가 지금, 아이들 앞에 선다는 것. 이 자리가 누군가에게 단 한 번의 첫인상으로 남는다는 것.

그리고 문득, 윤여정 배우가 『계춘할망』에서 남긴 대사가 떠올랐다. "세상에 한 사람이라도 날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살 만한 세상이지. 이제 내가 네 편이 되어줄 테니 너는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라."


돌이켜 보면 그날, 민호의 눈빛과 인사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 내가 네 편이 되어줄게."


그날, 아이들은 모두 긴장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낯선 교실, 낯선 선생님, 낯선 자리. 그들의 눈빛은 조용히 묻고 있었다.

‘이 선생님은 어떤 사람일까?’ ‘나를 혼내진 않을까?’ ‘내 이야기를 들어줄까?’


나 또한 그 물음들에 말 대신 눈빛으로 대답하고 싶었다. 조금은 굳은 얼굴이었겠지만, 그 안에 조심스럽게 담은 마음이 있었다.

괜찮아. 나는 너희의 편이 되어줄게. 너희가 아직 날 믿지 않아도, 나는 먼저 너희를 믿어볼게.

그 마음이 내 눈빛과 말투, 표정에 스며들어 아이들에게 전해졌기를 바란다.

말하지 않아도 다정함은, 종종 그렇게 조용히 스며드는 법이니까.

keyword
이전 11화졸업식에 아무도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