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코가네유 행 버스
홋카이도에 온 지 4일째 되는 날, 코가네유(小金湯, こがねゆ) 온천 쪽에 있는 아이누 문화교류센터 피리카코탄을 가기 위해 삿포로역 앞의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삿포로역에서 출발해 호헤이쿄(豊平峡, ほうへいきょう) 온천 쪽으로 가는 죠테츠-일본의 다양한 버스회사 이름 중 하나- 버스를 타면 갈 수 있었다.
삿포로에 오고 나니까 약간 정신이 해이해졌다. 황량한 지역에서만 지내오다가 모든 게 풍족한 대도시에 오니 짐짓 긴장이 느슨해지는 게 아닌가. 그 탓에 토마코마이에 있을 때보다 좀 늦은 아침에 나서게 된 것이다. 설렁설렁 숙소를 나와 근처에 있는 타누키코지 상점가의 아케이드 아래를 지나갔다. 그리고 삿포로 역까지 이어지는 지하 쇼핑상가로 들어갔다.
지하 쇼핑상가라기에 을지로의 지하상가를 떠올렸지만 상가는 별로 늘어서 있지 않았다. 모습은 상가보단 통로에 더 가까웠다. 위로 쭉 뻗은 건물들의 아래를 연결하는 거대한 지하보도였다. 폭은 지상의 도로만 했고 길이는 거의 전철 세 정거장을 이었다. 지하보도는 이곳 사람들이 삿포로의 눈과 추위를 피해서 오는 피난처와 같았다.
지하보도를 통해 오도리역(大通駅, おおどおりえき)을 지날 때쯤이었다. 기둥면에 전시된 화려한 문양을 수놓은 족자가 눈에 들어왔다.
왼쪽은 모시리(대지), 오른쪽은 니타이카라페(숲에 불어오는 바람)라는 이름의 작품이었다. 한 명이 아닌 여러 명이서 작업에 참가한 것 같았다.
전시된 자수 작품을 지나자 큰 조각상과 함께 작은 쉼터가 나왔다. 삿포로 지하보도에 조성된 문화공간인 "미나파(minapa, ミナパ)"는 아이누어로 "여럿이 웃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아이누 문화를 발신하는 공간으로써 얼마 안 된 2019년에 설립된 곳이 되겠다.
미나파에는 이워룬 파세 카무이(iwor-un-pase-kamuy, イウォルンパセカムイ)라는 이름의 커다란 조각상이 있었다. 의미를 찾아보니 "이 자리를 지켜보는 고귀한 신"이란 뜻이었다.
이 이름은 아이누 민족이 마을을 지키는 신으로서 고귀하게 여기는 올빼미 신 "코탄코로카무이(kotan-kor-kamuy, コタンコㇿカムイ)"의 다른 단어일까? 이 조각상의 재료는 사루 강 유역에서 출토된 몇백 년 연식의 느릅나무 매목(埋木)으로, 니부타니의 공예가 카이자와 토오루(貝澤 徹) 씨가 조각했다고 한다. 지하보도의 천장에 닿을 것처럼 꽉 차는 조각상이었다. 천장에는 전통문양이 들어차 있었고, 주변을 지지하는 기둥은 꼭 나무의 질감을 표현한 것 같았다.
맞은편엔 의자와 함께 공예가들이 만든 작품 몇 점을 전시해 둔 유리관이 있었다. 지하보도 안의 소소한 예술공간이자 쉼터였다.
이곳을 지나서 지상으로 나오니까 곧 삿포로 역 앞이었다. 버스터미널은 바로 건물 입구 오른쪽에 있었다. 가운데 플랫폼의 12번 정류장에서 기다리자 코가네유 쪽을 지나 호헤이쿄까지 가는 버스가 도착했다. 앞서 정류장에 예약제 버스들이 지나가자 미리 예약해야 되는 줄 알고 전전긍긍했는데, 다행히 내가 탈 버스는 평범하게 차표를 뽑고 타는 시내버스였다.
삿포로 시내 외곽으로 50분가량을 달리자 코가네유 정류장이었다. 내리자 이전에 갔던 곳들처럼 황량한 분위기가 펼쳐졌다. 삿포로 시내를 벗어나니 금세 산과 들이었고, 미처 다 녹지 않은 눈이 흙먼지와 함께 높게 쌓여있었다. 마침 비도 조금씩 오고 있어서 그런지 쌀쌀했다.
사전에 조사한 대로라면 피리카코탄은 이곳 정류장에서 걸어서 5분이면 닿는 거리였다. 도로 건너편에 있는 사잇길을 지나 경사로를 걷다 보니 주차장과 낮은 건물들이 조금씩 보였다. 피리카코탄은 코가네유 온천의 바로 맞은편에 있었다.
■입관료 무료 (그러나 전시실 관람에 한해 유료)
일반 200엔
고등학생 이상 100엔
중학생 이하·65세 이상 무료
■개관시간
오전 08:45~ 오후 22:00 (전시실은 오전 09:00~오후 17:00)
■휴관일
월요일, 명절, 연말연시(12.29~1.3), 매월 마지막 주 화요일
이곳 바로 옆에 있는 코가네유 온천은 근처의 조잔케이나 호헤이쿄 온천에 비해 유명한 곳은 아닌 듯 수수했다. 하지만 근처에는 나무 토리이鳥居-우리나라의 홍살문처럼 속세와 성소를 구분하는 문. 일본의 신사 입구에서 흔히 볼 수 있다.-와 함께 보호수가 있었고, 바로 옆엔 아이누 문화 교류센터인 피리카코탄이 있는 온천이었다. 외딴 곳이지만 이 온천을 찾는 사람들 덕에 이 센터도 이따금씩 구경 오는 사람들로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삿포로역 앞 버스터미널에서 피리카코탄까지의 경로]
삿포로~호헤이쿄온센 행, 48분가량 소요, 750엔
코가네유 하차, 피리카코탄까지 도보 5분
2023.04.06 가다
2023.04.23 쓰다